홈 - Saigoneer KR - 사이공이어 사이공의 식당, 길거리 음식, 뉴스, 바, 문화, 이벤트, 역사, 레저활동, 음악 등에 대한 정보 안내 https://kr.saigoneer.com/ 2026-10-13T16:01:14+07:00 Joomla! - Open Source Content Management 호찌민시의 만조 날, 침수된 거리에서 든 생각들 2026-10-08T10:01:38+07:00 2026-10-08T10:01:38+07:00 https://kr.saigoneer.com/society/13732-사이공의-만조-날,-침수된-거리에서-든-생각들 글: 딘 푹(Đình Phúc). 삽화: 마이 칸(Mai Khanh).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web1.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15/flood0.webp" data-position="50% 30%" /></p> <p><em>이 글은 <a href="https://saigoneer.com/vn/society/18004-t%E1%BA%A3n-m%E1%BA%A1n-v%E1%BB%81-nh%E1%BB%AFng-ng%C3%A0y-l%E1%BB%99i-n%C6%B0%E1%BB%9Bc-s%C3%A0i-g%C3%B2n-m%C3%B9a-tri%E1%BB%81u-c%C6%B0%E1%BB%9Dng"><em>사이공이어&nbsp;</em>베트남어판(Sài·gòn·eer)</a>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em></p> <p><em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저는 호찌민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도시와의 관계가 그만큼 오래갈 수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전히 이 도시와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사이공의 정오는 뜨거운 태양이 가장 맹렬하게 내리쬐는 때임에도 동시에 나무들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는 분명 성가시지만, 적어도 먼지 자욱한 하루 끝에 거리가 깨끗이 씻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랩니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고, 도저히 외면할 수도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으로 미화하거나 옹호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 바로 만조 때마다 사이공 거리를 물에 잠기게 하는 그 짜증스러운 침수입니다.</em></p> <p>저는 한때 호찌민시의 침수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노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기적인 침수가 삶의 일부이고, 한 해가 수위가 높은 계절과 낮은 계절로 나뉘는 메콩 삼각주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찌민시의 침수를 처음 제대로 겪은 날, 제 자신감은 금세 수그러들었습니다.</p> <p>그날 저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평소 다니던 길로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탁하고 검은 물이 거대한 웅덩이를 이루며 도로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보던 비옥한 충적토를 머금은 물과는 달리, 이곳의 물은 쓰레기와 오물이 뒤섞인 묽은 진흙탕이었습니다.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물을 헤치느라 기어가듯 느려졌습니다.</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4.webp" /></p> <p>“오늘 만조 높으니까 조심해.” 그 순간, 불과 한 시간 전에 룸메이트가 보낸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지만, 만조란 강이나 바다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해 그 문자를 완전히 무시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물가까지도 약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p> <p>희미한 가로등 불빛은 어떻게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이 언제 빠질지 알 수 없었던 저는 무모하게도 속도를 높여 침수된 도로 한가운데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주변의 물에 잠긴 오토바이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매연과 하수도의 역겨운 악취가 뒤섞여 코를 찔렀습니다. 저는 숨을 참고 핸들을 꽉 쥔 채 도로 중앙분리대만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간혹 저를 지나치던 오토바이들이 점점 속도를 늦추다 완전히 멈춰 설 때면 운전자들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가운데, 저는 하늘에 제발 엔진이 이 끝없이 이어지는 물길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p> <p>오토바이를 주차장에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종아리 아래까지 흠뻑 젖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높은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니, 지친 몸으로 물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작은 점들처럼 보였습니다. 거리 양쪽의 상점과 집들은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차량 호출 서비스 기사들은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가끔 트럭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가면 거대한 물결이 일어 벽과 차량을 덮쳤고, 근처 집에서 떠내려온 잔해와 플라스틱 의자까지 물속으로 휩쓸고 갔습니다.</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1.webp" /></p> <p>그날 밤 이후로 침수는 우기에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물이 빠르게 돌아가는 호찌민시의 일상을 단번에 멈춰 세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시동을 다시 걸어보려 해도 물 먹은 오토바이 엔진에서는 가래 끓는 듯한 기침 소리만 났고, 그 사이사이 회색 매연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만조 날에 맞춰 생활하고 대비하는 일은 주민들에게 몸에 밴 요령이었지만, 저는 서툰 초보자였습니다.</p> <p>진흙탕 물에 가려진 커다란 도로 구덩이에 모르고 바퀴를 빠뜨릴 때마다 느꼈던 짜증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 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오토바이가 깊은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부모님을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다지 속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토바이가 멈춰 선 대학생도 동네 아저씨들이 마른 길까지 밀어준 덕분에 정비사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그리 난처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안의 물을 퍼내던 주민들 역시 양동이와 대야, 각종 통을 늘어놓은 채 온 가족이 웃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2.webp" /></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침수와 함께 산다는 것이 단순히 만조 예보를 확인하고, 침수를 피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길을 찾아내거나, 물에 잠긴 거리를 헤쳐 나갈 운전 실력을 갈고닦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호찌민이 물에 잠기는 날들을 싫어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날들 역시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곳 사람들이 제게, 또 서로에게 베풀어 온 친절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것 같습니다.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같은 물속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서로를 보살핍니다.</span></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3.webp" /></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web1.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15/flood0.webp" data-position="50% 30%" /></p> <p><em>이 글은 <a href="https://saigoneer.com/vn/society/18004-t%E1%BA%A3n-m%E1%BA%A1n-v%E1%BB%81-nh%E1%BB%AFng-ng%C3%A0y-l%E1%BB%99i-n%C6%B0%E1%BB%9Bc-s%C3%A0i-g%C3%B2n-m%C3%B9a-tri%E1%BB%81u-c%C6%B0%E1%BB%9Dng"><em>사이공이어&nbsp;</em>베트남어판(Sài·gòn·eer)</a>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em></p> <p><em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저는 호찌민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도시와의 관계가 그만큼 오래갈 수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전히 이 도시와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사이공의 정오는 뜨거운 태양이 가장 맹렬하게 내리쬐는 때임에도 동시에 나무들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는 분명 성가시지만, 적어도 먼지 자욱한 하루 끝에 거리가 깨끗이 씻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랩니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고, 도저히 외면할 수도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으로 미화하거나 옹호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 바로 만조 때마다 사이공 거리를 물에 잠기게 하는 그 짜증스러운 침수입니다.</em></p> <p>저는 한때 호찌민시의 침수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노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기적인 침수가 삶의 일부이고, 한 해가 수위가 높은 계절과 낮은 계절로 나뉘는 메콩 삼각주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찌민시의 침수를 처음 제대로 겪은 날, 제 자신감은 금세 수그러들었습니다.</p> <p>그날 저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평소 다니던 길로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탁하고 검은 물이 거대한 웅덩이를 이루며 도로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보던 비옥한 충적토를 머금은 물과는 달리, 이곳의 물은 쓰레기와 오물이 뒤섞인 묽은 진흙탕이었습니다.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물을 헤치느라 기어가듯 느려졌습니다.</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4.webp" /></p> <p>“오늘 만조 높으니까 조심해.” 그 순간, 불과 한 시간 전에 룸메이트가 보낸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지만, 만조란 강이나 바다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해 그 문자를 완전히 무시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물가까지도 약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p> <p>희미한 가로등 불빛은 어떻게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이 언제 빠질지 알 수 없었던 저는 무모하게도 속도를 높여 침수된 도로 한가운데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주변의 물에 잠긴 오토바이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매연과 하수도의 역겨운 악취가 뒤섞여 코를 찔렀습니다. 저는 숨을 참고 핸들을 꽉 쥔 채 도로 중앙분리대만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간혹 저를 지나치던 오토바이들이 점점 속도를 늦추다 완전히 멈춰 설 때면 운전자들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가운데, 저는 하늘에 제발 엔진이 이 끝없이 이어지는 물길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p> <p>오토바이를 주차장에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종아리 아래까지 흠뻑 젖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높은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니, 지친 몸으로 물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작은 점들처럼 보였습니다. 거리 양쪽의 상점과 집들은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차량 호출 서비스 기사들은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가끔 트럭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가면 거대한 물결이 일어 벽과 차량을 덮쳤고, 근처 집에서 떠내려온 잔해와 플라스틱 의자까지 물속으로 휩쓸고 갔습니다.</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1.webp" /></p> <p>그날 밤 이후로 침수는 우기에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물이 빠르게 돌아가는 호찌민시의 일상을 단번에 멈춰 세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시동을 다시 걸어보려 해도 물 먹은 오토바이 엔진에서는 가래 끓는 듯한 기침 소리만 났고, 그 사이사이 회색 매연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만조 날에 맞춰 생활하고 대비하는 일은 주민들에게 몸에 밴 요령이었지만, 저는 서툰 초보자였습니다.</p> <p>진흙탕 물에 가려진 커다란 도로 구덩이에 모르고 바퀴를 빠뜨릴 때마다 느꼈던 짜증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 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오토바이가 깊은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부모님을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다지 속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토바이가 멈춰 선 대학생도 동네 아저씨들이 마른 길까지 밀어준 덕분에 정비사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그리 난처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안의 물을 퍼내던 주민들 역시 양동이와 대야, 각종 통을 늘어놓은 채 온 가족이 웃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2.webp" /></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침수와 함께 산다는 것이 단순히 만조 예보를 확인하고, 침수를 피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길을 찾아내거나, 물에 잠긴 거리를 헤쳐 나갈 운전 실력을 갈고닦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호찌민이 물에 잠기는 날들을 싫어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날들 역시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곳 사람들이 제게, 또 서로에게 베풀어 온 친절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것 같습니다.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같은 물속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서로를 보살핍니다.</span></p> <p class="unstyl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5/11/28/nuoc/ngapnuoc3.webp" /></p></div> 친해지고 싶은 멋진 고양이들이 있는 사이공의 아늑한 카페 5곳 2026-09-29T15:55:22+07:00 2026-09-29T15:55:22+07:00 https://kr.saigoneer.com/카페-바/13731-친해지고-싶은-멋진-고양이들이-있는-사이공의-아늑한-카페-5곳 코이 팜(Khôi Phạm) 글. 응옥 따(Ngọc Ta) 그래픽.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1.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0.webp" data-position="50% 50%" /></p> <p><em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저는 가본 카페 직원들의 얼굴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묘하게도 잘 기억합니다. 고양이를 쓰다듬었을 때 느껴졌던 털의 감촉, 가구 위를 오르내리며 내던 작은 소리, 그리고 짧지만 기억에 남는 만남 속에서 드러난 저마다의 미묘한 개성까지 생생히 떠오릅니다.</em></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이 글은 반려동물 카페 목록이 아니라, 우연히 고양이 한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카페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유형 모두 고양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고양이가 주된 볼거리인지, 아니면 카페에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분위기의 일부인지에 따라 구분했습니다.</span></p> <p>카페에서 고양이, 혹은 그 어떤 동물이든 함께 지내게 하는 것은 용기와 전략이 필요하면서도 위험 부담이 따르는 결정입니다. 느긋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는 어떤 공간에든 개성과 생기를 더합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편안한지 아닌지를 좀처럼 숨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안심하고 지내는 카페라면 온갖 자극에 지친 사람에게도 편안한 쉼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워온 사람으로서 저는 카페의 고양이가 힘들어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나타나는 징후도 쉽게 알아차리는 편입니다. 결국 가장 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곳의 면모를 보여주는 법입니다. 고양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카페라면 손님의 필요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p> <p>다음은 제가 직접 만나고, 또 쓰다듬어 본 멋진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사이공의 카페 다섯 곳입니다.</p> <h3 dir="ltr">1. 오베리 카페(Auvery Cafe)</h3> <p dir="ltr"><strong>14 Lê Ngô Cát, Xuân Hòa Ward</strong></p> <div class="bigg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4.webp" /></div> <div class="one-row bigg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2.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3.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Jimmy Art Devier).</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끼꼰(Ký Con)에 위치한 1호점의 분점인 오베리 카페는 교통 소음에서 벗어나 쉬어가기 좋은, 고풍스러운 레 응오 깟(Lê Ngô Cát) 거리에 자리한 아늑한 공간입니다. 넓고 그늘진 안뜰에는 나무가 늘어서 있어, 아직 날씨가 선선한 사이공의 이른 아침이면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기 좋습니다. 오베리의 상주 고양이는 생강색과 크림색 털이 반반 섞인 ‘엠(Em)’입니다. 처음에는 다소 심술궂어 보일 수 있지만 몇 번 방문하다 보면 어느새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벼댑니다. 물론 엠이 낮잠을 자지 않는 시간에 찾아갈 만큼 운이 좋다면 말입니다.</span></p> <div class="one-row half-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5.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6.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2. 프엉 카페(Phường Cà Phê)</h3> <p dir="ltr"><strong>115/102 Lê Văn Sỹ, Phú Nhuận Ward</strong></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7.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8.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프엉 카페는 푸뉴언(Phú Nhuận)의 독특한 구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도상에서는 하나의 거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길이 나란히 이어져 있습니다. 하노이의 기찻길 거리와 달리 이곳의 선로는 약간 높이 올라와 있고 주변과 구분되어 있지만, 프엉 카페에 앉아 있으면 가끔 지나가는 열차의 요란한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풍성한 긴 털과 오드아이를 지닌 흰 고양이로, 우아한 자태만으로도 평범한 하루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span></p> <div class="one-row bigg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1.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0.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3.&nbsp;하루 크래프트(Haru Craft)</h3> <p dir="ltr"><strong>15/10 Nguyễn Huy Tưởng, Gia Định Ward</strong></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2.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3.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까오 년(Cao Nhâ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가 도예용 물레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귀여운 영상을 수없이 봤지만, 저는 여전히 도예와 고양이는 위험한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는 너무나 쉽게 깨지고, 고양이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nbsp;하지만 하루 크래프트는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듯합니다. 한국의 달고나 커피에서 이름을 따온 크림색과 생강색 털의 활기찬 고양이 ‘고나(Gona)’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널찍한 카페 한쪽에는 정기적으로 도예 워크숍이 열리는 전용 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혼자 참여해도 좋고,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찾아도 좋습니다. 다만 도자기를 다룰 때는 고양이를 조심해야 합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5.web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4.webp" /></div>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6.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4. 칼러리(Kalery)</h3> <p dir="ltr"><strong>172/9 Đặng Văn Ngữ, Phú Nhuận Ward</strong></p> <div class="bigg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7.webp" /></div> <div class="one-row bigg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8.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9.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칼러리는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밝은 조명과 넉넉한 콘센트, 차분한 분위기가 매력적입니다. 카운터에서는 다양한 간식과 과자, 문구류에 더해 고양이 간식까지 판매합니다. 아마도 ‘미(Mỹ)’의 마음을 얻고 싶은 손님들을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nbsp;여성스러운 이름과 달리 미는 수컷이며, 그것도 아주 잘생긴 회색 태비 고양이입니다. 테이블 아래를 잘 살펴보면 어슬렁거리고 있거나 바닥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 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0.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1.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5. 패신저스(Passengers)</h3> <p dir="ltr"><strong>46/9 Trần Quang Diệu, Nhiêu Lộc Ward</strong></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2.webp" /> <p class="image-caption">사진: 도 아인 쯔엉(Đỗ Anh Chương).</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덩굴로 뒤덮인 패신저스의 나무 문은 언뜻 신비롭게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박한 가구와 갖가지 소품, 그리고 이 목록의 다른 카페보다 훨씬 많은 고양이와 개들이 어우러진 한적한 세상이 펼쳐집니다.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지만, 언제 가더라도 적어도 고양이 세 마리와 개 한 마리 정도는 낮잠을 자거나, 손님들의 다리 사이를 누비거나, 배낭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곳의 동물 대부분은 구조된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복슬복슬한 친구들 중 일부가 한때 거리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모두 행복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이곳은 분명 이들의 세상이고, 우리는 잠시 그곳에 머무는 손님일 뿐입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3.web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5.webp" /></div>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6.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도 아인 쯔엉.</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1.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0.webp" data-position="50% 50%" /></p> <p><em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저는 가본 카페 직원들의 얼굴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묘하게도 잘 기억합니다. 고양이를 쓰다듬었을 때 느껴졌던 털의 감촉, 가구 위를 오르내리며 내던 작은 소리, 그리고 짧지만 기억에 남는 만남 속에서 드러난 저마다의 미묘한 개성까지 생생히 떠오릅니다.</em></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이 글은 반려동물 카페 목록이 아니라, 우연히 고양이 한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카페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유형 모두 고양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고양이가 주된 볼거리인지, 아니면 카페에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분위기의 일부인지에 따라 구분했습니다.</span></p> <p>카페에서 고양이, 혹은 그 어떤 동물이든 함께 지내게 하는 것은 용기와 전략이 필요하면서도 위험 부담이 따르는 결정입니다. 느긋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는 어떤 공간에든 개성과 생기를 더합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편안한지 아닌지를 좀처럼 숨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안심하고 지내는 카페라면 온갖 자극에 지친 사람에게도 편안한 쉼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워온 사람으로서 저는 카페의 고양이가 힘들어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나타나는 징후도 쉽게 알아차리는 편입니다. 결국 가장 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곳의 면모를 보여주는 법입니다. 고양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카페라면 손님의 필요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p> <p>다음은 제가 직접 만나고, 또 쓰다듬어 본 멋진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사이공의 카페 다섯 곳입니다.</p> <h3 dir="ltr">1. 오베리 카페(Auvery Cafe)</h3> <p dir="ltr"><strong>14 Lê Ngô Cát, Xuân Hòa Ward</strong></p> <div class="bigg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4.webp" /></div> <div class="one-row bigg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2.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3.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Jimmy Art Devier).</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끼꼰(Ký Con)에 위치한 1호점의 분점인 오베리 카페는 교통 소음에서 벗어나 쉬어가기 좋은, 고풍스러운 레 응오 깟(Lê Ngô Cát) 거리에 자리한 아늑한 공간입니다. 넓고 그늘진 안뜰에는 나무가 늘어서 있어, 아직 날씨가 선선한 사이공의 이른 아침이면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기 좋습니다. 오베리의 상주 고양이는 생강색과 크림색 털이 반반 섞인 ‘엠(Em)’입니다. 처음에는 다소 심술궂어 보일 수 있지만 몇 번 방문하다 보면 어느새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벼댑니다. 물론 엠이 낮잠을 자지 않는 시간에 찾아갈 만큼 운이 좋다면 말입니다.</span></p> <div class="one-row half-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5.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6.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2. 프엉 카페(Phường Cà Phê)</h3> <p dir="ltr"><strong>115/102 Lê Văn Sỹ, Phú Nhuận Ward</strong></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7.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08.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프엉 카페는 푸뉴언(Phú Nhuận)의 독특한 구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도상에서는 하나의 거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길이 나란히 이어져 있습니다. 하노이의 기찻길 거리와 달리 이곳의 선로는 약간 높이 올라와 있고 주변과 구분되어 있지만, 프엉 카페에 앉아 있으면 가끔 지나가는 열차의 요란한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풍성한 긴 털과 오드아이를 지닌 흰 고양이로, 우아한 자태만으로도 평범한 하루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span></p> <div class="one-row bigg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1.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0.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3.&nbsp;하루 크래프트(Haru Craft)</h3> <p dir="ltr"><strong>15/10 Nguyễn Huy Tưởng, Gia Định Ward</strong></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2.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3.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까오 년(Cao Nhâ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가 도예용 물레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귀여운 영상을 수없이 봤지만, 저는 여전히 도예와 고양이는 위험한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는 너무나 쉽게 깨지고, 고양이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nbsp;하지만 하루 크래프트는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듯합니다. 한국의 달고나 커피에서 이름을 따온 크림색과 생강색 털의 활기찬 고양이 ‘고나(Gona)’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널찍한 카페 한쪽에는 정기적으로 도예 워크숍이 열리는 전용 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혼자 참여해도 좋고,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찾아도 좋습니다. 다만 도자기를 다룰 때는 고양이를 조심해야 합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5.web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4.webp" /></div>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6.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4. 칼러리(Kalery)</h3> <p dir="ltr"><strong>172/9 Đặng Văn Ngữ, Phú Nhuận Ward</strong></p> <div class="bigg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7.webp" /></div> <div class="one-row bigg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8.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19.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칼러리는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밝은 조명과 넉넉한 콘센트, 차분한 분위기가 매력적입니다. 카운터에서는 다양한 간식과 과자, 문구류에 더해 고양이 간식까지 판매합니다. 아마도 ‘미(Mỹ)’의 마음을 얻고 싶은 손님들을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nbsp;여성스러운 이름과 달리 미는 수컷이며, 그것도 아주 잘생긴 회색 태비 고양이입니다. 테이블 아래를 잘 살펴보면 어슬렁거리고 있거나 바닥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 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0.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1.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지미 아트 데비어.</p> <h3 dir="ltr">5. 패신저스(Passengers)</h3> <p dir="ltr"><strong>46/9 Trần Quang Diệu, Nhiêu Lộc Ward</strong></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2.webp" /> <p class="image-caption">사진: 도 아인 쯔엉(Đỗ Anh Chương).</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덩굴로 뒤덮인 패신저스의 나무 문은 언뜻 신비롭게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박한 가구와 갖가지 소품, 그리고 이 목록의 다른 카페보다 훨씬 많은 고양이와 개들이 어우러진 한적한 세상이 펼쳐집니다.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지만, 언제 가더라도 적어도 고양이 세 마리와 개 한 마리 정도는 낮잠을 자거나, 손님들의 다리 사이를 누비거나, 배낭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곳의 동물 대부분은 구조된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복슬복슬한 친구들 중 일부가 한때 거리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모두 행복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이곳은 분명 이들의 세상이고, 우리는 잠시 그곳에 머무는 손님일 뿐입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3.web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5.webp" /></div>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1/24/cats/26.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사진: 도 아인 쯔엉.</p></div> 베트남의 지전(紙錢): 삶과 죽음, 근대성과 전통을 잇는 종이돈 2026-09-16T22:33:24+07:00 2026-09-16T22:33:24+07:00 https://kr.saigoneer.com/문화/13730-베트남의-지전-紙錢-삶과-죽음,-근대성과-전통을-잇는-종이돈 티 응우옌(Thi Nguyễn) 글. 한나 호앙(Hannah Hoàng) 그림.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2/01/20/josspaper0.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2/01/20/josspaper0b.jpg" data-position="50% 50%" /></p> <p><em>번역자의 서문: 특히 뗏(Tết)과 같은 명절이 되면, 거리 곳곳에서 얼핏 진짜 돈처럼 보이는 종이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진짜 돈은 아닙니다. 죽은 이를 위한 제물로 태우는 종이돈인 ‘지전(紙錢)’입니다. 지전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례용품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워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일 수 있습니다. 아래 번역된 에세이는 원래 사이공이어 영문판과 베트남어판에 게재된 글로, 필자 티 응우옌이 지전과 얽힌 자신의 경험을 되짚으며, 지전이 삶과 죽음뿐 아니라 근대성과 전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어떻게 놓이게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em></p> <p>제가 그 의미를 의식하기도 전부터 지전과 제사용 종이 모형은 제 기억과 경험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일(giỗ)이 되면 할머니는 늘 집의 작은 앞마당에 큰 솥을 놓고 지전 한 무더기를 태우곤 했습니다. 그 광경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종이는 불길 속에서 연기와 재로 변했고, 몇 분 만에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습니다.</p> <p>지전을 태우는 것은 죽은 이에게 돈과 재물을 바치는 의식으로, 기일이나 뗏, 그리고 중원절(Hungry Ghost Festival, rằm tháng 7 또는 xá tội vong nhân)에 특히 널리 행해집니다. 베트남이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자랐거나 살아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풍경일 것입니다. 이 관습의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은 듯합니다. 사이공의 어느 시장을 걷더라도, 작은 동네 시장에서 크고 복잡한 빈떠이 시장(Bình Tây Market)에 이르기까지 지전과 향을 파는 가게를 적어도 한 곳은 지나치게 마련입니다.</p> <p>사람들은 지전만 따로 태우기도 하고, 더 큰 의례의 일부로 태우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시기는 중원절이 있는 음력 7월입니다. 이 시기에는 생전에 가족이나 거처가 없었던 떠도는 영혼들에게 공양을 올립니다. 종이로 만든 화폐와 여러 가지 모형은 과일, 사탕수수, 과자, 향과 함께 둥근 양철 쟁반 위에 차려집니다. 집주인이 기도를 읊는 동안 제물은 불태워질 때를 기다립니다. 이 의식을 꿍꼬혼(cúng cô hồn)이라고 합니다. 의식이 절반쯤 진행될 무렵이면 동네 아이들이 벌써 대문 앞에 모여, 의식이 끝난 뒤 남은 제물을 재빨리 가져가는 풍습인 지얻꼬혼(giật cô hồn)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p> <p>푸뉴언(Phú Nhuận)의 한 동네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지전을 제대로 태우는 법을 묻자 여러 가지 조언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완전히 타야 해요. 그래야 조상들이 제물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p> <p>이 관습을 설명하는 하나의 철학적·도덕적 원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은 흔히 사후 세계가 현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류학자 권헌익은 불교가 ‘인생은 일종의 은행 대출과 같으며, 사람이 죽으면 그 빚을 갚는 것은 후손의 몫’이라는 관념을 퍼뜨렸다고 설명합니다. 키르스텐 엔드레스(Kirsten Endres)와 안드레아 라우저(Andrea Lauser)는 이러한 관념을 효(孝, hiếu)와 연결합니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조상이 남긴 도덕적 빚, 즉 은혜를 갚는 일이 후손의 의무입니다. 권헌익은 부가 사후 세계에서도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현세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이를 보내줄 수 있다고 봅니다.</p> <p>이러한 관습이 베트남에서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연구자들은 화폐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베트남의 봉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이를 오랜 중국 지배의 영향과 연관 지어 설명합니다.</p> <p>베트남어로 giấy vàng mã 또는 giấy vàng bạc라 부르는 전통 지전은 거친 흰색 대나무 종이로 만들고 가장자리에 금색이나 은색 테두리를 얇게 두른 형태입니다. 여기서 vàng은 ‘금’, bạc은 ‘은’을 뜻합니다. 말이나 옷 등을 본뜬 종이 모형 역시 널리 쓰이는 제물입니다. 오늘날 일반적인 제례용품점에 가면 이러한 전통 지전과 함께 현대적인 물건이나 외국 화폐를 본뜬 종이 모형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O3XTkSu.jpg" /></p> <p>프레드 블레이크(Fred Blake)는 저서 『Burning Money』에서 과거의 지전과 현대의 지전을 비교하며 두 가지 큰 차이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달러나 유로 같은 외국 화폐가 등장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스마트폰과 같은 현대 상품이 제물의 형태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p> <p>이처럼 다양해진 제례용품은 베트남 전역의 상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저승 달러’(đô la âm phủ) 외에도, 떤딘 시장(Tân Định Market) 외곽을 둘러보면 종이로 만든 아이패드 모형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빈떠이 시장을 걷다 보면 명품 브랜드 이름을 붙인 집이나 옷 모형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승 달러 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볼 법한 물건을 한데 묶은 기성품 세트입니다. 현대식 의류와 스마트폰, 향수, 신용카드, 시계 등이 한 꾸러미에 들어 있습니다.</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io26JyU.jpg"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CTXuzFF.jpg"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JsKycLL.jpg" /></div> </div> <p>봉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임에도 지전 태우기가 다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이 관습이 낭비적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이념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중앙계획경제에 기반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됐습니다. 도이머이(đổi mới) 이후 지전 태우기는 다시 합법화됐고, 여러 전통 의례와 함께 되살아났습니다.&nbsp;역사학자 후에탐 호 타이(Hue-Tam Ho Tai)는 저서 『기억의 나라(The Country of Memory)』에서 이러한 변화를 ‘기념 열풍(commemorative fever)’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공적 기억이 더 큰 역사 서사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서사에는 과거를 서막으로 삼아 미래의 진보와 비전을 그리는 관점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p> <p>인류학자 힐 게이츠(Hill Gates)는 오늘날 넘쳐나는 각종 영적 화폐를 “소상품 자본주의가 종교적 상상력에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물질적 상징”이라고 묘사했습니다. 프레드 블레이크 역시 상품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주목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손으로 만들던 금·은 모형은 돈이나 부를 상징적으로 재현한 것이었던 반면, 실제 화폐와 흡사하게 인쇄해 대량 생산하는 오늘날의 지전은 상징적 재현이라기보다 실물의 모사에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모조 화폐가 너무 사실적으로 제작된 탓에 2010년 베트남 중앙은행이 위조를 막기 위해 베트남 동화를 본뜬 모조 지폐를 전면 금지하기도 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EE7VkAk.jpg" /></p> <p>오늘날 이 관습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지전을 태우는 행위, 또는 적어도 지나치게 많은 지전을 태우는 행위를 ‘미신’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두드러집니다. ‘미신’에 해당하는 말은 아시아 여러 언어에 존재합니다. 베트남어 mê tín, 중국어 mixin(迷信), 일본어 meishin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20세기 전환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표현을 받아들이면서 등장한 신조어입니다. Mê(迷)는 ‘현혹되다’ 또는 ‘착각에 빠지다’라는 뜻이고, tín(信)은 믿음이나 신앙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mê tín은 그릇되거나 미혹된 믿음을 뜻하며, 이는 역으로 올바르고 정당한 믿음이 따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은 근대성, 과학, 세속화를 내세우는 사회와 역설적인 긴장을 이루게 됩니다.</p> <p>도이머이 이후 베트남의 민족주의 담론은 ‘근대성’과 ‘전통’을 동시에 강조하게 됐습니다.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함께 ‘근대성’은 발전과 부를 상징하는 말이 됐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근대화가 서구의 영향까지 불러올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에 세계 시장에 개방하는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베트남의 전통문화와 일관된 민족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nbsp;오늘날 뗏에 널리 등장하는 갖가지 제례용품은 서로 충돌하는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힘이 한데 공존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근대성과 전통, 시장경제와 민족 정체성처럼 서로 다른 가치가 지전이라는 작은 종이 위에서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2/01/20/josspaper0.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2/01/20/josspaper0b.jpg" data-position="50% 50%" /></p> <p><em>번역자의 서문: 특히 뗏(Tết)과 같은 명절이 되면, 거리 곳곳에서 얼핏 진짜 돈처럼 보이는 종이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진짜 돈은 아닙니다. 죽은 이를 위한 제물로 태우는 종이돈인 ‘지전(紙錢)’입니다. 지전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례용품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워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일 수 있습니다. 아래 번역된 에세이는 원래 사이공이어 영문판과 베트남어판에 게재된 글로, 필자 티 응우옌이 지전과 얽힌 자신의 경험을 되짚으며, 지전이 삶과 죽음뿐 아니라 근대성과 전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어떻게 놓이게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em></p> <p>제가 그 의미를 의식하기도 전부터 지전과 제사용 종이 모형은 제 기억과 경험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일(giỗ)이 되면 할머니는 늘 집의 작은 앞마당에 큰 솥을 놓고 지전 한 무더기를 태우곤 했습니다. 그 광경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종이는 불길 속에서 연기와 재로 변했고, 몇 분 만에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습니다.</p> <p>지전을 태우는 것은 죽은 이에게 돈과 재물을 바치는 의식으로, 기일이나 뗏, 그리고 중원절(Hungry Ghost Festival, rằm tháng 7 또는 xá tội vong nhân)에 특히 널리 행해집니다. 베트남이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자랐거나 살아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풍경일 것입니다. 이 관습의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은 듯합니다. 사이공의 어느 시장을 걷더라도, 작은 동네 시장에서 크고 복잡한 빈떠이 시장(Bình Tây Market)에 이르기까지 지전과 향을 파는 가게를 적어도 한 곳은 지나치게 마련입니다.</p> <p>사람들은 지전만 따로 태우기도 하고, 더 큰 의례의 일부로 태우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시기는 중원절이 있는 음력 7월입니다. 이 시기에는 생전에 가족이나 거처가 없었던 떠도는 영혼들에게 공양을 올립니다. 종이로 만든 화폐와 여러 가지 모형은 과일, 사탕수수, 과자, 향과 함께 둥근 양철 쟁반 위에 차려집니다. 집주인이 기도를 읊는 동안 제물은 불태워질 때를 기다립니다. 이 의식을 꿍꼬혼(cúng cô hồn)이라고 합니다. 의식이 절반쯤 진행될 무렵이면 동네 아이들이 벌써 대문 앞에 모여, 의식이 끝난 뒤 남은 제물을 재빨리 가져가는 풍습인 지얻꼬혼(giật cô hồn)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p> <p>푸뉴언(Phú Nhuận)의 한 동네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지전을 제대로 태우는 법을 묻자 여러 가지 조언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완전히 타야 해요. 그래야 조상들이 제물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p> <p>이 관습을 설명하는 하나의 철학적·도덕적 원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은 흔히 사후 세계가 현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류학자 권헌익은 불교가 ‘인생은 일종의 은행 대출과 같으며, 사람이 죽으면 그 빚을 갚는 것은 후손의 몫’이라는 관념을 퍼뜨렸다고 설명합니다. 키르스텐 엔드레스(Kirsten Endres)와 안드레아 라우저(Andrea Lauser)는 이러한 관념을 효(孝, hiếu)와 연결합니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조상이 남긴 도덕적 빚, 즉 은혜를 갚는 일이 후손의 의무입니다. 권헌익은 부가 사후 세계에서도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현세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이를 보내줄 수 있다고 봅니다.</p> <p>이러한 관습이 베트남에서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연구자들은 화폐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베트남의 봉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이를 오랜 중국 지배의 영향과 연관 지어 설명합니다.</p> <p>베트남어로 giấy vàng mã 또는 giấy vàng bạc라 부르는 전통 지전은 거친 흰색 대나무 종이로 만들고 가장자리에 금색이나 은색 테두리를 얇게 두른 형태입니다. 여기서 vàng은 ‘금’, bạc은 ‘은’을 뜻합니다. 말이나 옷 등을 본뜬 종이 모형 역시 널리 쓰이는 제물입니다. 오늘날 일반적인 제례용품점에 가면 이러한 전통 지전과 함께 현대적인 물건이나 외국 화폐를 본뜬 종이 모형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O3XTkSu.jpg" /></p> <p>프레드 블레이크(Fred Blake)는 저서 『Burning Money』에서 과거의 지전과 현대의 지전을 비교하며 두 가지 큰 차이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달러나 유로 같은 외국 화폐가 등장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스마트폰과 같은 현대 상품이 제물의 형태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p> <p>이처럼 다양해진 제례용품은 베트남 전역의 상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저승 달러’(đô la âm phủ) 외에도, 떤딘 시장(Tân Định Market) 외곽을 둘러보면 종이로 만든 아이패드 모형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빈떠이 시장을 걷다 보면 명품 브랜드 이름을 붙인 집이나 옷 모형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승 달러 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볼 법한 물건을 한데 묶은 기성품 세트입니다. 현대식 의류와 스마트폰, 향수, 신용카드, 시계 등이 한 꾸러미에 들어 있습니다.</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io26JyU.jpg"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CTXuzFF.jpg"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JsKycLL.jpg" /></div> </div> <p>봉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임에도 지전 태우기가 다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이 관습이 낭비적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이념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중앙계획경제에 기반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됐습니다. 도이머이(đổi mới) 이후 지전 태우기는 다시 합법화됐고, 여러 전통 의례와 함께 되살아났습니다.&nbsp;역사학자 후에탐 호 타이(Hue-Tam Ho Tai)는 저서 『기억의 나라(The Country of Memory)』에서 이러한 변화를 ‘기념 열풍(commemorative fever)’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공적 기억이 더 큰 역사 서사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서사에는 과거를 서막으로 삼아 미래의 진보와 비전을 그리는 관점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p> <p>인류학자 힐 게이츠(Hill Gates)는 오늘날 넘쳐나는 각종 영적 화폐를 “소상품 자본주의가 종교적 상상력에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물질적 상징”이라고 묘사했습니다. 프레드 블레이크 역시 상품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주목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손으로 만들던 금·은 모형은 돈이나 부를 상징적으로 재현한 것이었던 반면, 실제 화폐와 흡사하게 인쇄해 대량 생산하는 오늘날의 지전은 상징적 재현이라기보다 실물의 모사에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모조 화폐가 너무 사실적으로 제작된 탓에 2010년 베트남 중앙은행이 위조를 막기 위해 베트남 동화를 본뜬 모조 지폐를 전면 금지하기도 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EE7VkAk.jpg" /></p> <p>오늘날 이 관습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지전을 태우는 행위, 또는 적어도 지나치게 많은 지전을 태우는 행위를 ‘미신’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두드러집니다. ‘미신’에 해당하는 말은 아시아 여러 언어에 존재합니다. 베트남어 mê tín, 중국어 mixin(迷信), 일본어 meishin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20세기 전환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표현을 받아들이면서 등장한 신조어입니다. Mê(迷)는 ‘현혹되다’ 또는 ‘착각에 빠지다’라는 뜻이고, tín(信)은 믿음이나 신앙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mê tín은 그릇되거나 미혹된 믿음을 뜻하며, 이는 역으로 올바르고 정당한 믿음이 따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은 근대성, 과학, 세속화를 내세우는 사회와 역설적인 긴장을 이루게 됩니다.</p> <p>도이머이 이후 베트남의 민족주의 담론은 ‘근대성’과 ‘전통’을 동시에 강조하게 됐습니다.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함께 ‘근대성’은 발전과 부를 상징하는 말이 됐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근대화가 서구의 영향까지 불러올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에 세계 시장에 개방하는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베트남의 전통문화와 일관된 민족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nbsp;오늘날 뗏에 널리 등장하는 갖가지 제례용품은 서로 충돌하는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힘이 한데 공존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근대성과 전통, 시장경제와 민족 정체성처럼 서로 다른 가치가 지전이라는 작은 종이 위에서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p></div> 맛집 소개: 옴 모모(Om Momo), 티베트의 이야기와 맛있는 만두를 사이공에 전하다 2026-09-10T11:06:57+07:00 2026-09-10T11:06:57+07:00 https://kr.saigoneer.com/eat-drink/13729-옴-모모-om-momo-,-티베트의-이야기와-맛있는-만두를-사이공에-전하다 권산(San Kwon) 글. 지미 아트 데비어(Jimmy Art Devier) 사진.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5.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0.webp" data-position="50% 50%" /></p> <p dir="ltr"><em>모모(momo)의 존재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최근 타오디엔(Thảo Điền)의 어두운 골목 깊숙이 자리한 아늑한 티베트 식당 ‘옴 모모(Om Momo)’를 처음 방문하고서야 비로소 맛볼 수 있었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신비로운 작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중앙에는 청록색 원통형 장막에 살짝 가려진 조형물이 서 있고, 벽에는 생동감 넘치는 색감의 사진과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방 안을 따뜻하게 밝히는 소금 램프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의 테이블이 자리합니다.</em></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모모가 낯선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모모는 티베트식 만두로 몇 가지 특징에서 다른 만두와 구별됩니다. 무엇보다 피가 두꺼워 쫄깃한 식감이 두드러지고, 고기소는 상당히 단순한 편입니다. 옴 모모의 주인 체링 타쉬 갤탕(Tsering Tashi Gyalthang)은 티베트 산악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옴 모모에서는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 중 하나를 속재료로 선택할 수 있으며, 시금치와 치즈를 넣은 맛있는 채식 모모도 맛볼 수 있습니다. 체링의 말처럼, 모모의 맛은 재료 본연의 풍미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순수”한 맛을 자랑합니다.</span></p> <div class="one-row biggest">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5.web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45.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타오디엔의 한 주거 단지 안쪽 한적한 곳에 문을 연 체링의 옴 모모</p> <h3 dir="ltr">영상 제작에서 모모로</h3>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카리스마와 부드러운 인상을 함께 지닌 체링이 옴 모모를 열기까지의 과정은 색다르면서도 흥미롭습니다. 2000년대 초 젊은 나이에 베트남에 온 뒤 체링은 줄곧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상업 영상과 광고를 만들었지만, 때때로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도 병행했습니다.</span></p> <p>그러던 중 2년 전, 광고 감독으로서 그의 경력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티베트인 친구들을 초대해 메콩 델타에서 영화 작업을 함께한 것입니다. 이 작업은 티베트인들의 무국적과 망명의 경험을 다룬 옴니버스 영화 《망향의 노래》(State of Statelessness)의 일부였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여러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됐습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r"><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2.webp" /> <p class="image-caption">옴 모모의 야외 좌석 위로 걸린 기도 깃발.</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친구들이 머무는 동안 체링과 친구들은 자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모모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체링의 설명에 따르면 모모는 만드는 모든 과정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본래 함께 만들어 먹는 공동체적 음식입니다. 이런 경험 자체가 그에게 새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를 농담 삼아 “베트남 주재 티베트 비공식 대사”라고 부를 만큼, 사이공을 거쳐 가는 티베트인들을 자주 맞이해 왔습니다.</span></p> <p>하지만 이번에는 함께 모모를 만들고 나누는 경험이 그에게 이전과는 다른 갈망을 남겼습니다. “감독으로서 수년간 광고를 만들어 왔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도 결국 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체링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때 저는 정말 인간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프로젝트는 음식과 관련된 것으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33.webp" /> <p class="image-caption">만두 빚기를 완벽히 익히는 것은 2024년 체링이 스스로 세운 개인 프로젝트였습니다.</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그로부터 1년 뒤인 2024년, 체링은 한 해 동안 오직 한 가지, ‘완벽한 만두 만들기’를 배우는 데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배웠고, 영감을 얻기 위해 예전부터 좋아하던 장소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배운 것을 안고 사이공으로 돌아온 뒤에는 집에서 매일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만든 만두가 너무 많아지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고, 친구들은 체링이 “정말 끔찍했다”고 표현한 초기작부터 지금 옴 모모에서 맛볼 수 있는 모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버전을 맛봤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7.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4.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아늑한 분위기의 식당 내부.</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친구들은 종종 그의 만두를 팔아보라고 권했지만, 체링은 늘 망설였습니다. “만두를 판다는 생각이 여전히 무척 어색했습니다.” 그는 설명합니다. “저는 평생 예술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파는 일을 어느 정도 쑥스럽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모모를 만들면서 체링은 인내심이 더 커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느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그래서 카페를 운영하던 이웃이 그 자리를 인수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체링은 뜻밖에도 승낙했습니다. “1년 전이었다면 누가 이런 제안을 해도 절대 안 한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모모를 만들며 명상하다 보니 ‘왜 안 되겠어?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향에 있는 절친 안토(Anto)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와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span></p> <h3 dir="ltr">사이공에서 만나는 모모와 다양한 티베트 음식</h3>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1.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3.webp" /></div> </div> <p>옴 모모의 모모가 보여주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새는 체링이 형태와 맛을 완성하기 위해 들인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전통적으로 모모는 그대로 먹거나 발효한 티베트식 칠리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옴 모모에서는 매운 정도가 서로 다른 세 가지 수제 소스를 제공합니다. 각기 다른 풍미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가장 매운 소스는 제법 강렬한 매운맛과 얼얼한 자극을 선사합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9.webp" /> <p class="image-caption">이 칠리 소스 중 가장 매운 것은 어느 것일까요?</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옴 모모에서는 모모를 그대로 내기도 하지만, 여러 향신료를 넣은 인도식 커리 소스 위에 올려 내기도 합니다. 모모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소스도 달라집니다. 체링은 모모가 인도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어, 향신료를 사용한 소스와 함께 길거리 음식으로 흔히 판매된다고 설명합니다.</span></p> <p>1959년 티베트 봉기 이후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포함한 수만 명의 티베트인이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피신했고, 인도는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티베트 망명 공동체가 자리 잡은 나라가 됐습니다. 체링 역시 인도 북부에서 티베트 난민으로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모모를 내는 것은 그에게 자신이 자란 인도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도 있습니다.</p> <div class="one-row smaller">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0.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8.webp" /></div>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곱게 주름 잡힌 만두 한 점보다 더 완벽한 한입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입 베어 물면 속의 풍미가 한꺼번에 퍼지는, 말하자면 음식계의 ‘트로이 목마’와도 같습니다. 소스를 듬뿍 머금은 모모라면 그 즐거움은 배가됩니다. 맛있는 소스를 남김없이 먹기 위해 빵으로 훑어 먹듯, 모모의 쫄깃한 피는 진한 소스와 감칠맛 나는 속재료와 훌륭하게 어우러집니다. 한입에 넣기는 조금 크지만, 모모 하나를 통째로 먹으며 풍미가 한꺼번에 입안에 퍼지는 순간에는 특별한 만족감이 있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37.webp" alt="" /> <p class="image-caption">소고기 모모.</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3.webp" alt="" /> <p class="image-caption">초록색 소스를 곁들인 시금치 치즈 모모.</p> </div>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4.webp" alt="" /> <p class="image-caption">노란색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모모.</p> </div>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이 식당은 대표 메뉴인 모모 외에도 다양한 티베트 요리를 선보입니다. 샤프타(shapta)는 부드러운 소고기나 닭고기를 피망, 양파, 토마토와 함께 볶은 요리입니다. 제법 매콤하지만, 곁들여 나오는 폭신한 티베트식 찐빵 팅모(tingmo)와 잘 어울립니다. 그 밖에도 체링이 “티베트의 소울푸드”라고 표현하는 치킨 샴데이(chicken shamdey)가 있습니다. 닭고기와 감자를 푹 끓여 밥과 함께 내는 스튜입니다. 부드러운 감자를 진한 칠리·치즈 소스에 넣은 케와 다치(kewa datshi)도 맛볼 수 있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8.webp" alt="" /> <p class="image-caption">티베트식 빵.</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9.webp" alt="" /> <p class="image-caption">치킨 샴데이(chicken shamdey).</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0.webp" alt="" /> <p class="image-caption">비프 샤프타(beef shapta).</p> </div>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옴 모모의 디저트도 꼭 맛볼 만합니다. 체링에 따르면 디저트 메뉴는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고, 각각 그들에게 헌정했습니다.</span></p> <p>레드 와인과 향신료에 졸인 배를 직접 빚은 티베트식 쌀술의 술지게미 위에 올린 디저트는 ‘술 취한 라마(Drunken Lama)’라고 불립니다. 명상하는 라마의 모습을 닮은 이 디저트는 부탄의 라마이자 영화감독인 종사르 켄체 린포체(Dzongsar Khyentse Rinpoche)에게 바친 메뉴입니다. 초콜릿 라바 케이크는 초콜릿을 사랑하는 체링의 딸을 위해 만들었으며, 티베트 장미 판나코타는 판나코타를 무척 좋아하는 그의 여자친구를 위해 탄생했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40.web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식사를 마친 뒤 사이공이어팀은 티베트 전통 수유차도 맛봤습니다. 발효한 홍차에 버터 한 숟갈을 넣어 섞은 차입니다. 이 차는 거의 모든 면에서 예상 밖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우선 보통 ‘찻잔’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큰 나무 그릇에 담겨 나옵니다.</span></p> <p>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짭짤한맛입니다. 그래서 맛은 마치 짭짤하고 따뜻한 아이스크림이 녹아 있는 듯합니다. 체링의 설명에 따르면 차와 소금, 버터의 조합은 티베트인들이 하루를 힘차게 보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줍니다. 옴 모모에서는 소젖으로 만든 버터를 사용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야크 버터로 차를 만듭니다. 솔직히 말해 수유차는 누구에게나 맞는 맛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부끄럽게도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 경험만으로 한 번쯤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r"><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46.web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체링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곧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옴 모모의 철학도 이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각 요리가 체링 자신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 정성껏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span></p> <p>더 넓게 보면 체링은 옴 모모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로 바라봅니다.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사이공의 많은 이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더 깊이 알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p> <p>“많은 사람에게 우리 음식은 티베트를 처음 만나는 계기입니다.” 체링은 설명합니다. “예술이든 음악이든 음식이든, 모든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표입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6.webp" /> <p class="image-caption">체링은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그것이 티베트를 더 깊이 알아가는 여정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p> </div> <div class="listing-detail"> <p data-icon="a">Om Momo</p> <p data-icon="k">11/2 Street No. 57, An Khánh, HCMC</p> </div> </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5.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0.webp" data-position="50% 50%" /></p> <p dir="ltr"><em>모모(momo)의 존재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최근 타오디엔(Thảo Điền)의 어두운 골목 깊숙이 자리한 아늑한 티베트 식당 ‘옴 모모(Om Momo)’를 처음 방문하고서야 비로소 맛볼 수 있었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신비로운 작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중앙에는 청록색 원통형 장막에 살짝 가려진 조형물이 서 있고, 벽에는 생동감 넘치는 색감의 사진과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방 안을 따뜻하게 밝히는 소금 램프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의 테이블이 자리합니다.</em></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모모가 낯선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모모는 티베트식 만두로 몇 가지 특징에서 다른 만두와 구별됩니다. 무엇보다 피가 두꺼워 쫄깃한 식감이 두드러지고, 고기소는 상당히 단순한 편입니다. 옴 모모의 주인 체링 타쉬 갤탕(Tsering Tashi Gyalthang)은 티베트 산악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옴 모모에서는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 중 하나를 속재료로 선택할 수 있으며, 시금치와 치즈를 넣은 맛있는 채식 모모도 맛볼 수 있습니다. 체링의 말처럼, 모모의 맛은 재료 본연의 풍미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순수”한 맛을 자랑합니다.</span></p> <div class="one-row biggest">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5.web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45.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타오디엔의 한 주거 단지 안쪽 한적한 곳에 문을 연 체링의 옴 모모</p> <h3 dir="ltr">영상 제작에서 모모로</h3>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카리스마와 부드러운 인상을 함께 지닌 체링이 옴 모모를 열기까지의 과정은 색다르면서도 흥미롭습니다. 2000년대 초 젊은 나이에 베트남에 온 뒤 체링은 줄곧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상업 영상과 광고를 만들었지만, 때때로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도 병행했습니다.</span></p> <p>그러던 중 2년 전, 광고 감독으로서 그의 경력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티베트인 친구들을 초대해 메콩 델타에서 영화 작업을 함께한 것입니다. 이 작업은 티베트인들의 무국적과 망명의 경험을 다룬 옴니버스 영화 《망향의 노래》(State of Statelessness)의 일부였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여러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됐습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r"><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2.webp" /> <p class="image-caption">옴 모모의 야외 좌석 위로 걸린 기도 깃발.</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친구들이 머무는 동안 체링과 친구들은 자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모모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체링의 설명에 따르면 모모는 만드는 모든 과정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본래 함께 만들어 먹는 공동체적 음식입니다. 이런 경험 자체가 그에게 새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를 농담 삼아 “베트남 주재 티베트 비공식 대사”라고 부를 만큼, 사이공을 거쳐 가는 티베트인들을 자주 맞이해 왔습니다.</span></p> <p>하지만 이번에는 함께 모모를 만들고 나누는 경험이 그에게 이전과는 다른 갈망을 남겼습니다. “감독으로서 수년간 광고를 만들어 왔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도 결국 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체링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때 저는 정말 인간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프로젝트는 음식과 관련된 것으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33.webp" /> <p class="image-caption">만두 빚기를 완벽히 익히는 것은 2024년 체링이 스스로 세운 개인 프로젝트였습니다.</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그로부터 1년 뒤인 2024년, 체링은 한 해 동안 오직 한 가지, ‘완벽한 만두 만들기’를 배우는 데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배웠고, 영감을 얻기 위해 예전부터 좋아하던 장소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배운 것을 안고 사이공으로 돌아온 뒤에는 집에서 매일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만든 만두가 너무 많아지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고, 친구들은 체링이 “정말 끔찍했다”고 표현한 초기작부터 지금 옴 모모에서 맛볼 수 있는 모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버전을 맛봤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7.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4.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아늑한 분위기의 식당 내부.</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친구들은 종종 그의 만두를 팔아보라고 권했지만, 체링은 늘 망설였습니다. “만두를 판다는 생각이 여전히 무척 어색했습니다.” 그는 설명합니다. “저는 평생 예술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파는 일을 어느 정도 쑥스럽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모모를 만들면서 체링은 인내심이 더 커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느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그래서 카페를 운영하던 이웃이 그 자리를 인수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체링은 뜻밖에도 승낙했습니다. “1년 전이었다면 누가 이런 제안을 해도 절대 안 한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모모를 만들며 명상하다 보니 ‘왜 안 되겠어?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향에 있는 절친 안토(Anto)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와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span></p> <h3 dir="ltr">사이공에서 만나는 모모와 다양한 티베트 음식</h3>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1.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3.webp" /></div> </div> <p>옴 모모의 모모가 보여주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새는 체링이 형태와 맛을 완성하기 위해 들인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전통적으로 모모는 그대로 먹거나 발효한 티베트식 칠리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옴 모모에서는 매운 정도가 서로 다른 세 가지 수제 소스를 제공합니다. 각기 다른 풍미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가장 매운 소스는 제법 강렬한 매운맛과 얼얼한 자극을 선사합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st"><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9.webp" /> <p class="image-caption">이 칠리 소스 중 가장 매운 것은 어느 것일까요?</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옴 모모에서는 모모를 그대로 내기도 하지만, 여러 향신료를 넣은 인도식 커리 소스 위에 올려 내기도 합니다. 모모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소스도 달라집니다. 체링은 모모가 인도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어, 향신료를 사용한 소스와 함께 길거리 음식으로 흔히 판매된다고 설명합니다.</span></p> <p>1959년 티베트 봉기 이후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포함한 수만 명의 티베트인이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피신했고, 인도는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티베트 망명 공동체가 자리 잡은 나라가 됐습니다. 체링 역시 인도 북부에서 티베트 난민으로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모모를 내는 것은 그에게 자신이 자란 인도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도 있습니다.</p> <div class="one-row smaller">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0.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8.webp" /></div>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곱게 주름 잡힌 만두 한 점보다 더 완벽한 한입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입 베어 물면 속의 풍미가 한꺼번에 퍼지는, 말하자면 음식계의 ‘트로이 목마’와도 같습니다. 소스를 듬뿍 머금은 모모라면 그 즐거움은 배가됩니다. 맛있는 소스를 남김없이 먹기 위해 빵으로 훑어 먹듯, 모모의 쫄깃한 피는 진한 소스와 감칠맛 나는 속재료와 훌륭하게 어우러집니다. 한입에 넣기는 조금 크지만, 모모 하나를 통째로 먹으며 풍미가 한꺼번에 입안에 퍼지는 순간에는 특별한 만족감이 있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37.webp" alt="" /> <p class="image-caption">소고기 모모.</p> </div> <div class="a-4-3"><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3.webp" alt="" /> <p class="image-caption">초록색 소스를 곁들인 시금치 치즈 모모.</p> </div> <div class="a-3-4"><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4.webp" alt="" /> <p class="image-caption">노란색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모모.</p> </div>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이 식당은 대표 메뉴인 모모 외에도 다양한 티베트 요리를 선보입니다. 샤프타(shapta)는 부드러운 소고기나 닭고기를 피망, 양파, 토마토와 함께 볶은 요리입니다. 제법 매콤하지만, 곁들여 나오는 폭신한 티베트식 찐빵 팅모(tingmo)와 잘 어울립니다. 그 밖에도 체링이 “티베트의 소울푸드”라고 표현하는 치킨 샴데이(chicken shamdey)가 있습니다. 닭고기와 감자를 푹 끓여 밥과 함께 내는 스튜입니다. 부드러운 감자를 진한 칠리·치즈 소스에 넣은 케와 다치(kewa datshi)도 맛볼 수 있습니다.</span></p> <div class="one-row full-width">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8.webp" alt="" /> <p class="image-caption">티베트식 빵.</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19.webp" alt="" /> <p class="image-caption">치킨 샴데이(chicken shamdey).</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20.webp" alt="" /> <p class="image-caption">비프 샤프타(beef shapta).</p> </div>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옴 모모의 디저트도 꼭 맛볼 만합니다. 체링에 따르면 디저트 메뉴는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고, 각각 그들에게 헌정했습니다.</span></p> <p>레드 와인과 향신료에 졸인 배를 직접 빚은 티베트식 쌀술의 술지게미 위에 올린 디저트는 ‘술 취한 라마(Drunken Lama)’라고 불립니다. 명상하는 라마의 모습을 닮은 이 디저트는 부탄의 라마이자 영화감독인 종사르 켄체 린포체(Dzongsar Khyentse Rinpoche)에게 바친 메뉴입니다. 초콜릿 라바 케이크는 초콜릿을 사랑하는 체링의 딸을 위해 만들었으며, 티베트 장미 판나코타는 판나코타를 무척 좋아하는 그의 여자친구를 위해 탄생했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40.web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식사를 마친 뒤 사이공이어팀은 티베트 전통 수유차도 맛봤습니다. 발효한 홍차에 버터 한 숟갈을 넣어 섞은 차입니다. 이 차는 거의 모든 면에서 예상 밖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우선 보통 ‘찻잔’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큰 나무 그릇에 담겨 나옵니다.</span></p> <p>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짭짤한맛입니다. 그래서 맛은 마치 짭짤하고 따뜻한 아이스크림이 녹아 있는 듯합니다. 체링의 설명에 따르면 차와 소금, 버터의 조합은 티베트인들이 하루를 힘차게 보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줍니다. 옴 모모에서는 소젖으로 만든 버터를 사용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야크 버터로 차를 만듭니다. 솔직히 말해 수유차는 누구에게나 맞는 맛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부끄럽게도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 경험만으로 한 번쯤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p> <div class="centered smaller"><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46.web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체링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곧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옴 모모의 철학도 이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각 요리가 체링 자신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 정성껏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span></p> <p>더 넓게 보면 체링은 옴 모모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로 바라봅니다.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사이공의 많은 이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더 깊이 알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p> <p>“많은 사람에게 우리 음식은 티베트를 처음 만나는 계기입니다.” 체링은 설명합니다. “예술이든 음악이든 음식이든, 모든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표입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6/12/ommomo/06.webp" /> <p class="image-caption">체링은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그것이 티베트를 더 깊이 알아가는 여정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p> </div> <div class="listing-detail"> <p data-icon="a">Om Momo</p> <p data-icon="k">11/2 Street No. 57, An Khánh, HCMC</p> </div> </div> 베트남 커피 입문자를 위한 필수 커피 5종 2026-08-27T16:52:22+07:00 2026-08-27T16:52:22+07:00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728-꼭-맛봐야-할-베트남-커피-5가지 사이공이어 글.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0coffeetypes1.webp" /></p> <p>커피로 유명한 나라를 꼽을 때 베트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커피’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베트남 커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베트남 커피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arabica) 원두 대신 로부스타(robusta) 원두를 사용합니다. 로부스타 원두는 일반적으로 아라비카 원두보다 쓴맛이 강하고, 풍미가 진하며, 카페인 함량도 높습니다.</p> <p>둘째, 베트남 커피는 컵 위에 직접 올려놓는 작은 금속 필터인 ‘핀(phin)’을 사용하여 추출합니다. 압력을 가해 뜨거운 물을 강제로 통과시키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핀 필터에서는 뜨거운 물이 중력에 의해 커피 가루를 천천히 통과합니다.</p> <p>커피는 1857년 프랑스인들에 의해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뒤,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아래에서는 꼭 맛봐야 할 5가지 대표적인 베트남 커피를 소개합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1. 카페 쓰어다 (Cà phê sữa đá)</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1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handan.vn/anh-duong-nguyen-tat-thanh-du-kien-mo-rong-giam-ap-luc-un-tac-giao-thong-tai-thanh-pho-ho-chi-minh-post950412.html"></a>사진 출처: <a href="https://thanhnien.vn/uong-ca-phe-sua-dac-nhieu-cu-trong-ngay-luu-y-voi-gan-va-mo-bung-18526032019234247.htm">Báo Thanh Niên</a></p> </div> <p>커피에 연유를 섞고 얼음을 넣어 마시는 음료인 카페 쓰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커피입니다. 처음 마시면 커피가 너무 진하고 달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천천히 마시다 보면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가 자연스럽게 희석됩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2. 박시우 (Bạc xỉu)</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2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사진 출처: <a href="https://www.tastingtable.com/1209160/bac-xiu-the-lesser-known-vietnamese-coffee/">Tasting Table</a></p> </div>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박시우는 말 그대로 “화이트 커피”를 의미하며, 사이공의 쩌런(Chợ Lớn) 화교 사회에서 유래했습니다. 박시우는 카페 쓰어다의 더 순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음료는 커피, 우유, 연유, 얼음을 섞어 만듭니다. 우유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박시우는 더 부드럽고 단맛이 덜한 편입니다.</span></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3. 에그 커피 (Cà phê trứng)</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3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사진 출처: <a href="https://vietcetera.com/en/the-history-of-egg-coffee">Vietcetera</a></p> </div>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에그 커피는 커피 위에 달걀노른자, 설탕, 연유를 휘핑해 만든 걸쭉하고 부드러운 크림을 얹은 음료입니다. 흥미롭게도 에그 커피는 1946년 하노이에서 우유를 구하기 어려웠을 때, 우유 대신 달걀을 사용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차갑게 마시는 카페 쓰어다나 박시우와 달리, 에그 커피는 뜨겁거나 차갑게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span></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4. 소금 커피 (Cà phê muối)</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4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사진 출처: <a href="https://cubes-asia.com/coffee-blog/cach-lam-ca-phe-muoi?srsltid=AfmBOop18jT-ZquLhXezAvteoS8VTIUy4HU1A_8VE5Y9dJfVZ-JF6DH-">Cubes Asia</a></p> </div> <p>소금 커피는 2010년 후에(Huế)의 한 작은 카페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베트남 커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료입니다. 소금 커피는 달콤한 연유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커피를 부은 뒤, 맨 위에 소금이 더해진 크림을 얹어 만듭니다. 씁쓸한맛, 단맛, 짠맛이 어우러진 이 조합은 솔티드 캐러멜을 연상시키며, 단짠단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특히 잘 맞을 만한 음료입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5. 코코넛 커피 (Cà phê cốt dừa)</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5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ews.laodong.vn/xa-hoi/tphcm-se-xay-them-nhieu-tuyen-duong-di-bo-o-khu-trung-tam-1667669.ldo"></a>사진 출처: <a href="https://www.vibrantlyvietnam.com/cong-caphe-coffee-shop-review-coconut-coffee/">Vibrantly Vietnam</a></p> </div> <p>코코넛 커피는 커피에 코코넛 밀크나 크림을 섞은 음료로, 보통 차갑게 마십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특히 커피 체인 ‘콩카페(Cộng Cà Phê)’의 코코넛 커피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곳의 버전은 일반적인 코코넛 커피라기보다 코코넛 커피 스무디에 가까운 음료입니다. 반면 하노이에서 유래한 원래의 코코넛 커피는 코코넛 밀크와 연유를 섞은 뒤, 그 위에 거품을 낸 진한 블랙커피를 올려 만듭니다. 코코넛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디저트처럼 즐기기 좋은 음료입니다.</p> <p>[맨 위 사진 출처: <a href="https://hello5coffee.com/the-vietnamese-coffee-phin/">Hello 5 Coffee</a>]</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0coffeetypes1.webp" /></p> <p>커피로 유명한 나라를 꼽을 때 베트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커피’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베트남 커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베트남 커피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arabica) 원두 대신 로부스타(robusta) 원두를 사용합니다. 로부스타 원두는 일반적으로 아라비카 원두보다 쓴맛이 강하고, 풍미가 진하며, 카페인 함량도 높습니다.</p> <p>둘째, 베트남 커피는 컵 위에 직접 올려놓는 작은 금속 필터인 ‘핀(phin)’을 사용하여 추출합니다. 압력을 가해 뜨거운 물을 강제로 통과시키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핀 필터에서는 뜨거운 물이 중력에 의해 커피 가루를 천천히 통과합니다.</p> <p>커피는 1857년 프랑스인들에 의해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뒤,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아래에서는 꼭 맛봐야 할 5가지 대표적인 베트남 커피를 소개합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1. 카페 쓰어다 (Cà phê sữa đá)</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1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handan.vn/anh-duong-nguyen-tat-thanh-du-kien-mo-rong-giam-ap-luc-un-tac-giao-thong-tai-thanh-pho-ho-chi-minh-post950412.html"></a>사진 출처: <a href="https://thanhnien.vn/uong-ca-phe-sua-dac-nhieu-cu-trong-ngay-luu-y-voi-gan-va-mo-bung-18526032019234247.htm">Báo Thanh Niên</a></p> </div> <p>커피에 연유를 섞고 얼음을 넣어 마시는 음료인 카페 쓰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커피입니다. 처음 마시면 커피가 너무 진하고 달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천천히 마시다 보면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가 자연스럽게 희석됩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2. 박시우 (Bạc xỉu)</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2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사진 출처: <a href="https://www.tastingtable.com/1209160/bac-xiu-the-lesser-known-vietnamese-coffee/">Tasting Table</a></p> </div>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박시우는 말 그대로 “화이트 커피”를 의미하며, 사이공의 쩌런(Chợ Lớn) 화교 사회에서 유래했습니다. 박시우는 카페 쓰어다의 더 순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음료는 커피, 우유, 연유, 얼음을 섞어 만듭니다. 우유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박시우는 더 부드럽고 단맛이 덜한 편입니다.</span></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3. 에그 커피 (Cà phê trứng)</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3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사진 출처: <a href="https://vietcetera.com/en/the-history-of-egg-coffee">Vietcetera</a></p> </div>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에그 커피는 커피 위에 달걀노른자, 설탕, 연유를 휘핑해 만든 걸쭉하고 부드러운 크림을 얹은 음료입니다. 흥미롭게도 에그 커피는 1946년 하노이에서 우유를 구하기 어려웠을 때, 우유 대신 달걀을 사용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차갑게 마시는 카페 쓰어다나 박시우와 달리, 에그 커피는 뜨겁거나 차갑게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span></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4. 소금 커피 (Cà phê muối)</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4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사진 출처: <a href="https://cubes-asia.com/coffee-blog/cach-lam-ca-phe-muoi?srsltid=AfmBOop18jT-ZquLhXezAvteoS8VTIUy4HU1A_8VE5Y9dJfVZ-JF6DH-">Cubes Asia</a></p> </div> <p>소금 커피는 2010년 후에(Huế)의 한 작은 카페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베트남 커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료입니다. 소금 커피는 달콤한 연유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커피를 부은 뒤, 맨 위에 소금이 더해진 크림을 얹어 만듭니다. 씁쓸한맛, 단맛, 짠맛이 어우러진 이 조합은 솔티드 캐러멜을 연상시키며, 단짠단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특히 잘 맞을 만한 음료입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5. 코코넛 커피 (Cà phê cốt dừa)</strong></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8/27/5coffeetypes1.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div class="centered">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ews.laodong.vn/xa-hoi/tphcm-se-xay-them-nhieu-tuyen-duong-di-bo-o-khu-trung-tam-1667669.ldo"></a>사진 출처: <a href="https://www.vibrantlyvietnam.com/cong-caphe-coffee-shop-review-coconut-coffee/">Vibrantly Vietnam</a></p> </div> <p>코코넛 커피는 커피에 코코넛 밀크나 크림을 섞은 음료로, 보통 차갑게 마십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특히 커피 체인 ‘콩카페(Cộng Cà Phê)’의 코코넛 커피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곳의 버전은 일반적인 코코넛 커피라기보다 코코넛 커피 스무디에 가까운 음료입니다. 반면 하노이에서 유래한 원래의 코코넛 커피는 코코넛 밀크와 연유를 섞은 뒤, 그 위에 거품을 낸 진한 블랙커피를 올려 만듭니다. 코코넛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디저트처럼 즐기기 좋은 음료입니다.</p> <p>[맨 위 사진 출처: <a href="https://hello5coffee.com/the-vietnamese-coffee-phin/">Hello 5 Coffee</a>]</p></div> 다리 그늘 아래, 사이공의 숨겨진 ‘제3의 공간’으로 2026-08-19T14:50:41+07:00 2026-08-19T14:50:41+07:00 https://kr.saigoneer.com/society/13727-제목-다리-그늘-아래,-사이공의-숨겨진-‘제3의-공간’으로 우옌 도(Uyên Đỗ) 글. 니콜라이 소콜로프(Nikolai Sokolov) 사진.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3.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4/09/30/fb-bridge0.webp" data-position="50% 100%" /></p> <p><em>제3의 공간(명사): 집과 직장을 제외한, 사람들이 만나 사회적 교류를 나누는 공간.</em></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집처럼 편안하면서도 집은 아닌 곳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span></p> <p>집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닌 ‘제3의 공간’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며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p> <p>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제3의 공간’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하며, 이를 공동의 가치가 뿌리내리는 문화적 인큐베이터로 묘사했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우정이나 연애 관계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제3의 공간’은 동네 술집, 아늑한 중고 서점, 심지어 사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각 사회의 특성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9.webp" /></p> <p class="image-caption">사이공에는 200개가 넘는 다리가 있습니다.</p> <p>베트남의 주요 도시에서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도시화로 인해 공원, 도서관, 놀이터와 같은 공공시설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유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도시 인프라의 틈새에는 비공식적인 ‘제3의 공간’들이 생겨났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4.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p class="image-caption">바손 다리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2019년, 러시아 </span><a href="https://www.instagram.com/nsokolov.n?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igsh=ZDNlZDc0MzIxNw=="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사진작가</a><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니콜라이 소콜로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베트남으로 이주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과 삶”에 이끌린 그의 작업은 점차 추상 및 풍경 사진에서 거리 사진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2024년 여름, 그는 사이공 곳곳의 다리 아래에서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span></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저는 베트남 전역을 여행하면서 햇볕이나 비를 피하려고 다리 아래에 몸을 피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특히 남부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리 아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죠.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날 한 남자가 제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순간부터 저는 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의 얼굴과 시선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죠. 그리고 저는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6.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p class="image-caption">이 시리즈의 첫 번째 사진.</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소외되고 간과되어 온 다리 아래 공간은 흔히 떠올리는 전통적인 ‘제3의 공간’과는 거리가 멉니다. 평소 다리를 이용하는 통근자들에게도 그저 지나쳐 가는 곳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니콜라이 소콜로프의 흑백 사진 속에서 이 이름 없는 다리들은, 눈썰미가 좋다면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안식처로 되살아납니다.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의 거친 땅은 놀이터가 되고, 친구와 가족이 모이는 장소가 되며, 때로는 쉼 없이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span></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7.webp" /></p> <p class="image-caption">가까운 다리 아래에서 만날 수 있는 방목 오리 새끼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5.webp" /></p> <p class="image-caption">무더운 오후, 그늘 아래에서 그네를 타는 달콤한 즐거움.</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1.webp" /></p> <p class="image-caption">닭싸움 클럽의 첫 번째 규칙: 닭싸움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7.webp" /></p> <p class="image-caption">끼리끼리는 역시 한데 모입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2.webp" /></p> <p class="image-caption">"야, 너 반칙하는 거 아니야?”</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3.webp" /></p> <p class="image-caption">국가대표팀의 미래 스타들일까요?</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4.webp" /></p> <p class="image-caption">절친만큼 친한 자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7.webp" /></p> <p class="image-caption">중년 건강은 허리운동부터</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8.webp" /></p> <p class="image-caption">멋진 인상을 남기기 위해 한껏 차려입은 모습.</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9.webp" /></p> <p class="image-caption">“난 이미 이겼어. 이제 따져 봐야 소용없어.”</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0.webp" /></p> <p class="image-caption">예방이 치료보다 낫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1.webp" /></p> <p class="image-caption">누가 봐도 착한 아이.</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2.webp" /></p> <p class="image-caption">다리 옆에서 추는 탱고.</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3.webp" /></p> <p class="image-caption">어떤 이들에게는 제1의 공간인 이곳.</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4.webp" /></p> <p class="image-caption">“올해 학교에서 무슨 상을 받았니?” “간신히 통과했어요, 삼촌!”</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5.webp" /></p> <p class="image-caption">오토바이도 가끔은 시원한 샤워가 필요합니다.</p> <p class="image-caption"><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6.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p class="image-caption">담배 연기와 먼지.</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8.webp" /></p> <p class="image-caption">이번 판에서는 누가 꼴찌일까요?</p> <p><strong><a href="https://www.facebook.com/nickolai.sokolov" target="_blank">니콜라이 소콜로프의 작품을 여기에서 더 만나보세요.</a></strong></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3.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4/09/30/fb-bridge0.webp" data-position="50% 100%" /></p> <p><em>제3의 공간(명사): 집과 직장을 제외한, 사람들이 만나 사회적 교류를 나누는 공간.</em></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집처럼 편안하면서도 집은 아닌 곳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span></p> <p>집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닌 ‘제3의 공간’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며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p> <p>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제3의 공간’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하며, 이를 공동의 가치가 뿌리내리는 문화적 인큐베이터로 묘사했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우정이나 연애 관계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제3의 공간’은 동네 술집, 아늑한 중고 서점, 심지어 사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각 사회의 특성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9.webp" /></p> <p class="image-caption">사이공에는 200개가 넘는 다리가 있습니다.</p> <p>베트남의 주요 도시에서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도시화로 인해 공원, 도서관, 놀이터와 같은 공공시설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유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도시 인프라의 틈새에는 비공식적인 ‘제3의 공간’들이 생겨났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4.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p class="image-caption">바손 다리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2019년, 러시아 </span><a href="https://www.instagram.com/nsokolov.n?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igsh=ZDNlZDc0MzIxNw=="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사진작가</a><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니콜라이 소콜로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베트남으로 이주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과 삶”에 이끌린 그의 작업은 점차 추상 및 풍경 사진에서 거리 사진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2024년 여름, 그는 사이공 곳곳의 다리 아래에서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span></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저는 베트남 전역을 여행하면서 햇볕이나 비를 피하려고 다리 아래에 몸을 피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특히 남부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리 아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죠.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날 한 남자가 제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순간부터 저는 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의 얼굴과 시선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죠. 그리고 저는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6.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p class="image-caption">이 시리즈의 첫 번째 사진.</p>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소외되고 간과되어 온 다리 아래 공간은 흔히 떠올리는 전통적인 ‘제3의 공간’과는 거리가 멉니다. 평소 다리를 이용하는 통근자들에게도 그저 지나쳐 가는 곳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니콜라이 소콜로프의 흑백 사진 속에서 이 이름 없는 다리들은, 눈썰미가 좋다면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안식처로 되살아납니다.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의 거친 땅은 놀이터가 되고, 친구와 가족이 모이는 장소가 되며, 때로는 쉼 없이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span></span></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7.webp" /></p> <p class="image-caption">가까운 다리 아래에서 만날 수 있는 방목 오리 새끼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5.webp" /></p> <p class="image-caption">무더운 오후, 그늘 아래에서 그네를 타는 달콤한 즐거움.</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1.webp" /></p> <p class="image-caption">닭싸움 클럽의 첫 번째 규칙: 닭싸움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7.webp" /></p> <p class="image-caption">끼리끼리는 역시 한데 모입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2.webp" /></p> <p class="image-caption">"야, 너 반칙하는 거 아니야?”</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3.webp" /></p> <p class="image-caption">국가대표팀의 미래 스타들일까요?</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4.webp" /></p> <p class="image-caption">절친만큼 친한 자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7.webp" /></p> <p class="image-caption">중년 건강은 허리운동부터</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8.webp" /></p> <p class="image-caption">멋진 인상을 남기기 위해 한껏 차려입은 모습.</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19.webp" /></p> <p class="image-caption">“난 이미 이겼어. 이제 따져 봐야 소용없어.”</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0.webp" /></p> <p class="image-caption">예방이 치료보다 낫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1.webp" /></p> <p class="image-caption">누가 봐도 착한 아이.</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2.webp" /></p> <p class="image-caption">다리 옆에서 추는 탱고.</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3.webp" /></p> <p class="image-caption">어떤 이들에게는 제1의 공간인 이곳.</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4.webp" /></p> <p class="image-caption">“올해 학교에서 무슨 상을 받았니?” “간신히 통과했어요, 삼촌!”</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5.webp" /></p> <p class="image-caption">오토바이도 가끔은 시원한 샤워가 필요합니다.</p> <p class="image-caption"><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6.web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p> <p class="image-caption">담배 연기와 먼지.</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urbanistvietnam/articleimages/2024/09/25/bridge/bridge28.webp" /></p> <p class="image-caption">이번 판에서는 누가 꼴찌일까요?</p> <p><strong><a href="https://www.facebook.com/nickolai.sokolov" target="_blank">니콜라이 소콜로프의 작품을 여기에서 더 만나보세요.</a></strong></p></div> 베트남 제빙 산업의 식민지 시대 기원, 알고 계셨나요? 2026-08-13T10:56:00+07:00 2026-08-13T10:56:00+07:00 https://kr.saigoneer.com/old-saigon/255-베트남/13726-베트남-제빙-산업의-식민지-시대-기원 Tom Phạm 글. Ngọc Tạ 디자인.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0.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fb-00.webp" data-position="50% 50%" /></p> <p>오늘날 사이공 거리를 걷다 보면 얼음은 너무나 흔해서 마치 도시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짜다(trà đá), 카페쓰어다(cà phê sữa đá), 신또(sinh tố)에 이르기까지,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거의 모든 음료에 얼음을 넣어 마십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베트남에 제빙 공장을 들여오기 전만 해도 사이공처럼 무더운 열대 도시에서 얼음을 찾아보기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저온 유통망 관리는 의약품과 식품의 저장·운송을 막론하고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새로운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의 범위를 넓히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몇 세기 전만 해도 얼음은 프랑스 식민지 주민들을 상대로 번성한 사업이었습니다.</p> <h3 dir="ltr">열대 기후에서 얼음 만들기</h3> <p dir="ltr">역사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열대 기후의 특성을 활용해 식품의 안전과 보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농산물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발효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갈증을 달래기 위해 뜨거운 차를 마시거나 점토 항아리에 물을 담아 수온을 몇 도 낮췄습니다.</p> <p>프랑스 식민지 주민들이 베트남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현지 주민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안락한 삶을 누리려는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국에서 가져올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사치품 가운데 하나는 차가운 맥주였습니다. 북미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채취한 얼음을 거래하는 사업이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의 주요 항구에서 번성했던 반면, 베트남 항구로 얼음을 수입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베트남의 항구에도 얼음이 수입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관련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수입량이 적었고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정기적으로 얼음을 판매하는 업자가 없다는 사실은 시장의 공백을 드러냈고, 이는 수익성 높은 산업이 성장할 길을 열었습니다. 이 기회를 가장 먼저 포착한 사람은 프랑스인 형제인 빅토르 라뤼(Victor Larue)와 가브리엘 라뤼(Gabriel Larue)였습니다. 빅토르는 1879년 사이공에 도착하자마자 얼음 판매를 시작했고, 이후 동생도 사업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1886년 사업 규모가 확대되기 전까지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해 라뤼 형제는 무게가 14만 킬로그램에 달하는 제빙 기계를 수입하고 하이퐁에 두 번째 공장을 건설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1.webp" /> <p class="image-caption">사이공의 라뤼 제빙 공장 내부. 사진 출처: <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Larue-Saigon_1879-1927.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는 수년에 걸쳐 공장에 여러 종류의 기계를 들여왔습니다. 압축식 냉동기든 흡수식 냉동기든 핵심 원리는 같았습니다. 제빙은 열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옮기는 연속적인 순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압축기에서 시작됩니다. 압축기는 저압 가스를 빨아들여 고압의 뜨거운 증기로 압축합니다. 라뤼 형제는 1879년에 암모니아 1만 5천 킬로그램을 수입해 냉매로 사용했습니다. 이 증기는 응축기로 들어가 주변 공기로 열을 방출한 뒤 고압의 액체로 변합니다. 액체가 스로틀 밸브(throttle valve)를 통과하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온도도 순식간에 낮아집니다. 마지막으로 차가워진 유체는 물에 잠겨 있거나 물로 둘러싸인 증발기 코일로 들어갑니다. 냉매는 배관의 금속 벽을 통해 물의 열을 흡수하며, 물이 얼음으로 굳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사업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주요 고객은 식당이나 술집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사용할 얼음를 구매하려는 개인 소비자까지 포함했습니다. 얼음을 구매하려면 미리 선불 쿠폰을 구입해야 했으며, 최소 구매량은 1킬로그램이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만이 베트남에서 제빙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1886년 베르투앵(Berthoin)이라는 사업가가 하노이에 제빙 공장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경영 능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운이 따르지 않았던 탓인지 그는 사업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얼음 가격은 킬로그램당 10센트로, 오늘날 가치로 약 2.5유로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판을 받았고, 그는 2년 뒤 가격을 킬로그램당 6센트로 내려야 했습니다. 같은 해 베르투앵은 경쟁사가 자사와 같은 배색을 사용해 자신의 쿠폰과 지나치게 비슷한 쿠폰을 판매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습니다. 이듬해 여름에는 베르투앵이 새 공장을 짓기 위해 기존 공장을 철거하면서 하노이에 얼음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크게 따라가지 못하자 일부 사람들은 가족이 사용할 얼음을 구하기 위해 네 시간 넘게 줄을 서야 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893년 베르투앵의 공장을 인수하고, 이미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하이퐁과 가까운 하노이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4.webp" /> <p class="image-caption">하이퐁의 라뤼 제빙 공장 얼음 저장고. 사진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Larue-Saigon_1879-1927.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하지만 제빙 공장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는 물의 질이었습니다. 이는 얼음의 맛을 해칠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하게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버려지는 강에서 물을 길어 올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질병이 더욱 빠르게 퍼질까 우려했습니다. 특히 당시 아시아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콜레라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1895년 하이퐁과 하노이에서는 많은 고객이 얼음의 품질에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얼음 안으로 붉은 얼룩이 비쳤고 썩은 맛까지 났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하노이에서는 더 좋은 물을 확보하기 위해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의 성공은 특히 양조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얼음과 맥주 사업은 냉각이 필수라는 점에서 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맥주의 발효 과정은 일정한 온도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액체를 차갑게 유지하는 능력은 양질의 맥주를 생산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라뤼 형제는 이미 1909년에 양조업에 진출해 자체 브랜드인 ‘라뤼’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맥주는 오늘날까지도 판매되고 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13.webp" /> <p class="image-caption third-width centered">1934년 4월 26일 자 신문 《랭포르마시옹 댕도신》(L’Information d’Indochine)에 실린 라뤼 맥주 광고. 이미지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BGI_1927-1975.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또 다른 식민지 가문인 드니(Denis) 형제는 처음에는 인도차이나로 물품을 수출입하는 사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밀접하게 연결돼 있던 두 산업을 하나로 통합할 기회를 포착하고, 1927년 ‘브라스리 에 글라시에르 드 랭도신(Brasserie et Glacière de l’Indochine)’을 설립했습니다. 드니 형제는 라뤼 형제의 사업체와 브라스리 오멜(Brasserie Hommel)을 비롯한 다른 양조장들을 인수하며 단숨에 막강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브라스리 에 글라시에르 앵테르나시오날(Brasseries et Glacières Internationales)’로 명칭을 변경한 이 회사는 수많은 프랑스 식민지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자회사를 둔 국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이 회사는 특히 아프리카 맥주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9.webp" /> <p class="image-caption">통킹(Tonkin) 하노이에 위치한 오멜 양조장 외부. 사진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Brasserie_Hommel_1892-1927.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h3 dir="ltr">현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식민 개척자들의 사업</h3>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제빙 사업은 언제나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싶어 했던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식민지라는 맥락에서 그들의 욕구는 베트남인들의 희생 위에서 충족되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착취적인 노동에 의존했고, 공공위생보다 자신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우선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8.webp" /> <p class="image-caption">하노이의 라뤼 제빙 공장. 사진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Larue-Hanoi.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제빙 공장과 양조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현지인이었으며, 이들과 식민지 개척자들의 관계는 구조적인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베트남인들은 백인 정착민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력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1895년 5월 18일 자 《라브니르 뒤 통킹》(L’Avenir du Tonkin)에 실린 다음 기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기사는 한 프랑스 의사가 질 낮은 얼음 문제를 지적하고, 현지 베트남 여성을 가리키는 프랑스 식민지 표현인 ‘콩가이(congaï, 베트남어 con gái에서 유래)’를 이용한 해결책을 제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span></p> <div class="quote">“해결책을 원하십니까? 식수를 길어 판매하는 ‘콩가이’들은 흰 천으로 된 완장을 착용해야 하며, 완장에는 물 운반 허가증 발급일을 잉크로 적어야 합니다. 유럽인들은 오직 이들에게서만 물을 사야 합니다. 또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이 여성들이 연못이나 물이 고인 강의 지류에서 양동이를 채울 경우에는 가차 없이 구금해야 합니다. 동시에 상당한 벌금을 부과하고, 재범할 경우 일정 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물 판매 허가를 박탈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이나 시 당국은 인력거 요금에 적용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물 한 통의 판매 가격에 고정 요율을 정해야 합니다. 이 요율은 판매자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정해야 하지만, 유럽인이 착취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이 과정에서 브라스리 에 글라시에르 드 랭도신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1930년 이 회사는 32만 9,714피아스트르(piastre)의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025년 가치로 약 230만 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다음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프랑스 정착민들은 값싼 현지 노동자들을 단순한 도구로 취급하고 착취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정착민들만 소비하던 사치품인 ‘차가운 맥주’를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span></p> <div class="quote">“지금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맥주는 사치 음료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노이에 설립 중인 새로운 양조장은 현지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미 고객 확보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품질도 결코 나쁘지 않은 저렴한 맥주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 《레베유 에코노미크 드 랭도신》(L'Éveil économique de l'Indochine), 1929년 11월 3일</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도이머이(Đổi Mới) 이후 외국 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가정에서도 식품을 더 안전하게, 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베트남에서 소비되는 얼음의 대부분은 지금도 산업용 제빙 시설에서 생산됩니다.</span></p> <p dir="ltr">역사적으로 얼음은 베트남에서 맥주가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맥주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자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였지만, 베트남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얼음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서양의 음주 방식과 달리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을 즐깁니다. 베트남의 역사 속에서 제빙 공장은 꾸준히 확장되었고, 이는 연유를 넣은 ‘카페 쓰어 다(cà phê sữa đá)’와 같은 독창적인 차가운 음료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소박하게 시작된 베트남의 차가운 음료 문화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0.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fb-00.webp" data-position="50% 50%" /></p> <p>오늘날 사이공 거리를 걷다 보면 얼음은 너무나 흔해서 마치 도시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짜다(trà đá), 카페쓰어다(cà phê sữa đá), 신또(sinh tố)에 이르기까지,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거의 모든 음료에 얼음을 넣어 마십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베트남에 제빙 공장을 들여오기 전만 해도 사이공처럼 무더운 열대 도시에서 얼음을 찾아보기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저온 유통망 관리는 의약품과 식품의 저장·운송을 막론하고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새로운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의 범위를 넓히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몇 세기 전만 해도 얼음은 프랑스 식민지 주민들을 상대로 번성한 사업이었습니다.</p> <h3 dir="ltr">열대 기후에서 얼음 만들기</h3> <p dir="ltr">역사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열대 기후의 특성을 활용해 식품의 안전과 보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농산물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발효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갈증을 달래기 위해 뜨거운 차를 마시거나 점토 항아리에 물을 담아 수온을 몇 도 낮췄습니다.</p> <p>프랑스 식민지 주민들이 베트남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현지 주민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안락한 삶을 누리려는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국에서 가져올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사치품 가운데 하나는 차가운 맥주였습니다. 북미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채취한 얼음을 거래하는 사업이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의 주요 항구에서 번성했던 반면, 베트남 항구로 얼음을 수입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베트남의 항구에도 얼음이 수입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관련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수입량이 적었고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정기적으로 얼음을 판매하는 업자가 없다는 사실은 시장의 공백을 드러냈고, 이는 수익성 높은 산업이 성장할 길을 열었습니다. 이 기회를 가장 먼저 포착한 사람은 프랑스인 형제인 빅토르 라뤼(Victor Larue)와 가브리엘 라뤼(Gabriel Larue)였습니다. 빅토르는 1879년 사이공에 도착하자마자 얼음 판매를 시작했고, 이후 동생도 사업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1886년 사업 규모가 확대되기 전까지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해 라뤼 형제는 무게가 14만 킬로그램에 달하는 제빙 기계를 수입하고 하이퐁에 두 번째 공장을 건설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1.webp" /> <p class="image-caption">사이공의 라뤼 제빙 공장 내부. 사진 출처: <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Larue-Saigon_1879-1927.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는 수년에 걸쳐 공장에 여러 종류의 기계를 들여왔습니다. 압축식 냉동기든 흡수식 냉동기든 핵심 원리는 같았습니다. 제빙은 열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옮기는 연속적인 순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압축기에서 시작됩니다. 압축기는 저압 가스를 빨아들여 고압의 뜨거운 증기로 압축합니다. 라뤼 형제는 1879년에 암모니아 1만 5천 킬로그램을 수입해 냉매로 사용했습니다. 이 증기는 응축기로 들어가 주변 공기로 열을 방출한 뒤 고압의 액체로 변합니다. 액체가 스로틀 밸브(throttle valve)를 통과하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온도도 순식간에 낮아집니다. 마지막으로 차가워진 유체는 물에 잠겨 있거나 물로 둘러싸인 증발기 코일로 들어갑니다. 냉매는 배관의 금속 벽을 통해 물의 열을 흡수하며, 물이 얼음으로 굳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사업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주요 고객은 식당이나 술집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사용할 얼음를 구매하려는 개인 소비자까지 포함했습니다. 얼음을 구매하려면 미리 선불 쿠폰을 구입해야 했으며, 최소 구매량은 1킬로그램이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만이 베트남에서 제빙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1886년 베르투앵(Berthoin)이라는 사업가가 하노이에 제빙 공장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경영 능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운이 따르지 않았던 탓인지 그는 사업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얼음 가격은 킬로그램당 10센트로, 오늘날 가치로 약 2.5유로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판을 받았고, 그는 2년 뒤 가격을 킬로그램당 6센트로 내려야 했습니다. 같은 해 베르투앵은 경쟁사가 자사와 같은 배색을 사용해 자신의 쿠폰과 지나치게 비슷한 쿠폰을 판매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습니다. 이듬해 여름에는 베르투앵이 새 공장을 짓기 위해 기존 공장을 철거하면서 하노이에 얼음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크게 따라가지 못하자 일부 사람들은 가족이 사용할 얼음을 구하기 위해 네 시간 넘게 줄을 서야 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893년 베르투앵의 공장을 인수하고, 이미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하이퐁과 가까운 하노이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4.webp" /> <p class="image-caption">하이퐁의 라뤼 제빙 공장 얼음 저장고. 사진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Larue-Saigon_1879-1927.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하지만 제빙 공장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는 물의 질이었습니다. 이는 얼음의 맛을 해칠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하게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버려지는 강에서 물을 길어 올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질병이 더욱 빠르게 퍼질까 우려했습니다. 특히 당시 아시아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콜레라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1895년 하이퐁과 하노이에서는 많은 고객이 얼음의 품질에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얼음 안으로 붉은 얼룩이 비쳤고 썩은 맛까지 났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하노이에서는 더 좋은 물을 확보하기 위해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span></p>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라뤼 형제의 성공은 특히 양조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얼음과 맥주 사업은 냉각이 필수라는 점에서 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맥주의 발효 과정은 일정한 온도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액체를 차갑게 유지하는 능력은 양질의 맥주를 생산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라뤼 형제는 이미 1909년에 양조업에 진출해 자체 브랜드인 ‘라뤼’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맥주는 오늘날까지도 판매되고 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13.webp" /> <p class="image-caption third-width centered">1934년 4월 26일 자 신문 《랭포르마시옹 댕도신》(L’Information d’Indochine)에 실린 라뤼 맥주 광고. 이미지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BGI_1927-1975.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또 다른 식민지 가문인 드니(Denis) 형제는 처음에는 인도차이나로 물품을 수출입하는 사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밀접하게 연결돼 있던 두 산업을 하나로 통합할 기회를 포착하고, 1927년 ‘브라스리 에 글라시에르 드 랭도신(Brasserie et Glacière de l’Indochine)’을 설립했습니다. 드니 형제는 라뤼 형제의 사업체와 브라스리 오멜(Brasserie Hommel)을 비롯한 다른 양조장들을 인수하며 단숨에 막강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브라스리 에 글라시에르 앵테르나시오날(Brasseries et Glacières Internationales)’로 명칭을 변경한 이 회사는 수많은 프랑스 식민지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자회사를 둔 국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이 회사는 특히 아프리카 맥주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9.webp" /> <p class="image-caption">통킹(Tonkin) 하노이에 위치한 오멜 양조장 외부. 사진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Brasserie_Hommel_1892-1927.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h3 dir="ltr">현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식민 개척자들의 사업</h3>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제빙 사업은 언제나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싶어 했던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식민지라는 맥락에서 그들의 욕구는 베트남인들의 희생 위에서 충족되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착취적인 노동에 의존했고, 공공위생보다 자신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우선했습니다.</span></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7/ice/08.webp" /> <p class="image-caption">하노이의 라뤼 제빙 공장. 사진 출처:&nbsp;<a href="https://entreprises-coloniales.fr/inde-indochine/Larue-Hanoi.pdf">Les entreprises coloniales françaises</a>.</p> </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제빙 공장과 양조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현지인이었으며, 이들과 식민지 개척자들의 관계는 구조적인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베트남인들은 백인 정착민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력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1895년 5월 18일 자 《라브니르 뒤 통킹》(L’Avenir du Tonkin)에 실린 다음 기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기사는 한 프랑스 의사가 질 낮은 얼음 문제를 지적하고, 현지 베트남 여성을 가리키는 프랑스 식민지 표현인 ‘콩가이(congaï, 베트남어 con gái에서 유래)’를 이용한 해결책을 제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span></p> <div class="quote">“해결책을 원하십니까? 식수를 길어 판매하는 ‘콩가이’들은 흰 천으로 된 완장을 착용해야 하며, 완장에는 물 운반 허가증 발급일을 잉크로 적어야 합니다. 유럽인들은 오직 이들에게서만 물을 사야 합니다. 또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이 여성들이 연못이나 물이 고인 강의 지류에서 양동이를 채울 경우에는 가차 없이 구금해야 합니다. 동시에 상당한 벌금을 부과하고, 재범할 경우 일정 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물 판매 허가를 박탈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이나 시 당국은 인력거 요금에 적용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물 한 통의 판매 가격에 고정 요율을 정해야 합니다. 이 요율은 판매자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정해야 하지만, 유럽인이 착취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이 과정에서 브라스리 에 글라시에르 드 랭도신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1930년 이 회사는 32만 9,714피아스트르(piastre)의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025년 가치로 약 230만 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다음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프랑스 정착민들은 값싼 현지 노동자들을 단순한 도구로 취급하고 착취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정착민들만 소비하던 사치품인 ‘차가운 맥주’를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span></p> <div class="quote">“지금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맥주는 사치 음료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노이에 설립 중인 새로운 양조장은 현지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미 고객 확보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품질도 결코 나쁘지 않은 저렴한 맥주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 《레베유 에코노미크 드 랭도신》(L'Éveil économique de l'Indochine), 1929년 11월 3일</div> <p dir="ltr"><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도이머이(Đổi Mới) 이후 외국 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가정에서도 식품을 더 안전하게, 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베트남에서 소비되는 얼음의 대부분은 지금도 산업용 제빙 시설에서 생산됩니다.</span></p> <p dir="ltr">역사적으로 얼음은 베트남에서 맥주가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맥주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자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였지만, 베트남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얼음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서양의 음주 방식과 달리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을 즐깁니다. 베트남의 역사 속에서 제빙 공장은 꾸준히 확장되었고, 이는 연유를 넣은 ‘카페 쓰어 다(cà phê sữa đá)’와 같은 독창적인 차가운 음료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소박하게 시작된 베트남의 차가운 음료 문화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p></div> 호찌민시 거리 이름에 숨은 6명의 베트남 위인들 2026-07-29T18:05:00+07:00 2026-07-29T18:05:00+07:00 https://kr.saigoneer.com/인물/13724-호찌민시-거리-이름에-숨은-베트남-위인들 사이공이어 글.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nguyenhue.webp" /></p> <p>사이공에는 베트남의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 몇 명을 아래에 꼽아보았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1. 응우옌 떳 타인 거리(Nguyễn Tất Thành)</span></p> <p>응우옌 떳 타인 거리는 4군에 위치해 있다. 7군과 1군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이기 때문에 두 지역 사이를 오간 적이 있다면 이 거리를 지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곳은 호찌민시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news/27335-saigon-s-next-top-5-congested-streets-are-announced-here-are-the-winners">심한</a> 거리 중 하나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top1.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handan.vn/anh-duong-nguyen-tat-thanh-du-kien-mo-rong-giam-ap-luc-un-tac-giao-thong-tai-thanh-pho-ho-chi-minh-post950412.html">사진 출처: Nhân Dân</a><a href="https://dantri.com.vn/thoi-su/gan-3000-ty-dong-mo-rong-duong-nguyen-tat-thanh-o-tphcm-20251024170424876.htm"></a></p> </div>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은 이 거리가 호찌민(Hồ Chí Minh, 1890–1969)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11세 때 아버지로부터 응우옌 떳 타인(Nguyễn Tất Thành)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독립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응우옌 아이 꾸억(Nguyễn Ái Quốc)을 비롯해 여러 이름과 </span><a href="https://en.vietnamplus.vn/names-associated-with-the-life-of-president-ho-chi-minh-post214024.vn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가명을</a><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사용했으며, 1942년부터 우리가 알고있는 호찌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span></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2. 쩐흥다오 거리(Trần Hưng Đạo)</span></p> <p>쩐흥다오 거리는 1군에서 5군까지 이어지는 주요 도로다. 본명이 쩐꾸옥뚜언(Trần Quốc Tuấn, 1228–1300)이었던 쩐흥다오는 13세기 대월(Đại Việt)과 몽골·원 제국 사이의 전쟁에서 쩐(Trần) 왕조를 이끈 대표적인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heritage/839-street-signs-tran-hung-dao-warrior-poet-part-1">지휘관이었다</a>.</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2.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laodong.vn/photo/can-canh-trung-tu-tuong-dai-tran-hung-dao-va-cong-vien-me-linh-o-tphcm-1015193.ldo" target="_blank">시내에서 사이공강을 내려다보는 쩐흥다오 동상. 사진 출처: Lao Động</a></p> </div> <p>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1288년 박당강(Bạch Đằng) 전투에서 거둔 승리다. 당시 베트남군은 강의 밀물과 <a href="https://saigoneer.com/vietnam-news/18110-scientists-find-new-wooden-stakes-believed-to-be-from-1288-battle-of-bach-dang">썰물을</a> 이용하고 강바닥에 숨겨 놓은 나무 말뚝을 활용해 적의 함대를 함정에 빠뜨렸으며 상당 부분을 격파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베트남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군사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3. 응우옌주 거리(Nguyễn Du)</span></p> <p>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응우옌주 거리는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heritage/9267-street-cred-nguyen-du,-father-of-vietnamese-literature">작가</a>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응우옌주(Nguyễn Du, 1765–1820)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3.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thanhnien.vn/tinh-tu-dat-viet-nguyen-du-mot-doi-tai-hoa-185251215232944728.htm" target="_blank">[사진 출처: Thanh Niên / Trần Đình Ba]</a></p> </div> <p>그의 대표작인 『쭈옌 끼에우』(Truyện Kiều, The Tale of Kiều)는 과거 베트남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던 쯔놈(chữ Nôm) 문자로 쓰인 3,254행의 장편 서사시다. 이 작품은 아름답고 재능 있는 젊은 여성 투이 끼에우(Thúy Kiều)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쭈옌 끼에우』는 베트남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고전 중 하나로 여겨진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4. 레 러이 대로(Lê Lợi)</span></p> <p>레 러이 대로는 1군에 있으며 사이공 스퀘어를 지난다. 이 대로는 1407년에 시작된 명나라의 점령에 맞서 람선 봉기(Lam Sơn)를 이끈 레 러이(Lê Lợi, 1385–1433)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4.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vtv.vn/dien-mao-duong-le-loi-trung-tam-tp-ho-chi-minh-sap-hoan-thanh-chinh-trang-100251211122921584.htm" target="_blank">사진 출처: VTV</a></p> </div> <p>봉기는 1418년에 시작되어 1427년 <a href="https://tapchiqptd.vn/en/events-and-comments/sound-strategies-by-le-loi-%E2%80%93-the-eminent-leader-of-lam-son-uprising-14181427/12640.html">승리로</a> 끝났고, 1428년 베트남의 독립을 되찾았다. 그 해 레 러이는 레 태조(Lê Thái Tổ)로 즉위하고 레(Lê) 왕조를 세웠다. 후 레 왕조는 이후 베트남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왕조 중 하나가 되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5. 응우옌 후에 대로(Nguyễn Huệ)</span></p> <p>응우옌 후에 대로는 사이공을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culture/1138-street-signs-nguy-n-hu-part-1">대표하는</a> 가장 상징적인 도로 중 하나로, 도심을 지나 사이공강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대로는 떠이선 운동(Tây Sơn)을 대표하는 군사 지도자이자 훗날 꽝쭝(Quang Trung) 황제로 즉위한 응우옌 후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20/ntt2.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ews.laodong.vn/xa-hoi/tphcm-se-xay-them-nhieu-tuyen-duong-di-bo-o-khu-trung-tam-1667669.ldo">사진 출처: Lao Động</a><a href="https://dantri.com.vn/thoi-su/gan-3000-ty-dong-mo-rong-duong-nguyen-tat-thanh-o-tphcm-20251024170424876.htm"></a></p> </div> <p>떠이선 운동은 1771년 베트남 중부에서 응우옌 냑(Nguyễn Nhạc), 응우옌 루(Nguyễn Lữ), 응우옌 후(Nguyễn Huệ, 1753–1792)에 세 형제가 주도한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베트남 남부는 응우옌(Nguyễn) 씨 세력이, 북부는 찐(Trịnh) 씨 세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며, 레(Lê) 왕조의 황제들은 거의 아무런 실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떠이선군은 응우옌과 찐 양대 세력을 무너뜨리고 베트남의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기존의 분열된 정치 질서를 뒤흔들었다. 이 반란은 이후 떠이선 왕조의 수립으로 이어졌지만, 남부에서는 응우옌 아인의 저항이 계속돼 통일된 지배 체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6. 하이바쯩 거리(Hai Bà Trưng)</span></p> <p>‘하이바쯩’은 문자 그대로 ‘두 쯩 자매’이라는 뜻으로, 쯩짝과 쯩니(Trưng Trắc, Trưng Nhị, 출생 연도 미상, 서기 43년 사망)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heritage/2175-street-cred-hai-ba-trung">자매를</a> 가리킨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7.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www.google.com/url?q=https://www.history.com/articles/trung-sisters-vietnam-rebellion-han-dynasty&sa=D&source=docs&ust=1784381789015438&usg=AOvVaw38I7AlMPfCkzkmE8DJu96L" target="_blank">사진 출처: History</a></p> </div> <p>쯩 자매는 서기 40년 중국 후한의 지배에 맞서 대규모 봉기를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지휘한 군대는 한나라 관리들을 몰아내고 쯩짝이 이끄는 독립 정권을 세웠다. 이 정권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서기 43년 한나라 군대가 이 지역을 다시 정복했다. 그러나 쯩 자매는 이후 베트남의 독립과 저항 정신, 여성 지도력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p> <p>[맨 위 사진 출처: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Nguy%E1%BB%85n_Hu%E1%BB%87_Boulevard#/media/File:Nguyen_Hue_Street_2020.jpg">Timback</a>]</p> <p>&nbsp;</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nguyenhue.webp" /></p> <p>사이공에는 베트남의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 몇 명을 아래에 꼽아보았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1. 응우옌 떳 타인 거리(Nguyễn Tất Thành)</span></p> <p>응우옌 떳 타인 거리는 4군에 위치해 있다. 7군과 1군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이기 때문에 두 지역 사이를 오간 적이 있다면 이 거리를 지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곳은 호찌민시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news/27335-saigon-s-next-top-5-congested-streets-are-announced-here-are-the-winners">심한</a> 거리 중 하나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top1.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handan.vn/anh-duong-nguyen-tat-thanh-du-kien-mo-rong-giam-ap-luc-un-tac-giao-thong-tai-thanh-pho-ho-chi-minh-post950412.html">사진 출처: Nhân Dân</a><a href="https://dantri.com.vn/thoi-su/gan-3000-ty-dong-mo-rong-duong-nguyen-tat-thanh-o-tphcm-20251024170424876.htm"></a></p> </div> <p><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은 이 거리가 호찌민(Hồ Chí Minh, 1890–1969)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11세 때 아버지로부터 응우옌 떳 타인(Nguyễn Tất Thành)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독립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응우옌 아이 꾸억(Nguyễn Ái Quốc)을 비롯해 여러 이름과 </span><a href="https://en.vietnamplus.vn/names-associated-with-the-life-of-president-ho-chi-minh-post214024.vnp"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가명을</a><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사용했으며, 1942년부터 우리가 알고있는 호찌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span></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2. 쩐흥다오 거리(Trần Hưng Đạo)</span></p> <p>쩐흥다오 거리는 1군에서 5군까지 이어지는 주요 도로다. 본명이 쩐꾸옥뚜언(Trần Quốc Tuấn, 1228–1300)이었던 쩐흥다오는 13세기 대월(Đại Việt)과 몽골·원 제국 사이의 전쟁에서 쩐(Trần) 왕조를 이끈 대표적인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heritage/839-street-signs-tran-hung-dao-warrior-poet-part-1">지휘관이었다</a>.</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2.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laodong.vn/photo/can-canh-trung-tu-tuong-dai-tran-hung-dao-va-cong-vien-me-linh-o-tphcm-1015193.ldo" target="_blank">시내에서 사이공강을 내려다보는 쩐흥다오 동상. 사진 출처: Lao Động</a></p> </div> <p>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1288년 박당강(Bạch Đằng) 전투에서 거둔 승리다. 당시 베트남군은 강의 밀물과 <a href="https://saigoneer.com/vietnam-news/18110-scientists-find-new-wooden-stakes-believed-to-be-from-1288-battle-of-bach-dang">썰물을</a> 이용하고 강바닥에 숨겨 놓은 나무 말뚝을 활용해 적의 함대를 함정에 빠뜨렸으며 상당 부분을 격파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베트남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군사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3. 응우옌주 거리(Nguyễn Du)</span></p> <p>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응우옌주 거리는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heritage/9267-street-cred-nguyen-du,-father-of-vietnamese-literature">작가</a>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응우옌주(Nguyễn Du, 1765–1820)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3.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thanhnien.vn/tinh-tu-dat-viet-nguyen-du-mot-doi-tai-hoa-185251215232944728.htm" target="_blank">[사진 출처: Thanh Niên / Trần Đình Ba]</a></p> </div> <p>그의 대표작인 『쭈옌 끼에우』(Truyện Kiều, The Tale of Kiều)는 과거 베트남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던 쯔놈(chữ Nôm) 문자로 쓰인 3,254행의 장편 서사시다. 이 작품은 아름답고 재능 있는 젊은 여성 투이 끼에우(Thúy Kiều)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쭈옌 끼에우』는 베트남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고전 중 하나로 여겨진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4. 레 러이 대로(Lê Lợi)</span></p> <p>레 러이 대로는 1군에 있으며 사이공 스퀘어를 지난다. 이 대로는 1407년에 시작된 명나라의 점령에 맞서 람선 봉기(Lam Sơn)를 이끈 레 러이(Lê Lợi, 1385–1433)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4.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vtv.vn/dien-mao-duong-le-loi-trung-tam-tp-ho-chi-minh-sap-hoan-thanh-chinh-trang-100251211122921584.htm" target="_blank">사진 출처: VTV</a></p> </div> <p>봉기는 1418년에 시작되어 1427년 <a href="https://tapchiqptd.vn/en/events-and-comments/sound-strategies-by-le-loi-%E2%80%93-the-eminent-leader-of-lam-son-uprising-14181427/12640.html">승리로</a> 끝났고, 1428년 베트남의 독립을 되찾았다. 그 해 레 러이는 레 태조(Lê Thái Tổ)로 즉위하고 레(Lê) 왕조를 세웠다. 후 레 왕조는 이후 베트남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왕조 중 하나가 되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5. 응우옌 후에 대로(Nguyễn Huệ)</span></p> <p>응우옌 후에 대로는 사이공을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culture/1138-street-signs-nguy-n-hu-part-1">대표하는</a> 가장 상징적인 도로 중 하나로, 도심을 지나 사이공강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대로는 떠이선 운동(Tây Sơn)을 대표하는 군사 지도자이자 훗날 꽝쭝(Quang Trung) 황제로 즉위한 응우옌 후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20/ntt2.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ews.laodong.vn/xa-hoi/tphcm-se-xay-them-nhieu-tuyen-duong-di-bo-o-khu-trung-tam-1667669.ldo">사진 출처: Lao Động</a><a href="https://dantri.com.vn/thoi-su/gan-3000-ty-dong-mo-rong-duong-nguyen-tat-thanh-o-tphcm-20251024170424876.htm"></a></p> </div> <p>떠이선 운동은 1771년 베트남 중부에서 응우옌 냑(Nguyễn Nhạc), 응우옌 루(Nguyễn Lữ), 응우옌 후(Nguyễn Huệ, 1753–1792)에 세 형제가 주도한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베트남 남부는 응우옌(Nguyễn) 씨 세력이, 북부는 찐(Trịnh) 씨 세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며, 레(Lê) 왕조의 황제들은 거의 아무런 실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떠이선군은 응우옌과 찐 양대 세력을 무너뜨리고 베트남의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기존의 분열된 정치 질서를 뒤흔들었다. 이 반란은 이후 떠이선 왕조의 수립으로 이어졌지만, 남부에서는 응우옌 아인의 저항이 계속돼 통일된 지배 체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6. 하이바쯩 거리(Hai Bà Trưng)</span></p> <p>‘하이바쯩’은 문자 그대로 ‘두 쯩 자매’이라는 뜻으로, 쯩짝과 쯩니(Trưng Trắc, Trưng Nhị, 출생 연도 미상, 서기 43년 사망)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heritage/2175-street-cred-hai-ba-trung">자매를</a> 가리킨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18/street7.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www.google.com/url?q=https://www.history.com/articles/trung-sisters-vietnam-rebellion-han-dynasty&sa=D&source=docs&ust=1784381789015438&usg=AOvVaw38I7AlMPfCkzkmE8DJu96L" target="_blank">사진 출처: History</a></p> </div> <p>쯩 자매는 서기 40년 중국 후한의 지배에 맞서 대규모 봉기를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지휘한 군대는 한나라 관리들을 몰아내고 쯩짝이 이끄는 독립 정권을 세웠다. 이 정권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서기 43년 한나라 군대가 이 지역을 다시 정복했다. 그러나 쯩 자매는 이후 베트남의 독립과 저항 정신, 여성 지도력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p> <p>[맨 위 사진 출처: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Nguy%E1%BB%85n_Hu%E1%BB%87_Boulevard#/media/File:Nguyen_Hue_Street_2020.jpg">Timback</a>]</p> <p>&nbsp;</p></div> ‘하노이의 탑’ 퍼즐은 베트남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2026-07-23T11:29:00+07:00 2026-07-23T11:29:00+07:00 https://kr.saigoneer.com/old-saigon/255-베트남/13725-‘하노이의-탑’-퍼즐은-베트남과-무슨-관련이-있을까 코이 팜(Khôi Phạm) 글.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0.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0.webp" data-position="50% 50%" /></p> <p>‘하노이의 탑’이라는 이름은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수학 퍼즐이나 코딩 문제를 풀어 봤다면 한 번쯤 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름은 모르더라도 크기가 다른 원판을 기둥 사이로 옮기는 퍼즐 자체는 익숙할지도 모릅니다.</p> <p dir="ltr">하노이의 탑은 세 개의 기둥과 크기가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원판으로 이루어진 수학 퍼즐입니다. 처음에는 가장 큰 원판이 아래에, 가장 작은 원판이 위에 오도록 모든 원판을 한쪽 기둥에 차례로 쌓아 둡니다. 목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 원판들을 반대편 기둥으로 모두 옮기는 것입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2.gif" /> <p class="image-caption">퍼즐 풀이 과정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이미지 출처: GeeksforGeeks.</p> </div> <p dir="ltr">규칙은 간단합니다. 한 번에 원판 하나만 옮길 수 있고, 작은 원판 위에 더 큰 원판을 올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각 기둥의 맨 위에 놓인 원판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원판의 수에는 제한이 없지만, 원판이 많아질수록 퍼즐을 푸는 데 필요한 시간도 길어집니다. 어린이용 장난감에는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색상의 원판 7~9개가 사용됩니다.</p> <p dir="ltr">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퍼즐이 하노이, 나아가 베트남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답을 찾으려면 퍼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하노이의 탑을 만든 사람은 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퍼즐 애호가였던 에두아르 루카스(Édouard Lucas)로 알려져 있습니다.</p> <div class="third-width 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1.webp" /> <p class="image-caption" style="text-align: center;">에두아르 루카스(1842~1891).</p> </div> <p dir="ltr">루카스가 이 퍼즐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883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a href="https://www.cs.wm.edu/~pkstoc/toh.html">포장지에는</a> “하노이의 탑—안남인의 정통 두뇌 게임—통킹에서 가져온 게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발명가는 “시암 출신의 N. 클라우스 교수이자 리수스티안 대학의 만다린”이라고 소개됐습니다. 포장지에 실린 나머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p> <div class="quote"> <p>이 게임은 저명한 관리 페르페르탐탐[FER-FER-TAM-TAM]의 저서에서 최초로 발견됐습니다. 해당 저서는 조만간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출판될 예정입니다.<br /><br />‘하노이의 탑’은 크기가 차례로 작아지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탑은 중앙에 구멍이 뚫린 나무 원판 여덟 개로 구현했으며, 일본과 중국, 통킹에서는 도자기로 만듭니다.<br /><br />게임의 목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탑을 한 층씩 해체한 뒤, 옆자리에 다시 쌓는 것입니다.<br /><br />재미있고 유익하며 배우기 쉬운 이 게임은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여행 중이든 어디서나 즐길 수 있습니다. 시암의 N. 클라우스 교수가 만든 다른 흥미롭고 참신한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합니다.<br /><br />오래된 인도 전설에 따르면 브라만들은 베나레스에 있는 한 사원의 제단 계단에서 수많은 세대에 걸쳐 신성한 탑을 옮기고 있습니다. 골콘다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순금 원판 64개로 이루어진 브라흐마의 탑입니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는 순간 탑과 브라만들은 무너지고, 세상도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p> </div> <p>물론 ‘시암의 N. 클라우스(N. Claus de Siam)’라는 이름은 ‘아미앵의 루카스(Lucas d’Amiens)’를 재배열해 만든 아나그램에 불과합니다. 아미앵은 에두아르 루카스의 고향입니다. ‘리수스티안(Li-Sou-Stian)’ 역시 그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생루이(Saint Louis) 학교의 이름을 재배열한 것입니다. 나머지 홍보 문구는 당시 유럽 사회의 오리엔탈리즘이 빚어낸 산물로 보입니다. 제작자는 1880년대 프랑스 대중에게 낯설고 이국적으로 여겨졌던 극동의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아시아 각지의 지명과 문화를 한데 뒤섞은 듯합니다.</p> <div class="one-row small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3.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4.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 smallest">루카스가 제작한 하노이의 탑 게임 초판 포장지에 실린 삽화. 이미지 출처: <a href="https://www.puzzlemuseum.com/month/picm07/2007-03_hanoi.htm" target="_blank">The Puzzle Museum</a>.</p> <p dir="ltr">포장지에 등장하는 아시아 국가와 지명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노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베트남의&nbsp;대부분의 장난감 판매점에서는 이 퍼즐을&nbsp;단순히 ‘무지개 탑 장난감’이라는 뜻의 “đồ chơi tháp cầu vồng”이라고 부릅니다.</p> <p dir="ltr">이름의 유래가 어떻든 하노이의 탑은 어린이용 장난감으로도, 수학 퍼즐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TV 시리즈 《닥터 후》와 《서바이버》는 물론, 《매스 이펙트》, 《드래곤 에이지》, 《원신》과 같은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대중문화 작품에도 등장했습니다.</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0.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0.webp" data-position="50% 50%" /></p> <p>‘하노이의 탑’이라는 이름은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수학 퍼즐이나 코딩 문제를 풀어 봤다면 한 번쯤 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름은 모르더라도 크기가 다른 원판을 기둥 사이로 옮기는 퍼즐 자체는 익숙할지도 모릅니다.</p> <p dir="ltr">하노이의 탑은 세 개의 기둥과 크기가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원판으로 이루어진 수학 퍼즐입니다. 처음에는 가장 큰 원판이 아래에, 가장 작은 원판이 위에 오도록 모든 원판을 한쪽 기둥에 차례로 쌓아 둡니다. 목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 원판들을 반대편 기둥으로 모두 옮기는 것입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2.gif" /> <p class="image-caption">퍼즐 풀이 과정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이미지 출처: GeeksforGeeks.</p> </div> <p dir="ltr">규칙은 간단합니다. 한 번에 원판 하나만 옮길 수 있고, 작은 원판 위에 더 큰 원판을 올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각 기둥의 맨 위에 놓인 원판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원판의 수에는 제한이 없지만, 원판이 많아질수록 퍼즐을 푸는 데 필요한 시간도 길어집니다. 어린이용 장난감에는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색상의 원판 7~9개가 사용됩니다.</p> <p dir="ltr">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퍼즐이 하노이, 나아가 베트남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답을 찾으려면 퍼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하노이의 탑을 만든 사람은 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퍼즐 애호가였던 에두아르 루카스(Édouard Lucas)로 알려져 있습니다.</p> <div class="third-width 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1.webp" /> <p class="image-caption" style="text-align: center;">에두아르 루카스(1842~1891).</p> </div> <p dir="ltr">루카스가 이 퍼즐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883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a href="https://www.cs.wm.edu/~pkstoc/toh.html">포장지에는</a> “하노이의 탑—안남인의 정통 두뇌 게임—통킹에서 가져온 게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발명가는 “시암 출신의 N. 클라우스 교수이자 리수스티안 대학의 만다린”이라고 소개됐습니다. 포장지에 실린 나머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p> <div class="quote"> <p>이 게임은 저명한 관리 페르페르탐탐[FER-FER-TAM-TAM]의 저서에서 최초로 발견됐습니다. 해당 저서는 조만간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출판될 예정입니다.<br /><br />‘하노이의 탑’은 크기가 차례로 작아지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탑은 중앙에 구멍이 뚫린 나무 원판 여덟 개로 구현했으며, 일본과 중국, 통킹에서는 도자기로 만듭니다.<br /><br />게임의 목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탑을 한 층씩 해체한 뒤, 옆자리에 다시 쌓는 것입니다.<br /><br />재미있고 유익하며 배우기 쉬운 이 게임은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여행 중이든 어디서나 즐길 수 있습니다. 시암의 N. 클라우스 교수가 만든 다른 흥미롭고 참신한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합니다.<br /><br />오래된 인도 전설에 따르면 브라만들은 베나레스에 있는 한 사원의 제단 계단에서 수많은 세대에 걸쳐 신성한 탑을 옮기고 있습니다. 골콘다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순금 원판 64개로 이루어진 브라흐마의 탑입니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는 순간 탑과 브라만들은 무너지고, 세상도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p> </div> <p>물론 ‘시암의 N. 클라우스(N. Claus de Siam)’라는 이름은 ‘아미앵의 루카스(Lucas d’Amiens)’를 재배열해 만든 아나그램에 불과합니다. 아미앵은 에두아르 루카스의 고향입니다. ‘리수스티안(Li-Sou-Stian)’ 역시 그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생루이(Saint Louis) 학교의 이름을 재배열한 것입니다. 나머지 홍보 문구는 당시 유럽 사회의 오리엔탈리즘이 빚어낸 산물로 보입니다. 제작자는 1880년대 프랑스 대중에게 낯설고 이국적으로 여겨졌던 극동의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아시아 각지의 지명과 문화를 한데 뒤섞은 듯합니다.</p> <div class="one-row smallest">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3.webp" /></div> <div><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2026/05/15/tower-of-hanoi/04.webp" /></div> </div> <p class="image-caption smallest">루카스가 제작한 하노이의 탑 게임 초판 포장지에 실린 삽화. 이미지 출처: <a href="https://www.puzzlemuseum.com/month/picm07/2007-03_hanoi.htm" target="_blank">The Puzzle Museum</a>.</p> <p dir="ltr">포장지에 등장하는 아시아 국가와 지명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노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베트남의&nbsp;대부분의 장난감 판매점에서는 이 퍼즐을&nbsp;단순히 ‘무지개 탑 장난감’이라는 뜻의 “đồ chơi tháp cầu vồng”이라고 부릅니다.</p> <p dir="ltr">이름의 유래가 어떻든 하노이의 탑은 어린이용 장난감으로도, 수학 퍼즐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TV 시리즈 《닥터 후》와 《서바이버》는 물론, 《매스 이펙트》, 《드래곤 에이지》, 《원신》과 같은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대중문화 작품에도 등장했습니다.</p></div> 베트남 쌀국수, 북부식 퍼와 남부식 퍼, 무엇이 다를까? 2026-07-13T11:45:00+07:00 2026-07-13T11:45:00+07:00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723-베트남-쌀국수,-북부식-퍼와-남부식-퍼,-무엇이-다를까 사이공이어 글.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 class="MsoNormal"><img style="display: block;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alt=""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8P4rNzd.jpg" /></p> <p>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인 퍼보(phở bò)에도 지역에 따라 다른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퍼보는 크게 북부식과 남부식으로 나뉘는데, 두 스타일은 육수의 맛부터 함께 곁들이는 재료까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입니다.</p> <p>&nbsp;먼저 북부식 퍼는 육수가 <a href="https://e.vnexpress.net/news/travel/food-recipes/hanoi-and-saigon-the-pho-divide-explained-4963497.html">담백하고</a> 맑은 편입니다. 여러 가지 소스나 재료를 많이 더하기보다는, 오래 끓여 낸 육수 본연의 맛을 즐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럼으로 전체적인 구성도 비교적 단순합니다. 면과 육수에 파, 고수, 고추, 라임 등을 곁들여 먹고, 북부식 퍼 전문점에서는 절인 마늘을 함께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new1.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e.vnexpress.net/news/travel/food-recipes/hanoi-and-saigon-the-pho-divide-explained-4963497.html" target="_blank">북부식 퍼 (VnExpress/Hoang Giang)</a></p> </div> <p>북부식 퍼에서는 숙주나 다양한 허브가 가득 담긴 큰 접시를 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꽈이(quẩy)’라고 불리는 베트남식 튀김빵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꽈이를 뜨거운 퍼 국물에 살짝 담가 먹으면 튀김빵이 육수를 머금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냅니다. 이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p> <p>반면 남부식 퍼는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느낌이 강합니다. 육수는 북부식보다 진하고, <a href="https://www.nationalgeographic.com/travel/article/pho-soup-history-vietnam">단맛도</a> 더 강한 편입니다. 이 단맛은 주로 육수에 넣어 녹이는 얼음설탕(rock sugar)에서 나옵니다.</p> <p>남부식 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함께 제공되는 숙주와 허브 접시입니다. 보통 숙주, 타이 바질, 쿨란트로 같은 허브가 따로 나오며, 손님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만큼 국수에 넣어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호이신 소스나 칠리소스를 더해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p> <p>면의 굵기도 두 스타일을 구분하는 요소로 언급되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남부식 퍼에 쓰이는 면이 북부식 퍼의 면보다 조금 더 굵은 경향이 있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new2.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ews.tuoitre.vn/vietnams-northern-vs-southern-pho-which-is-better-10360031.htm" target="_blank">남부식 퍼 (Tuoi Tre/Viet Toan)</a></p> </div> <p>결국 북부식 퍼와 남부식 퍼의 가장 큰 차이는 육수의 성격과 재료를 더해 먹는 방식에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북부식 퍼를 평양냉면에 비유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 양념을 더하기보다 맑고 담백한 육수의 섬세한 맛을 느끼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p> <p>그렇다면 두 스타일 가운데 어떤 퍼가 ‘원조’일까요?</p> <p>역사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퍼라고 부르는 음식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베트남 북부에서 처음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food-culture/2156-a-short-history-of-ph">등장했다는</a> 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하노의 남쪽에 위치한 남딘(Nam Định)은 퍼가 처음 탄생한 지역으로 자주 언급되고, 하노이는 퍼가 도시의 길거리 음식으로 널리 퍼지고 대중화된 곳으로 평가됩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3.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www.google.com/url?q=https://www.flickr.com/photos/hmoong/11348624956&sa=D&source=docs&ust=1783583078608869&usg=AOvVaw1Ilh6DRj0qySWpGlHlhSqU" target="_blank">하노이 거리에서 파는 쌀국수 (Khanh Hmoong)</a></p> </div> <p>퍼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퍼가 물소 고기를 넣은 중국식 국수 요리인 ‘응우 녁 펀(ngưu nhục phấn)’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만드는 프랑스 전통 요리 ‘포토푀(pot-au-feu)’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입니다.</p> <p>다만 퍼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의 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기원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4.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www.google.com/url?q=https://www.flickr.com/photos/hmoong/11348624956&sa=D&source=docs&ust=1783583078608869&usg=AOvVaw1Ilh6DRj0qySWpGlHlhSqU" target="_blank">하노이 거리에서 파는 쌀국수 (Khanh Hmoong)</a></p> </div> <p>1954년 제네바 회담 이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한 사람들을 통해 퍼가 남부 지역에도 전해졌습니다. 이후 퍼는 남부 지역의 식재료와 입맛에 맞게 조금씩 변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남부식 퍼가 탄생했습니다.</p> <p>오늘날 퍼는 베트남뿐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북부식 퍼와 남부식 퍼의 차이를 알고 나면 자신이 어떤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지도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퍼라는 음식을 조금 더 깊이 즐기고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p></div> <div class="feed-description"><p class="MsoNormal"><img style="display: block;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alt=""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article-images/legacy/8P4rNzd.jpg" /></p> <p>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인 퍼보(phở bò)에도 지역에 따라 다른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퍼보는 크게 북부식과 남부식으로 나뉘는데, 두 스타일은 육수의 맛부터 함께 곁들이는 재료까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입니다.</p> <p>&nbsp;먼저 북부식 퍼는 육수가 <a href="https://e.vnexpress.net/news/travel/food-recipes/hanoi-and-saigon-the-pho-divide-explained-4963497.html">담백하고</a> 맑은 편입니다. 여러 가지 소스나 재료를 많이 더하기보다는, 오래 끓여 낸 육수 본연의 맛을 즐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럼으로 전체적인 구성도 비교적 단순합니다. 면과 육수에 파, 고수, 고추, 라임 등을 곁들여 먹고, 북부식 퍼 전문점에서는 절인 마늘을 함께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new1.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e.vnexpress.net/news/travel/food-recipes/hanoi-and-saigon-the-pho-divide-explained-4963497.html" target="_blank">북부식 퍼 (VnExpress/Hoang Giang)</a></p> </div> <p>북부식 퍼에서는 숙주나 다양한 허브가 가득 담긴 큰 접시를 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꽈이(quẩy)’라고 불리는 베트남식 튀김빵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꽈이를 뜨거운 퍼 국물에 살짝 담가 먹으면 튀김빵이 육수를 머금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냅니다. 이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p> <p>반면 남부식 퍼는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느낌이 강합니다. 육수는 북부식보다 진하고, <a href="https://www.nationalgeographic.com/travel/article/pho-soup-history-vietnam">단맛도</a> 더 강한 편입니다. 이 단맛은 주로 육수에 넣어 녹이는 얼음설탕(rock sugar)에서 나옵니다.</p> <p>남부식 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함께 제공되는 숙주와 허브 접시입니다. 보통 숙주, 타이 바질, 쿨란트로 같은 허브가 따로 나오며, 손님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만큼 국수에 넣어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호이신 소스나 칠리소스를 더해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p> <p>면의 굵기도 두 스타일을 구분하는 요소로 언급되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남부식 퍼에 쓰이는 면이 북부식 퍼의 면보다 조금 더 굵은 경향이 있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new2.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news.tuoitre.vn/vietnams-northern-vs-southern-pho-which-is-better-10360031.htm" target="_blank">남부식 퍼 (Tuoi Tre/Viet Toan)</a></p> </div> <p>결국 북부식 퍼와 남부식 퍼의 가장 큰 차이는 육수의 성격과 재료를 더해 먹는 방식에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북부식 퍼를 평양냉면에 비유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 양념을 더하기보다 맑고 담백한 육수의 섬세한 맛을 느끼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p> <p>그렇다면 두 스타일 가운데 어떤 퍼가 ‘원조’일까요?</p> <p>역사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퍼라고 부르는 음식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베트남 북부에서 처음 <a href="https://saigoneer.com/saigon-food-culture/2156-a-short-history-of-ph">등장했다는</a> 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하노의 남쪽에 위치한 남딘(Nam Định)은 퍼가 처음 탄생한 지역으로 자주 언급되고, 하노이는 퍼가 도시의 길거리 음식으로 널리 퍼지고 대중화된 곳으로 평가됩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3.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www.google.com/url?q=https://www.flickr.com/photos/hmoong/11348624956&sa=D&source=docs&ust=1783583078608869&usg=AOvVaw1Ilh6DRj0qySWpGlHlhSqU" target="_blank">하노이 거리에서 파는 쌀국수 (Khanh Hmoong)</a></p> </div> <p>퍼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퍼가 물소 고기를 넣은 중국식 국수 요리인 ‘응우 녁 펀(ngưu nhục phấn)’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만드는 프랑스 전통 요리 ‘포토푀(pot-au-feu)’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입니다.</p> <p>다만 퍼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의 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기원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p> <div class="centered"><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2026/07/08/4.webp" /> <p class="image-caption"><a href="https://www.google.com/url?q=https://www.flickr.com/photos/hmoong/11348624956&sa=D&source=docs&ust=1783583078608869&usg=AOvVaw1Ilh6DRj0qySWpGlHlhSqU" target="_blank">하노이 거리에서 파는 쌀국수 (Khanh Hmoong)</a></p> </div> <p>1954년 제네바 회담 이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한 사람들을 통해 퍼가 남부 지역에도 전해졌습니다. 이후 퍼는 남부 지역의 식재료와 입맛에 맞게 조금씩 변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남부식 퍼가 탄생했습니다.</p> <p>오늘날 퍼는 베트남뿐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북부식 퍼와 남부식 퍼의 차이를 알고 나면 자신이 어떤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지도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퍼라는 음식을 조금 더 깊이 즐기고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p></div> 가족 여름휴가를 더 편안하게,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Crowne Plaza Phú Quốc Starbay) 2026-07-08T21:58:00+07:00 2026-07-08T21:58:00+07:00 https://kr.saigoneer.com/explore/sponsored-listings/13721-가족-여름휴가를-더-편안하게,-크라운-플라자-푸꾸옥-스타베이-crowne-plaza-phú-quốc-starbay Crowne Plaza Phú Quốc Starbay 글. Crowne Plaza Phú Quốc Starbay 사진. info@saigoneer.com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1.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1.webp" data-position="50% 100%" /></p> <p>달콤하게 익어가는 잭프루트와 망고스틴, 망고, 서늘한 그늘 아래에서 천천히 흔들리는 해먹, 다음 날 아침 알람을 맞출 필요 없이 느긋하게 이어지는 저녁. 여름은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찾아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가족들은 아이들의 학원과 활동 일정을 알아보고 스케줄을 조율하느라 분주해집니다. 그렇기에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만끽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경험하며 가족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여행의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집니다.</p> <p dir="ltr">여행은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되찾아 주고 스트레스를 덜어 주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여행은 복잡한 일정과 수많은 선택, 가족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번거로운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정작 휴식을 취하기보다 여행 정보를 검색하고 일정을 짜며 모두가 만족할지 걱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가족은 복잡한 준비 없이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춘 여행지를 선호합니다.</p> <p dir="ltr">한때 한적한 어촌이자 식민지 시대 자라잡이로 알려졌던 푸꾸옥(Phú Quốc)은 이제 깨끗한 해변과 맑은 바다, 신선한 공기,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갖춘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추진되는 공항 확장과 공연장·컨퍼런스센터 건립, 각종 <a href="https://e.vnexpress.net/news/news/vietnam-s-phu-quoc-races-to-build-47-5m-water-and-waste-plants-before-apec-leaders-arrive-5044893.html">기반 시설 개발</a>은 푸꾸옥을 베트남을 대표하는 휴양지로 육성하려는 국가적 의지를 보여 줍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2.webp" /></p> <p>푸꾸옥을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은 예상보다 큰 섬의 규모에 놀라곤 합니다. 푸꾸옥은 면적이 575km<span id="_mce_caret" data-mce-bogus="true"><sup>2</sup></span>에 달하는 만큼 지역마다 저마다의 특색과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족의 취향과 여행 목적에 가장 잘 맞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석양으로 유명한 섬 북서부 해안에 자리한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Crowne Plaza Phú Quốc Starbay)는 복잡한 여행 계획과 남부 도심의 북적이는 분위기를 피하고 싶은 가족에게 안성맞춤입니다. 놀이공원부터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레스토랑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가까이 마련되어 있어 편안한 옷과 선크림만 챙기면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납니다.</p> <p>섬 북부에 머물면 사파리와 테마파크, 그랜드 월드(Grand World) 야시장 등 다양한 관광 명소를 짧은 시간 안에 방문할 수 있습니다. 맑은 공기와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푸꾸옥 특산물인 심(Sim) 열매 농장과 후추 농장, 양봉장, 국립공원도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처럼 편리한 접근성 덕분에 여행 일정도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맛있는 숙박에 포함된 조식 뷔페를 즐긴 뒤, 온 가족이 마음껏 웃고 즐기는 하루를 시작하면 됩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3.webp" /></p> <p>알찬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반드시 리조트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에는 실내외 키즈 클럽과 체험 워크숍, 야외 놀이 프로그램은 물론, 가장 더운 낮 시간에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늑한 게임룸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모들도 업무와 집안일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위한 여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호아 심(Hoa Sim) 스파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24시간 운영되는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인근 골프장에서 라운딩도 즐길 수도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7.webp" /></p> <p>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바다입니다. 널찍한 발코니와 커다란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는 햇빛을 받아 끝없이 반짝이고,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전용 해변의 고운 모래사장을 건너 바다에 몸을 담그는 순간, 바다는 더 이상 거창한 은유가 아니라 물장구를 치고 둥둥 떠다니며 신나게 놀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 됩니다. 물론 더운 날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반드시 바다에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이 전용 수영장을 포함한 야외 수영장에서도 부드러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4.webp" /></p> <p>테마파크에서 신나게 놀고,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고, 가족과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허기가 지기 마련입니다. 직접 요리하거나 설거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물론 여행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에는 그날의 기분과 가족 구성원 각자의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다이닝 옵션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늑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호라이즌스 레스토랑 & 바(Horizons Restaurant & Bar)에서는 베트남과 한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선보이는 저녁 세미 뷔페를 운영합니다. 한편, 해변을 바라보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할 수 있는 앰버 샌즈 비치 클럽(Amber Sands Beach Club)은 현지에서 공수한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선보입니다. 더욱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빌라에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 바비큐 디너도 예약할 수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5.webp" /></p> <p>여름은 짧고, 휴가를 떠날 기회는 더욱 드뭅니다. 푸꾸옥의 패밀리 리조트에서라면 그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즐기며 편안하게 쉴 수 있습니다.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는 편안하고 널찍한 객실, 전용 해변 너머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석양,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활동, 아늑한 스파와 맛있는 음식까지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복잡한 여행 계획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여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남은 고민이라고는 행복한 순간을 오래 간직할 사진을 얼마나 많이 남길지뿐입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6.webp" /></p> <p><a href="https://phuquoc.crowneplaza.com/offer_category/room-offers/">올여름,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의 객실 특가와 함께 푸꾸옥에서 가족 휴가를 즐겨 보세요.</a></p> <p>&nbsp;</p> <div class="listing-detail"> <p data-icon="h"><a href="https://phuquoc.crowneplaza.com/">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웹사이트</a></p> <p data-icon="e"><a href="https://saigoneer.com/reservations.cppq@ihg.com" target="_blank">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이메일</a></p> <p data-icon="F"><a href="https://www.facebook.com/CrownePlazaPhuQuocStarbay">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이메일 페이스북</a></p> <p data-icon="d"><a href="https://www.instagram.com/crowneplazaphuquocstarbay/?hl=en">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이메일 인스타그램</a></p> <p data-icon="f">(+84) 297 3683 999</p> <p data-icon="k">Crowne Plaza Phu Quoc Starbay, Bai Dai Area, Phú Quốc, An Giang, Vietnam</p> </div> </div> <div class="feed-description"><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1.webp" data-og-image="//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1.webp" data-position="50% 100%" /></p> <p>달콤하게 익어가는 잭프루트와 망고스틴, 망고, 서늘한 그늘 아래에서 천천히 흔들리는 해먹, 다음 날 아침 알람을 맞출 필요 없이 느긋하게 이어지는 저녁. 여름은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찾아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가족들은 아이들의 학원과 활동 일정을 알아보고 스케줄을 조율하느라 분주해집니다. 그렇기에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만끽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경험하며 가족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여행의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집니다.</p> <p dir="ltr">여행은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되찾아 주고 스트레스를 덜어 주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여행은 복잡한 일정과 수많은 선택, 가족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번거로운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정작 휴식을 취하기보다 여행 정보를 검색하고 일정을 짜며 모두가 만족할지 걱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가족은 복잡한 준비 없이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춘 여행지를 선호합니다.</p> <p dir="ltr">한때 한적한 어촌이자 식민지 시대 자라잡이로 알려졌던 푸꾸옥(Phú Quốc)은 이제 깨끗한 해변과 맑은 바다, 신선한 공기,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갖춘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추진되는 공항 확장과 공연장·컨퍼런스센터 건립, 각종 <a href="https://e.vnexpress.net/news/news/vietnam-s-phu-quoc-races-to-build-47-5m-water-and-waste-plants-before-apec-leaders-arrive-5044893.html">기반 시설 개발</a>은 푸꾸옥을 베트남을 대표하는 휴양지로 육성하려는 국가적 의지를 보여 줍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2.webp" /></p> <p>푸꾸옥을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은 예상보다 큰 섬의 규모에 놀라곤 합니다. 푸꾸옥은 면적이 575km<span id="_mce_caret" data-mce-bogus="true"><sup>2</sup></span>에 달하는 만큼 지역마다 저마다의 특색과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족의 취향과 여행 목적에 가장 잘 맞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석양으로 유명한 섬 북서부 해안에 자리한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Crowne Plaza Phú Quốc Starbay)는 복잡한 여행 계획과 남부 도심의 북적이는 분위기를 피하고 싶은 가족에게 안성맞춤입니다. 놀이공원부터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레스토랑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가까이 마련되어 있어 편안한 옷과 선크림만 챙기면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납니다.</p> <p>섬 북부에 머물면 사파리와 테마파크, 그랜드 월드(Grand World) 야시장 등 다양한 관광 명소를 짧은 시간 안에 방문할 수 있습니다. 맑은 공기와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푸꾸옥 특산물인 심(Sim) 열매 농장과 후추 농장, 양봉장, 국립공원도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처럼 편리한 접근성 덕분에 여행 일정도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맛있는 숙박에 포함된 조식 뷔페를 즐긴 뒤, 온 가족이 마음껏 웃고 즐기는 하루를 시작하면 됩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3.webp" /></p> <p>알찬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반드시 리조트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에는 실내외 키즈 클럽과 체험 워크숍, 야외 놀이 프로그램은 물론, 가장 더운 낮 시간에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늑한 게임룸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모들도 업무와 집안일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위한 여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호아 심(Hoa Sim) 스파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24시간 운영되는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인근 골프장에서 라운딩도 즐길 수도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7.webp" /></p> <p>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바다입니다. 널찍한 발코니와 커다란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는 햇빛을 받아 끝없이 반짝이고,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전용 해변의 고운 모래사장을 건너 바다에 몸을 담그는 순간, 바다는 더 이상 거창한 은유가 아니라 물장구를 치고 둥둥 떠다니며 신나게 놀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 됩니다. 물론 더운 날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반드시 바다에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이 전용 수영장을 포함한 야외 수영장에서도 부드러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4.webp" /></p> <p>테마파크에서 신나게 놀고,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고, 가족과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허기가 지기 마련입니다. 직접 요리하거나 설거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물론 여행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에는 그날의 기분과 가족 구성원 각자의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다이닝 옵션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늑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호라이즌스 레스토랑 & 바(Horizons Restaurant & Bar)에서는 베트남과 한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선보이는 저녁 세미 뷔페를 운영합니다. 한편, 해변을 바라보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할 수 있는 앰버 샌즈 비치 클럽(Amber Sands Beach Club)은 현지에서 공수한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선보입니다. 더욱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빌라에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 바비큐 디너도 예약할 수 있습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5.webp" /></p> <p>여름은 짧고, 휴가를 떠날 기회는 더욱 드뭅니다. 푸꾸옥의 패밀리 리조트에서라면 그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즐기며 편안하게 쉴 수 있습니다.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는 편안하고 널찍한 객실, 전용 해변 너머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석양,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활동, 아늑한 스파와 맛있는 음식까지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복잡한 여행 계획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여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남은 고민이라고는 행복한 순간을 오래 간직할 사진을 얼마나 많이 남길지뿐입니다.</p> <p><img src="//media.urbanistnetwork.com/saigoneer/xplr-images/premium-content/2026-06-CrownePlaza/cp6.webp" /></p> <p><a href="https://phuquoc.crowneplaza.com/offer_category/room-offers/">올여름,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의 객실 특가와 함께 푸꾸옥에서 가족 휴가를 즐겨 보세요.</a></p> <p>&nbsp;</p> <div class="listing-detail"> <p data-icon="h"><a href="https://phuquoc.crowneplaza.com/">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웹사이트</a></p> <p data-icon="e"><a href="https://saigoneer.com/reservations.cppq@ihg.com" target="_blank">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이메일</a></p> <p data-icon="F"><a href="https://www.facebook.com/CrownePlazaPhuQuocStarbay">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이메일 페이스북</a></p> <p data-icon="d"><a href="https://www.instagram.com/crowneplazaphuquocstarbay/?hl=en">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 이메일 인스타그램</a></p> <p data-icon="f">(+84) 297 3683 999</p> <p data-icon="k">Crowne Plaza Phu Quoc Starbay, Bai Dai Area, Phú Quốc, An Giang, Vietnam</p>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