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문화 - Saigoneer한글판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 Wed, 28 Jan 2026 08:28:30 +0700 Joomla! - Open Source Content Management en-gb 피자 4P's, 미국에 첫 플래그십 매장 뉴욕에 오픈 예정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99-피자-4p-s,-미국에-첫-플래그십-매장-뉴욕에-오픈-예정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99-피자-4p-s,-미국에-첫-플래그십-매장-뉴욕에-오픈-예정

뉴욕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익숙한 연어 미소 피자(salmon miso pizza)의 맛이 그리워진 분들께 올해는 행운이 더해질 것 같습니다.

사이공에서 시작한 자체 피자 브랜드인 Pizza 4P’s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Insider Retail에 따르면, 이 일본-이탈리아 퓨전 피자 체인은 미국 내 첫 매장을 뉴욕 브루클린에 열 계획이라고 합니다. 다만, 정확한 주소는 기사 작성 시점에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출시를 준비하기 위해 Pizza 4P’s는 브루클린 매장의 운영을 총괄할 총지배인(General Manager)을 모집하는 채용 공고를 냈습니다.

이번 진출은 아시아 이외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앞서 캄보디아,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여러 국가에 매장을 확장한 데 이은 행보입니다.

현재 Pizza 4P’s는 베트남에 35개, 캄보디아에 2개, 인도네시아·인도·일본에 각각 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1년, 사이공 1군의 아늑한 매장에서 시작해 독특한 맛의 수제 피자를 선보이며 문을 연 Pizza 4P’s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신선한 재료와 고급스러운 피자를 앞세워 빠르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사이공의 패스트캐주얼 피자 체인들과는 차별화된 매력이었습니다.

[Photo via Dân Tr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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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Saigoneer.) 음식 문화 Fri, 03 Oct 2025 12:00:00 +0700
중부 베트남 고유의 여름 디저트, '쑤쏘아 (Xu Xoa)'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77-중부-베트남-고유의-여름-디저트,-쑤쏘아-xu-xoa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77-중부-베트남-고유의-여름-디저트,-쑤쏘아-xu-xoa

사이공 사람들은 무더운 날씨에 스엉섬 (sương sâm, 잎 젤리)이나 스엉사오 (sương sáo, 풀 젤리)를 즐겨 찾지만, 중부 해안 지방 사람들은 '쑤쏘아 (xu xoa)'를 찾습니다. 투명하고 은은한 감칠맛의 젤리가 생강 향이 감도는 달콤한 시럽에 담겨 있어, 더위를 식히는데 최고의 간식입니다.

쑤쏘아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쑤싸(xu xa), 싸싸(xa xa), 쏘아쏘아(xoa xoa), 또는 쭈쪼아(chu choa) 등 여러 별칭이 있지만, 꽝빈(Quảng Bình)부터 빈투언(Bình Thuận)까지의 쑤쏘아는 동일한 주요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현지에서는 '롱꺼우(rong câu)' 또는 '라우동(rau đông)'이라고 부르는 해조류의 일종으로 바닷가의 젖은 바위나 암초에 흔히 서식합니다.

롱꺼우는 바위 표면에 부착된 덤불 형태로 자라며, 가느다란 줄기가 작은 물고기 뼈처럼 하얗고 반투명합니다. 이 해조류는 봄철에 가장 왕성하게 자라며, 음력 3월부터 7월까지 채취가 가능합니다. 이 시기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해변으로 나가 롱꺼우를 따서 시장에 내다 팝니다.

 

썰물 때인 이른 아침이나 이른 오후, 채취자들은 긁개와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큰 바위로 향합니다. 다양한 크기의 바위들은 에메랄드빛, 황토색, 아이보리색의 다채로운 해조류로 덮여 있습니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큰 모자를 쓴 채, 채취자들은 작열하는 햇볕과 짠 바닷바람 속에서도 부지런히 가장 신선한 해조류를 수확하기 위해 일합니다. 먼저 긁개의 끝을 바위 틈에 깊숙이 넣은 후, 뿌리까지 해조류 전체를 밀어내어 채취합니다. 몇 시간 후면 바구니가 가득 차고, 운이 좋으면 몇 킬로그램, 그렇지 않아도 반 킬로 정도가 됩니다. 이 작업은 밀물 때가 오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쑤쏘아의 주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는 과정도 채취만큼이나 고된 일입니다. 해조류에는 모래와 이물질이 많아 일일이 제거해야 하며, 비린내와 짠맛을 없애기 위해 여러 번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보통 채취한 롱꺼우의 절반은 쑤쏘아를 만드는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햇볕에 말립니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은 건조에 가장 적합하며, 며칠 동안 햇볕에 말리면 해조류는 갈색 코코넛 껍질처럼 쪼그라듭니다. 이 건조된 해조류는 비수기에 쑤쏘아를 만들기 위해 집에 보관하거나 공장이나 시장으로 운반됩니다.

 

디저트 본연의 쑤쏘아를 만드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신선한 롱꺼우를 물과 함께 끓인 후, 라임즙을 약간 넣으면 해조류가 더 쉽게 풀어집니다. 라임의 산성이 응고 성분을 분해해주기 때문입니다. 해조류가 완전히 녹으면 그 액체를 걸러내어 쑤쏘아 추출액을 만듭니다. 이 액체가 식으면 다시 젤리처럼 굳어 반투명한 덩어리가 됩니다.

젤리가 완성되면, 그 다음 단계는 생강 시럽을 만드는 일입니다. 보통은 몰라세스가 첨가된 흑설탕을 사용하는데, 꽝 지방 주민들은 사탕수수 덩어리를 사용합니다. 물을 끓인 후 설탕을 넣고 졸이면, 끓이는 시간이 길수록 시럽은 점점 더 걸쭉해집니다. 경험 많은 주부들은 점도로 시럽의 완성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며, 보다 정밀한 측정을 원하면 굴절계가 필요합니다. 설탕이 끓는 동안, 잘게 썬 생강을 넣는데, 어린 생강이나 숙성된 생강을 취향에 따라 선택합니다.

 

달콤한 생강 향이 퍼지면 쑤쏘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앞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은 생강 냄새를 맡자마자 모든 걸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가 쑤쏘아를 만들고 있는지 봅니다. 쑤쏘아는 중부 베트남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추억의 간식입니다. 작가 낌엠(Kim Em)은 『먹으며 기억하다(Ăn để nhớ)』라는 책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오후 낮잠을 거른 채 밖에서 노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서, 낮잠을 잘 자면 쑤쏘아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겠다 약속했어요. 그래서 저는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면서, 생강과 설탕이 어우러진 쑤쏘아 한 그릇을 꿈꾸었어요."

길거리 쑤쏘아는 중부 베트남 여름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대나무 지게에 쑤쏘아를 이고 다니는 할머니들이나 오토바이 좌석에 젤리통을 싣고 다니는 노점상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아이 쑤쏘아 홍? (Ai xu xoa hông?, 쑤쏘아 드실 분?)" 하고 외칩니다. 판매자들은 종종 화려한 칼 솜씨를 자랑하며 냄비만큼 큰 젤리를 순식간에 반짝이는 조각으로 썰어내고, 향긋한 생강 시럽을 끼얹어 줍니다. 손에 쑤쏘아 한 그릇을 들고 있으면 마치 한여름의 오아시스를 품은 듯한 기분이 들며,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먼저 감상한 후 한 입 한 입 천천히 음미합니다. 작가 낌엠의 표현처럼 말입니다. "급히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랬다가는 여름이 제 혀끝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았거든요."

전통적인 생강 시럽 외에도, 쑤쏘아를 즐기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다낭의 디저트 가게에서는 쑤쏘아에 녹두 앙금, 빨간 타피오카 펄, 반롯(bánh lọt), 검은콩, 진한 코코넛 밀크를 함께 곁들여줍니다. 호이안에서는 ‘싸싸(xa xa)’와 ‘르엉팡(lường phảnh)’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하는데, 싸싸는 호이안에서 쑤쏘아를 일컫는 말이고, 르엉팡은 약초와 약재로 만든 검은 젤리입니다.

 

쑤쏘아는 여름철 더위를 막아주는 간식일 뿐 아니라, 중부 출신 베트남인들에게는 향수를 달래주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사이공에 사는 중부 사람들은 향수가 밀려올 때마다 바호아(Bà Hoa) 시장으로 향해 생강 향 가득한 쑤쏘아 한 그릇을 먹거나, 마른 롱꺼우를 사서 집에서 만들어 먹곤 합니다. 쑤쏘아의 은은한 단맛은 마치 고향의 품처럼, 그리움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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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Thu Hà. Illustrations by Dương Trương.) 음식 문화 Fri, 20 Jun 2025 12:33:41 +0700
오피니언: 베트남계 미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준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76-오피니언-베트남계-미국인이라는-것을-자랑스럽게-만들어준-앤서니-보데인-anthony-bourdain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76-오피니언-베트남계-미국인이라는-것을-자랑스럽게-만들어준-앤서니-보데인-anthony-bourdain

금요일 밤, 사이공에 도착했을 때 제 휴대폰에는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의 사망 소식이 트윗, 문자, 뉴스 속보로 뒤섞여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셰프에서 여행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한 보데인이 61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자, 인터넷에는 슬픔과 충격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도 보데인의 사망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원래 2018년 6월, 앤서니 보데인의 사망 직후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저는 많은 동료 언론인들이 이 사랑받는 미식계의 록스타이자 많은 이의 친구를 기리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며 놀라지 않았습니다. Chefsfeed의 카산드라 리앤드리(Cassandra Leandry)는 “우리 모두가 보데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썼고, 이는 뉴요커의 헬렌 로스너(Helen Rosner), Food & Wine의 캣 킨스먼(Kat Kinsman), 그리고 Saigoneer의 마이크 타타르스키(Mike Tatarski) 등 많은 매체에서 올라온 감동적인 개인적인 일화와 추억을 반영한 추모 기사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로스너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보데인은 마치 형제 같고, 멋진 삼촌 같고, 믿기지 않을 만큼 쿨한 아빠 같았어요 — 진짜 같고 똑똑한 친구가 어느 날 술집에서 맥주 마시고 나오다 카메라 앞에 섰고, 그냥 거기에 남기로 한 것 같은 느낌이었죠.”

1군에 있는 한 바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보데인을 위해 건배를 하면서, 저는 그가 고급 음식 잡지나 미식 레스토랑과 같은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를 넘어 흔한 식당과 일상적인 요리에까지 얼마나 멀리 도달했는지 떠올랐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그의 특별한 애정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이는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해외에서 태어난 베트남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그러니까, 도시락을 싸 갔을 때 “냄새난다”고 놀림 받고, TV에서는 우리와 같은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던 그런 우리들에게 말입니다. 우리에게 보데인의 베트남에 대한 열정과 그것을 세상과 나누고자 했던 바람은 우리가 베트남인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종종 친구들에게 베트남계 미국인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그들 대부분은 역사 시간에 배운 베트남 전쟁이라는 부분 외에는 베트남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데인의 No Reservations가 2005년 트래블 채널에서 방영되며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세 편의 에피소드를 내보냈을 때, 그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곳은 신비롭고, 아름답고, 알 수 없는 곳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그는 초기 에피소드에서 베트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트남은 거의 모든 문화적 요소 — 종교, 정부, 음식 — 가 역사 속에서 외세의 영향을 받은 교차로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들의 단순한 합 이상으로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곳입니다. 요리에 있어 어떤 거리낌도 없고, 강력한 내면의 정체성으로 끝없는 환대를 보여줍니다. 세상에 이런 곳은 또 없습니다.”

A rare footage of an interview with Anthony Bourdain in which he explained his connection with Vietnam. Video via YouTube user myviewz.

보데인은 이후 여러 차례 베트남을 다시 방문했고, 2013년부터 CNN에서 진행한 두 번째 시리즈 Parts Unknown에서도 여러 에피소드를 베트남에서 촬영했습니다. 이 방문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2016년, 보데인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전설적인 분짜(bún chả) 한 그릇을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베트남을 자주 소개할수록, 팬들은 베트남을 방문해 그의 열정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우리가 피시소스를 넣고 요리한다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습니다 — 사실 저는 요즘 베트남 음식 관련 글을 많이 쓰게 된 것도 어느 정도 보데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분보후에(bún bò Huế) 한 그릇을 먹으러 비행기표를 사고 싶게 만든 것 이상의 역할을 했습니다. 보데인의 진지하고 표현력 넘치는 열정은 우리가 타문화를 더 깊고 세밀하게 경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뿌리와 다시 연결되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는 베트남 쌀국수에 대해 “이런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라면 초강대국이죠, 제 기준에서는요”라고 했고, 냄새에 대해서는 “오토바이 매연, 피시소스, 향, 멀리서 나는 무언가의 냄새 — 저게 숯불에 굽는 돼지고기인가요?”라고 묘사했으며, 오토바이에 대해서는 “신비롭고, 스릴 넘치며, 아름다운 안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이런 묘사는 제가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모든 베트남계 미국인을 대표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보데인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정말 사랑 받는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 고국을 떠난 세대에게는 그 나라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젊은 1세대에게도 말을 걸어준 사람이었습니다.

Parts Unknown의 베트남 편이 방영되었을 때, 우리는 신이 나서 그 영상 클립을 공유하고 나눴습니다. 심지어 베트남에 대한 기억이 더 복잡하고 아픈 큰아버지, 큰어머니와 같은 어르신들조차 떠나온 고향에 대한 커지는 관심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처음 음식 관련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분들은 “보데인 같은 작가가 되길 바란다!”며 축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베트남계 미국인 친구들과 가족들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보데인이 자신들의 음식과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적었습니다.

보데인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특히 미디어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2017년 Roads & Kingdoms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와 저녁 식사를 했던 후 하노이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며 ‘분짜 아저씨! 분짜 아저씨!(Mr. Bún Chả! Mr. Bún Chả!)’ 하고 말하면서 울었어요. 눈물을 터뜨리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하려 했어요. 미국 대통령이 쌀국수도 아니고, 스프링롤도 아니고, 멋진 퓨전 레스토랑도 아닌, 바로 그들 동네에 있는 이 식당에서 분짜를 먹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요. 병맥주로 하노이 맥주를 마시며 그들의 음식, 그들만의 것을 먹었다는 사실에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놀라워했어요.”

많은 소수 민족 집단들이 보데인 덕에 연대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식 작가 마이클 트위티(Michael Twitty)는 트위터에 “보데인은 아프리카를 문명의 요람이라 불렀고, 아이티(Haiti)에 카메라를 비추며, 스눕(Snoop)과 함께 빈민가를 기렸고, 오바마와 함께 식사를 나눴다”고 썼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구스타보 아레야노(Gustavo Arellano)는 보데인을 “주목받지 못한 라틴 사람들의 영원한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Parts Unknown의 휴스턴 편은 다시 한 번 고국을 떠난 베트남 사람들을 찾아 멕시코만 연안에서 우리가 자랄 때 먹던 베트남-케이준식 가재 요리를 조명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이민자 및 소수 민족 음식 문화를 다루는데 있어 보데인의 접근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가 보여준 존중과 공감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이국적인’ 요리를 발견하려 하지 않았고, 대신 사람들과 음식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보데인이 어디를 여행할지 알려주었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 이상을 했습니다. 그는 여행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지혜를 남겼습니다. 여행은 항상 화려하지 않으며, 가장 깊은 우정은 플라스틱 의자에서 나누는 값싼 한 끼 식사에서 태어날 수 있고, 평생 기억에 남는 장소는 종종 한 번도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곳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을 발견하라고,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라고 영감을 주었습니다 — 주저함 없이 말입니다.

댄 큐. 다오(Dan Q. Dao) 는 뉴욕에 사는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음식과 여행에 관한 글을 씁니다.

[Top photo by David Scott Holloway via Travel + Lei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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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Dan Q Dao.) 음식 문화 Mon, 09 Jun 2025 10:00:00 +0700
푸른 잎 속 어린 시절 단오의 추억을 감싸 안은 ‘반우쩌(Bánh Ú Tro)’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71-bánh-ú-tro-wraps-the-childhood-joy-of-tết-đoan-ngọ-within-its-green-leaves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71-bánh-ú-tro-wraps-the-childhood-joy-of-tết-đoan-ngọ-within-its-green-leaves

축제가 있는 곳엔 언제나 전통 음식이 함께합니다. 설날에는 반쯩(bánh chưng)과 반뗏(bánh tét), 추석에는 월병과 반삐아(bánh pía)가 식탁에 오릅니다. 단오절인 ‘뗏 도안 응오’(Tết Đoan Ng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날에는 반바짱(bánh bá trạng)과 반우쩌(bánh ú tro)를 먹으며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합니다.

뗏 도안 응오(Tết Đoan Ngọ)란?

뗏 도안 응오는 음력 5월 5일로, 한 해의 음력으로 한 해의 중간 지점을 뜻합니다. 이 명절은 베트남뿐 아니라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등 여러 동아시아 국가에서 기념합니다. 지역마다 풍습은 다르지만, 대부분 재앙을 막고 건강과 풍년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베트남에서 뗏 도안 응오는 고대 농경 사회의 일상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전문가 Trần Ngọc Thêm는 『베트남 문화 정체성 되찾기』(Tìm về bản sắc văn hóa Việt Nam)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베트남은 북회귀선에 걸쳐 있어 여름이 덥고 불쾌하여 건강에 해롭습니다.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매일같이 날씨를 세밀히 관찰해, 해는 줄이고 이로움은 최대한 활용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습관이 뗏 도안 응오 풍습을 낳았습니다.”

Bánh ú tro as part of an altar offering plate for Tết Đoan Ngọ.

일부에서는 이를 ‘해충 퇴치 명절’(Tết diệt sâu bọ)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음력 5월은 찌는 듯한 더위에 우기가 함께 오는 시기라 벌레가 번식하기 쉽고 우리의 면역력도 약해집니다. 해충을 박멸하고자 5월 5일 정오에는 조상에게 제물을 올리며 풍년, 건강, 평안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릅니다. 약초를 채집하거나 잎 우린 물에 목욕하기, 어린아이 몸에 라임수 찍어 벌레를 쫓는 등 여러 풍습도 함께 이어집니다.

베트남 각 지역의 풍습과 산물에 따라 제에 올리는 음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Phan Kế Bính, Vũ Bằng, Nhất Thanh 같은 작가들의 글에서도 이러한 다양성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북부 지방은 붉은 수박을, 중부의 타잉호아(Thanh Hóa)부터 후에(Huế)까지는 오리고기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꽝(Quảng) 지역 사람들은 찹쌀밥, chè(쩨), 반우쩌(bánh ú tro)를 올립니다. 남부는 ‘쩨쩌이느억’(chè trôi nước)과 쏘이걱(xôi gấc)을 빠지지 않고 올립니다. 남중부, 남부, 그리고 북부 일부 지역에서는 반우쩌와 반져(bánh gio)를 먹습니다. 후에에서는 ‘쩨께(chè kê)’와 구운 라이스페이퍼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음식 가운데 반우쩌는 베트남 어디서나 등장하는 별미입니다.

제사상 위의 반우쩌

반우쩌는 찹쌀로 밥을 지어 녹색 잎에 감싸서 만듭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제 크기는 아이 주먹만 합니다. 먼저 찹쌀을 24시간 동안 잿물에 담가 불립니다. 잿물은 약한 알칼리성을 띠며, 쌀 전분을 부분적으로 분해해 찌고 나면 젤리처럼 투명하게 변해 쌀알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 덕분에 다른 떡보다 소화가 잘된다고 여겨집니다. 한입 베어 물면 재의 맛이 희미하게 느껴지면서도 산뜻한 느낌이 납니다.

Bánh ú tro (bánh gio) is eaten with molasses in Northern Vietnam.

지역마다 반우쩌의 모양, 맛, 먹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북부에서는 반져(bánh gio), 반낭(bánh nẳng), 반엄(bánh âm)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속이 없고, 주로 당밀과 함께 먹어 ‘반져먿 (bánh gio mật)’이라고 불립니다. 길거리 좌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끈적하고 달콤하면서도 재의 향이 감도는 맛이 매력적입니다.

모양은 피라미드형, 네모형, 바나나 모양의 원통형 등 만드는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반져를 접시에 놓고 당밀을 살짝 끼얹어 내면, 먹을 때 대나무 끈으로 잘라서 먹습니다. 달콤하고 상큼하며, 당밀의 광택이 도는 반져는 천천히 음미해야 그 품위 있는 맛이 오래 입안에 남습니다.

Bánh ú tro can be pyramids, squares, or even cylinders.

중부 지방에서는 보통 피라미드 모양의 반우쪄를 10개 묶음으로 판매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모양이 산의 안정감을 상징한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이 떡이 오행의 조화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불이 땅을 만들듯, 재가 외피를 형성해 가운데 쌀을 감싸고, 쌀은 대지의 영양을 받아 자라기 때문입니다. 중부 사람들은 속이 있는 반우(bánh ú)와 없는 반우를 모두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겉껍질의 쫄깃함을 더 좋아합니다. 당밀이나 굵은 설탕에 찍어 먹으면 특히 인기가 많습니다.

남부에서는 ‘반우라째’(bánh ú lá tre)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양은 피라미드지만 속은 훨씬 다양합니다. 전통적인 녹두 앙금 외에도 두리안, 코코넛, 절인 코코넛, 절인 동과 등 들어가 이미 충분히 달아서 더 무언가를 찍어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잎을 벗겨 그냥 하나씩 꺼내 먹기만 하면 됩니다.

반우쩌 만들기

반우쩌는 보기 보다 만드는 데 많은 품이 듭니다. 음력 4월 말부터 준비를 시작하고, 반우를 만드는 제과점들은 단오 전후 성수기에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Bánh ú lá tre.

베트남 전역에는 반우쩌로 유명한 마을이 많습니다. 박장(Bắc Giang)성 딘방(Đình Bảng), 하노이 화이득(Hoài Đức)현 닥서(Đắc Sở), 빈푹(Vĩnh Phúc)성 떠이딘(Tây Đình), 빈딘(Bình Định)성 푸옌(Phú Yên), 꽝남(Quảng Nam)성 호안미(Hoán Mỹ), 타인화(Thanh Hóa)성 옌랑(Yên Lãng), 그리고 사이공에도 반우로 유명한 동네가 있습니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몇 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무, 잎, 과일 껍질 등을 모아 건조시켜 태우고, 그 재를 고운 가루로 체에 거릅니다. 사용하는 식물은 지역마다 다른데, 북부에서는 가시비름, 멀구슬나무, 포멜로 껍질, 바나나 껍질 등을, 후에의 타인 띠엔 마을은 벽돌 가마의 재를, 꽝남은 ‘메(mè) 나무’ 재를 선호합니다. 이 재에서 나오는 기름기가 겉에 층을 만들어서 식감이 좋아진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가정에서는 부엌에서 나온 짚과 숯의 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How to wrap a bánh ú.

이 재에 절인 라임과 물을 섞어 며칠간 두고 가라 안칩니다. 위에 뜬 알칼리성 물만 떠서 요리에 사용하는데, 이 물의 농도가 반우의 맛과 식감을 좌우합니다. 너무 진하면 떫고 쓴 맛이 나고, 너무 약하면 떡이 질기고 거칠어집니다. 찹쌀은 물에 불면서 회색, 갈색, 짚색 등 다양한 색으로 변합니다. 딱 좋은 상태로 찹쌀이 투명해지면, 꺼내서 여러 번 헹궈 남은 재를 제거합니다.

잎은 대나무, 동(dong), 바나나, 돗(đót)에서 나온 잎을 사용합니다. 깨끗이 씻어서 끓는 물에 데치거나 햇볕에 말려 유연하게 만든 후, 몇 겹으로 깔아 깔때기 모양을 만들어 쌀을 넣습니다. 이때 속 재료도 함께 넣습니다. 잎을 꼭 눌러 묶고, 풀이나 잔디줄로 묶어 10개씩 다발을 만듭니다. 4~6시간 삶은 뒤 찬물에 담가 익는 것을 멈추고, 대나무 막대에 걸어 물기를 말립니다.

단오의 달콤한 추억

다른 큰 명절들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뗏 도안 응오는 가족과 안부를 나누고 함께 반우쩌를 먹으며 마음을 나누기 좋은 날입니다.

“The simple joy of Tết is just seeing the block of dough appear like sparkling amber. The rice grains have completely mushed together, soft and elastic to the touch.”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손에 들린 반우의 묵직함, 대나무잎 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조심스레 껍질을 벗기던 그 순간. 떡 안에서 반짝이는 호박빛 반죽이 드러나는 단순한 기쁨이 단오절의 전부였습니다. 쌀알이 모두 흩어지고 하나가 되어 부드럽고 탄력이 있었고, 겉껍질은 쫀득쫀득하며 재의 향이 은은하게 스며 있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고소하고 달콤한 녹두 소가 딱 어울렸습니다. 만약 그 해 어머니가 두리안 반우를 준비해 주셨다면, 특별한 향기까지 더해졌을 것입니다. 채식용 반우도 좋습니다. 일반 설탕, 알갱이 설탕, 당밀에 찍어 먹으면 더욱 맛있습니다.

단오절이 돌아올 때마다 저는 반우쩌의 맛이 그리워집니다. 그 풍미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작은 떡 하나가 감싸고 있는 모든 것 — 잎의 향, 우리의 풍습, 그리고 세대를 잇는 가족의 정 — 그것들이 제 마음속 추억을 더욱 단단히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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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Thu Hà. Graphics by Ngàn Mai.) 음식 문화 Sat, 31 May 2025 18:00:00 +0700
반미짜르아(Bánh Mì Chả Lụa)로 완성되는 가족여행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56-반미짜르아-bánh-mì-chả-lụa-로-완성되는-가족여행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56-반미짜르아-bánh-mì-chả-lụa-로-완성되는-가족여행

우리 대가족이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모습은 휴가라기보다는 대규모 피난처럼 보였습니다. 가방들은 아슬아슬하게 쌓이고, 팔에는 짐이 가득했으며, 재앙에서도 살아남을 만큼의 먹거리가 있었습니다.

뗏(Tết, 설) 전날처럼, 아이들은 아직 잠에서 덜 깨어있고 어른들은 바쁘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모든 가방이 빈틈없이 실리고, 모든 좌석이 채워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숨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가족 모두가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여행이 시작됐다."

첫 번째 볼레로(Bolero) 곡이 채 2절까지 나오기도 전에, 우리 가족의 총사령관인 어머니는 벌써 좌석 아래로 손을 뻗어 어머니가 늘 챙기는 여행 키트를 꺼내십니다. 비닐봉지, 두통약 몇 알, 생수 한 상자, 약용 오일 한 병.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른 새벽부터 정성스럽게 싼 반미짜르아(bánh mì chả lụa)가 들어 있습니다. 배가 고프든 아니든, 앞자리든 뒷자리든 모두가 각각 깔끔하게 종이에 쌓인 걸 하나씩 받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먹어, 기운 차려야지,” 늘 어른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렸을 땐, 왜 여행마다 반미짜르아를 챙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게 새로운 걸 먹는 거 아니었나요? 붕따우(Vũng Tàu)에서는 해산물, 달랏(Đà Lạt)에서는 고지에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지, 동네 골목 끝에서 매일 살 수 있는 것을 또 먹다니요?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그게 바로 이유였습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기 전에, 익숙한 맛으로 속을 든든하게 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행길이 길든 짧든, 반미짜르아의 한 입은 “정말 떠나는구나”라는 마음속 확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반미짜르아는 반미 중에 간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콜드컷 버전처럼 인기 있는 것도 아니고, Anthony Bourdain 이 반해서 세 개나 먹었다던 디푸엉(Dì Phượng)의 반미 가쎄(bánh mì gà xé)처럼 감탄을 자아낸 적도 없습니다.

저는 반미짜르아의 단순함이야말로 최고의 여행 친구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몇 조각의 짜(chả, 돼지고기 햄), 균일하게 썬 오이, 소금과 후추 한 꼬집이면, 제대로 된 집밥을 대신할 만큼의 탄수화물, 단백질, 식이섬유가 균형을 이룹니다. 물론 버터, 파테(pâté), 슈마이(xíu mại), 구운 돼지고기 등은 모두 너무나 좋은 속재료이지만, 좁고 흔들리는데다 햇볕에 달궈진 장거리 버스 안에서는 작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 쉬웠습니다. 반면 반미짜르아는 먹기 편하고, 바가지요금과 이용여부가 의심스러운 휴게소 화장실 복불복 게임에 대비한 보험 같은 존재였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길거리 음식 판매대를 지나며 마음속에 스며들던 익숙한 아쉬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손에 들린 반미짜르아는 흐물거리고 밋밋했죠.

“응, 먹고 있어요,” 어른들이 물으면 그렇게 중얼대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습니다. 빵은 제 무릎 위에서 축 처졌고, 제 얼굴도 꼭 그랬습니다. 그렇게 질질 끌며 먹다 보니, 마지막 한 입은 거의 동나이(Đồng Nai)에 도착했을 때쯤에야 겨우 입에 넣게 되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그렇게 평범하던 것이 이제는 그렇게도 닿기 힘든 것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아이들은 집을 떠나고, 형제자매는 멀어졌으며, 한때 북적였던 집은 조용해졌습니다. 가족의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휴가는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먼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게 정돈되고 살균된 비행기에는 집에서 만든 음식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새로운 리듬에 적응했죠. 공항에서 지나치게 비싼 쌀국수를 조용히 홀짝이며. 여전히 밋밋하지만, 이상하게 훨씬 더 비싼.

요즘은 혼자 여행을 다니며, 간단하고 편리한 주먹밥 몇 개로 허기를 달래곤 합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고, 버스가 출발하기 전 제 손에 따뜻한 반미짜르아를 쥐여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가장 신선한 바게트를 고르고, 짜(chả)를 해동하고, 오이를 정갈하게 썰어주는 정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방식으로요.

어쩌면 제가 그리운 것은 반미(bánh m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던 다정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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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Uyên Đỗ. Graphic by Dương Trương.) 음식 문화 Sat, 12 Apr 2025 16:00:00 +0700
베트남 지역색이 담긴 다양한 짜오(Cháo) 살펴보기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48-베트남-지역색이-담긴-다양한-짜오-cháo-살펴보기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48-베트남-지역색이-담긴-다양한-짜오-cháo-살펴보기

‘짜오(cháo)’는 영어로 Congee로 알려진 죽으로 베트남 요리에서 만드는 방법과 맛의 다각화로 매우 다양한 장르를 이룹니다. 판단(pandan)이나 팥을 넣은 소박한 형태부터, 내장죽, 닭죽, 메기죽처럼 더 풍성하고 복합적인 식사 형태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재료는 다르지만, 모두 영양가가 높고 지역별 요리색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짜오 한 그릇의 역사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선조들은 음식의 양을 늘리는 방법으로 짜오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소금 한 줌이나 앞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잭프룻, 논두렁 주변의 나물, 공심채, 바나나 꽃, 완두잎, 죽순과 같은 재료를 넣어 먹곤 했습니다. 『베트남인의 물질문명』(Văn minh vật chất của người Việt)의 기록에 따르면 “기근이 닥치면 베트남인들은 식사 횟수를 먼저 세 끼에서 두 끼로, 다시 하루 한 끼로 줄이고, 쌀밥 대신 짜오를 끓여 그 한끼는 먹으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쌀죽은 밥보다 훨씬 적은 양의 쌀(약 1/4)로 만들 수 있으며, 체내 흡수율이 높고 탈수를 효과적으로 막아줍니다. 하루 종일 들에서 일한 뒤, 이들은 물을 많이 탄 쌀죽을 마시며 속을 달래고 에너지를 보충하곤 했습니다.

베트남에 널리 퍼진 음양설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음과 양이 동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소우주’입니다. 이 둘 중 하나가 과하면 병이 찾아오게 됩니다. 짜오는 부드럽고 가볍고 기름기가 없는 음식으로, 쉽게 소화되며 다른 재료들과 조합하여 체내의 부족한 음 또는 양을 보충할 수 있는 식사로 여겨집니다. 베트남 침술협회 소속 Ngô Quang Hải 박사는 “만약 음이 과해서 병이 생겼다면, 양이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음의 질환인 감기에 걸렸다면, 생강이나 tía tô(띠아또, 베트남 향채)잎이 들어간 짜오처럼 양기가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반대로 양의 질환인 일사병에 걸렸다면, 파가 들어간 짜오처럼 음기가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Cháo is a dish that promotes the yin-yang balance.

베트남의 다양한 짜오 탐방

짜오는 간단한 음식이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대표 음식이 되기도 합니다. 북부에서 남부까지 지역 특산물과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된 수많은 종류의 짜오가 존재합니다. 북부 하이퐁(Hải Phòng)에는 ‘짜오 khoái(코아이)’가 있고, 박닌(Bắc Ninh)에서는 젓가락으로 먹는 독특한 ‘짜오 thái Đình Tổ(타이딘또)’가 있으며, 하장(Hà Giang)에 있는 흐몽(H’Mông)에서는 독성이 있는 뿌리 식물을 사용하여 만드는 ‘짜오 ấu tẩu(어우떠우)’를 즐겨 먹습니다. 물론 하노이의 걸쭉한 ‘짜오 sườn(스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북부에 방문해서 이 모든 별미를 직접 맛보지는 못했지만, 북부에 뿌리를 둔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이공의 ‘팜 반 하이(Phạm Văn Hai) 시장’의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짜오 sườn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1954년 이후 북부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쌀로 만드는 짜오와 달리, 짜오 sườn은 쌀가루로 만들어 점성이 있으며, 부드럽게 익은 갈비 연골 조각, 바삭한 샬롯, 잘게 썬 고수와 쪽파, 그리고 바삭한 꽈이(quẩy, 기름에 튀긴 밀가루 빵)와 함께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간식으로, 오후에 간식으로 한 그릇 먹으면 저녁을 거를 정도로 든든합니다.

Cháo sườn on chilly days.

중부 지역 응헤안(Nghệ An)에는 장어죽이 있으며, 땀끼(Tam Kỳ)는 닭죽으로 유명합니다. 빈딘(Bình Định)에서는 돼지 내장죽에 반쯩 호이(bánh hỏi, 얇은 면발)를 곁들이고, 꽝남(Quảng Nam)에서는 소 내장죽에 검은콩을 넣습니다. 또 ‘꿋 넨(củ nén)’이라는 마늘과 비슷한 향신채가 들어간 쌀죽은 “꽝 지역”의 필수 음식입니다. 지역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반쨩 메 누엉’(bánh tráng mè nướng, 깨를 뿌린 구운 쌀과자)를 곁들이는 점은 같습니다. 꽝남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짜오를 먹는 올바른 방법을 배웠습니다. 반쨩 누엉(bánh tráng nướng)을 손으로 잘라 그릇에 넣고, 죽에 잠깐 적셔 부드럽게 만들어 먹으면, 약간 쫄깃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Eel congee in Nghệ An.

사이공에 있는 쌀죽 노점상은 이상하리만큼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특별한 장식도 없고, 그저 커다란 양산 하나와 낮은 플라스틱 의자 몇 개뿐이지만, 모두가 입맛을 다시며 모여듭니다. 사이공 스타일의 기본 쌀죽은 보통 세 가지 요소 - 볶은 쌀, 튀긴 도이(dồi, 돼지선지소시지), 그리고 바닥에 깔린 숙주 - 로 구성됩니다. 볶은 쌀은 구수한 풍미를 더해주고, 생숙주는 뜨거운 죽에 살짝 데쳐지며 아삭한 식감을 유지합니다. 여기에 라임즙 한 방울과 잘게 썬 고추를 넣은 피시 소스를 곁들이는 것은 필수입니다. 이로써 짜오 롱(cháo long, 내장죽)은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이 모두 조화된 완성형 음식이 됩니다. 뜨거운 죽을 후루룩 마시고, 쫄깃한 내장을 한 입 베어 물며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됩니다.

A bowl of cháo lòng.

메콩 델타 지역으로 가면, 반드시 짜빈(Trà Vinh)의 명물 ‘짜오 ám(암)’을 만나게 됩니다. 이 요리의 이름은 며느리의 요리 실력을 평가하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결혼한 새색시가 시댁으로 간 첫날, 며느리로서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메기죽을 끓여야 했습니다. 그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에, 맛있는 짜오 ám을 잘 만드는 일은 며느리들에게 평생의 숙제와도 같습니다. 여기서 ‘ám’은 ‘ám ảnh’(악몽, 트라우마)의 줄임말입니다.

짜오 ám은 논에서 갓 잡은 메기를 사용하며, 육수를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구운 샬롯, 마른 오징어, 마른 새우를 추가합니다. 함께 나오는 채소 접시에는 바나나 꽃, 쑥갓, cải trời(까이쪄이) 같은 향채가 포함되며, 그중에서도 rau đắng(라우당, 쓴풀)과 숙주가 가장 일반적입니다. 쓴풀의 은은한 쓴맛은 쌀죽의 고소함, 메기의 단맛, 후추의 매운맛, 향신채의 향, 바삭한 샬롯의 풍미와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Cháo ám is Trà Vinh’s famous congee.

사이공 쩌런(Chợ Lớn) 지역의 화족 공동체 중 가장 큰 조주(Teochew)는 하카(Hakka), 광둥(Guangdong), 복건(Fujian)과 함께 주요 분파 중 하나입니다. 조주 문화에서 가장 독특한 음식 중 하나는 ‘껌 짜오(cơm cháo)’입니다. 이 요리는 흰밥 한 냄비와 뜨거운 쌀죽 냄비를 함께 내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공됩니다. 밥은 조림한 내장 조각, 절인 배추와 함께 먹습니다. 이 절인 배추는 베트남 사람들이 보통 잔치를 치루고 남은 돼지고기나 오리 구이등과 함께 조림할 때 사용하는 재료입니다. 절인 배추의 신맛은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릴 뿐 아니라 동물성 단백질의 느끼함도 잡아줍니다.

짜오 롱(cháo long)은 베트남 전역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지만, 조주식 짜오 롱은 그와는 조금 다른 사촌 격입니다. 육수와 쌀을 함께 푹 끓여 만든 하얀색 쌀죽에, 돼지 뼈, 마른 오징어, 짚버섯의 풍미가 어우러집니다. 심장, 신장, 창자, 간 등 돼지 내장은 따로 삶아지고, 간장과 붉은 식초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생강, 후추, 파가 쑥갖과 어우리진 향이 은은하게 배인 죽 위에는 피단과 함께 내장이 올려져 있어 각자의 취향대로 고기를 선택해 즐길 수 있는 “단백질 뷔페” 같은 느낌을 줍니다.

Cơm cháo Triều Châu.

짜오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삶을 천천히 음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 모릅니다. 쌀죽은 늘 김이 피어오를만큼 따뜻하게 나오는 음식이니, 성급하게 먹다간 입천장을 데이기 쉽습니다. 느긋하게 짜오의 모든 맛을 음미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날에, 가장 좋아하는 짜오 한 그릇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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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Thu Hà. Illustrations by Dương Trương.) 음식 문화 Tue, 25 Mar 2025 16:42:15 +0700
베트남 요리에서 ‘까깓쿱(Cá Cắt Khúc)’이 나만의 기준점이 된 이야기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35-베트남-요리에서-‘까깓쿱-cá-cắt-khúc-’이-나만의-기준점이-된-이야기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35-베트남-요리에서-‘까깓쿱-cá-cắt-khúc-’이-나만의-기준점이-된-이야기

13년 전, 크리스틴 하(Christine Ha)는 마스터셰프 US 시즌 3에 도전해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텍사스에 있는 대학원 학생이었던 크리스틴의 우승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리얼리티 TV사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데다 베트남 이민자의 딸인 크리스틴은 저명한 셰프들도 부러워할 만큼 뛰어난 미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요리에 관심을 키워가던 제게 크리스틴의 마스터셰프 도전 과정은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나이가 들고 직접 요리를 하면서 항상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녀의 오디션 요리였습니다.

크리스틴이 마스터셰프 오디션에서 선보인 요리는 까코또(cá kho tộ)라는 소박한 가정식으로 기름진 생선을 토기 냄비에 넣어 생선 소스와 간단한 향신료로 졸여 만들며 보통 흰쌀밥과 데친 채소와 함께 먹습니다. 까코또를 단순하지만 완벽한 균형을 갖춘 음식의 대표적인 예시로 이 요리를 서방에 소개하는 데 전혀 부끄럼이 없습니다. 짭짤하고 감칠맛이 풍부한 소스가 담백한 탄수화물과 섬유질이 풍부한 반찬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크리스틴의 까코또는 주재료인 메기부터 토기 냄비까지 모든 면에서 베트남을 상징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생선을 자르는 방식이야말로 이 요리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Christine Ha's original audition in 2012.

이 방식은 베트남어로 ‘까깓쿱(Cá Cắt Khúc)’이라 불리며, 영어로는 ‘생선 스테이크(fish steak)’라고 합니다. 이 방식으로 자르면 생선의 등뼈와 갈비뼈 일부가 남아 있는 마름모꼴 조각이 됩니다. 반면, 필레(fillet)는 생선 살을 등뼈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하는 세로 절단 방식입니다. 저는 서구 매체를 통해 요리를 배우면서, 서양에서는 뼈를 제거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마스터셰프에서도 참가자들이 연어 한 마리를 직접 손질해 깔끔한 필레 조각을 만들어야 하는 도전이 종종 등장합니다. Cá cắt khúc과 필레의 차이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제게는 아시아 요리 전통, 특히 베트남 요리가 서구 요리 관습과 얼마나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뼈와 껍질이 제거된 필레는 그릴에 굽거나 팬에 지지고, 튀기거나 오븐에 굽기에 적합합니다. 그래서 대구, 가자미, 농어, 홍돔 같은 북쪽 바다에서 자라는 살이 많고 기름기 적은 생선에 주로 사용됩니다. 반면, cá cắt khúc 방식은 베트남 요리가 얼마나 경제적이고 자원 절약적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생선의 뼈는 맛을 더 풍부하게 해주기 때문에, 생선 스테이크는 졸일 때 감칠맛을 극대화하고 생선이 퍽퍽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최적의 방식입니다. 크리스틴이 선택한 까롭(cá lóc、 가물치)부터 까이으어(cá dứa, 붕장어), 까로동(cá rô đồng, 등목어)까지 까코또(cá kho tộ)에 자주 사용되는 민물 생선들은 살이 부드럽고 몸집이 작아 필레로 만들 경우 모양이 망가지고 살이 부서질 위험이 큽니다.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시아 요리사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일 뿐 아니라, 까코또라는 요리 자체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베트남 가정에서 적은 단백질로 온 가족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음식입니다. 졸이는 과정에서 생선 기름이 소스에 스며들어 국물이 더욱 풍부해지고, 생선 소스나 간장의 높은 염분 덕분에 밥을 더 많이 먹게 되어 적은 양의 단백질로도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어린 시절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던 후로 저는 cá cắt khúc을 먹는 것이 두려워졌지만, cá kho tộ를 만들 때는 반드시 잘 썰어진 생선 조각을 사용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서양 요리에서도 생선 스테이크를 사용하지만, 주로 연어 같은 생선에 한정됩니다. 또한, 사이공의 슈퍼마켓에서도 이제는 바쁜 주부들을 위해 필레 생선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베트남 요리가 해외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틱톡에서조차 사람들이 집에서 반짠느엉(bánh tráng nướng)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첫번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에서 처음 본 크리스틴 하의 cá cắt khúc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토기 냄비 안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짭조름하고 감칠맛이 풍부한 생선 소스 카라멜에 덮인 그 모습은 마치 꿈속에서 본 것처럼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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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Khôi Phạm. Graphics by Ngọc Tạ.) 음식 문화 Wed, 26 Feb 2025 19:00:00 +0700
베트남이 'Mì Gói'(즉석 라면)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한 유통기한이 긴 역사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13-베트남이-mì-gói-즉석-라면-을-사랑하는-이유에-대한-유통기한이-긴-역사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13-베트남이-mì-gói-즉석-라면-을-사랑하는-이유에-대한-유통기한이-긴-역사

라면을 종교에 비유해도 될까요. 전 세계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져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에게 맞게 토착화되었죠. 무엇보다, 라면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 우리를 구원합니다.

이 기사는 2021년에 처음 게시되었습니다.

즉석 라면 한 그릇을 먹으며 제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사이공은 현재 3개월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 중이며, 가정에서는 식료품을 사러 외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설령 외출이 가능하더라도, 우리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거의 아무것도 없더라. 라면도 다 떨어졌어.”

시간을 조금 되돌려 팬데믹 상황이 사이공에서 점점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지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 봅시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많은 사람들은 저처럼 식료품점으로 달려가 다가올 불확실성에 대비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연결된 것처럼, 당시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라면 판매대에 몰려 있었습니다. 제한된 선택지를 보며 멍하게 서 있다가 가격 대비 다양성과 품질을 보고 빠르게 여러 봉지를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계산대 줄에서 모두가 라면을 쟁여두고 싶어 했습니다. 각각 Hảo Hảo, Omachi, Miliket 등의 봉지를 안고, 아니 누군가 라면봉지를 가져갈까 두려워하듯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다면, COVID-19 발병 이후 베트남에서 즉석 라면 소비가 급증한 것에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즉석 라면 협회(World Instant Noodles Association)의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 사람들은 2020년에 70억 봉지 이상의 라면을 소비했으며, 이는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67% 증가한 수치입니다.

유사한 현상은 중국, 한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에서도 나타났으며, 즉석 라면 산업은 종종 IT 회사나 자동차 제조업체를 제치고 주식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도 아시아 나라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은 이미 라면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맛있는 라면 한 그릇은 완벽한 한 끼 식사로 여겨집니다. 라면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홍합 라면, 달팽이 라면, 소고기 볶음 라면과 같은 "걸작"을 만들어냅니다. 라면은 서양 국가에도 존재하지만, 이렇게 존재감이 큰 요리로 대접받은 것은 아시아뿐입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라면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라면의 주요 재료는 전분, 지방, 그리고 글루탐산나트륨(MSG)으로, 인간의 식욕을 자극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합입니다. 종종 한 봉지로는 아쉬움을 느껴 한 봉지를 더 먹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죠.

아니면, 베트남 생활 방식에 깊이 뿌리 박힌 습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릴 적, 손바닥 크기의 알록달록한 라면 봉지는 누구나 좋아했던 간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봉지를 뜯어 입에 쏟아 넣고는 바삭거리는 생라면 씹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수업 중 책상 밑으로 라면 봉지를 주고받으며 어린 시절의 우정을 돈독히 하기도 했고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라면은 시험 공부로 밤을 새우거나 끝없이 이어지는 마감에 쫓길 때, 혹은 집에 가는 길을 잊도록 술 취한 밤에 우리의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편의점에서는 라면 선반과 뜨거운 물을 입구 근처에 전략적으로 배치해 두어서 바쁜 일상 속 허기진 속을 달래기에 딱 좋은 장소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라면이 기호품이 아닌 필수품이기 때문에 소비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라면을 먹는다는 것은 맛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삶의 긴박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베트남의 경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제대로 된 계약도 없는 일자리에서 낮고 불안정한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반면, 라면 여러 봉지가 들어 있는 한 팩의 평균 가격은 약 10만 VND(최저임금의 약 1/30)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 라면은 이상적인 영양 공급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입니다.

즉석 라면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8년 일본에서 발명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경제 회복 과정에 있었고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 면 요리가 인기였지만, 제조공장과 저장 시설 부족으로 대량 생산되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수요를 깨달은 기업가 안도 모모후쿠(Momofuku Ando)는 오래 저장할 수 있고 즉석에서 섭취할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Google Doodle for Momofuku Ando on his 105th birthday.

안도 모모후쿠(Momofuku Ando)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어느 날 이 지역을 지나가다가, 어둑한 라면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20~30미터나 되도록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봤습니다. 김이 피어오르는 가게 앞에서 사람들은 두꺼운 옷도 없이 추운 날씨에 떨고 있었습니다. [...] 그들의 얼굴은 라멘 한 그릇을 먹으며 밝아졌습니다.”

최초의 즉석 라면은 JPY 35(VND 7,200)에 판매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저렴한 영양 공급원을 제공하려는 안도의 열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잘 먹으면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입니다,”라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2021년으로 빠르게 넘어가 보면, 세상은 전쟁, 자연재해, 사회적 불평등으로 다시 한 번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빈곤과 식량 부족에 직면했습니다. 그 암울한 상황에서 라면은 안도가 바랐던 마법의 제품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생명선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의 쓰나미, 대만의 지진, 베트남 중부의 홍수에 즉석 라면은 항상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니 전 세계적인 팬데믹 속에서, 라면이 찬장 한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라면을 그릇에 넣고, 스프를 추가한 뒤, 뜨거운 물을 부어 5분만 기다리면 완벽한 식사가 완성됩니다. 쌀국수(phở)나 분보(bún bò)의 정교함과 맛에 비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경험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MSG의 풍부한 맛은 빈 속을 달래기에 충분한 위안이 됩니다.

즉석 라면은 단순히 기본적이고 편리한 식품 그 이상이며, 베트남 사람들과 아시아인들 전체가 공유하는 많은 공통 가치를 나타냅니다. 이는 전쟁 이후 기근에서 팬데믹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견디는 끈기를 상징합니다. 사이공의 phá lấu(파러우, 내장탕)나 한국의 부대찌개에서 볼 수 있듯이 흔한 재료에서 비롯된 요리 창의성을 대표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안전함, 가족, 그리고 집과 연결되는 느낌을 줍니다.

한국 사람이 신라면을 먹고, 인도네시아 사람이 인도미(Indomie)를 먹으며, 베트남 사람이 하오하오(Hảo Hảo)를 먹을 때, 우리는 각기 다른 맛을 즐기지만, 같은 따뜻함과 위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좋을 날에, 나쁠 날에, 그리고 그 수 많은 날에 마트의 라면 판매대를 찾는 보이지 않는 끈일지도 모릅니다.

Illustrations by Patty Yang and Phương Phan.
Graphics by Phan Nhi and Jessie T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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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Uyên Đỗ.) 음식 문화 Tue, 07 Jan 2025 11:00:00 +0700
사탕수수 주스에 구운 땅콩을 올린다면? 당신은 미토(Mỹ Tho) 사람입니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10-사탕수수-주스에-구운-땅콩을-올린다면-당신은-미토-mỹ-tho-사람입니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610-사탕수수-주스에-구운-땅콩을-올린다면-당신은-미토-mỹ-tho-사람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맛보며 그가 깊이 묻어두었던 그의 어린 시절로 소환됩니다. 이러한 비자발적 경험은 흔히 "프루스트 효과"라고 불리며, 후각과 미각을 통해 무작위로 되살아나는 기억의 조각들을 의미합니다. 다른 감각은 이런 효과를 내지 못하죠.

“따뜻한 차가 마들렌 조각과 섞여 내 입천장을 스치자마자 전율이 내 몸을 관통했고, 나는 멈춰 서서 내게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일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고립되고 분리된, 그 출처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는 섬세한 쾌감이 내 감각을 침범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저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자세하게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여섯 살 이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제 기억은 희미해서 마치 그 시절이 실제가 아닌 상상의 이야기는 아니었나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My childhood (left) was defined by my grandfather's backyard and a nước mía cart opposite of it.

그렇지만, 제 어린 시절에 대해 아주 잘 기억하고 또 친구들한테 알려줄 만큼 자신 있는 한 가지는 제 아버지의 고향인 띠엔장(Tiền Giang)에서 먹었는 땅콩을 올린 사탕수수 주스입니다. 저는 그 맛을 제 어린 시절의 그 어떤 것보다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탕수수는 오랫동안 베트남 설탕 산업의 주요 현금성 작물로, 버릴 것 하나 없이 활용할 수 있어 이윤을 남기기에 좋았습니다. 1870년대에 프랑스인들이 최초의 설탕 공장을 설립한 이후로, 현지에서 재배된 사탕수수는 원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띠엔장(Tiền Giang)에서 수세기 동안 사탕수수는 농부들의 든든한 동반자였습니다. 농산물로써만이 아니라, 사탕수수는 껍질을 벗겨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한 숨 돌릴 때 먹기 좋은 간식거리가 되었고, 주스를 짜고 남은 펄프는 연료나 종이 제조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탕수수 주스는 베트남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갈증 해소 음료입니다.

Sugarcane juice is a staple thirst quencher of Vietnamese.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의 제 기억엔 띠엔장(Tiền Giang)에서의 추억이 많습니다. 뒤뜰에서 울리는 매미 소리로 가득했던 여름, 매일 저녁마다 저를 두렵게 했던 연못 화장실, 할아버지의 매화나무 옆에서 서성거리던 수줍은 닭 떼들과 함께였던 시간들입니다. 물론, 그 기억은 미토(Mỹ Tho)의 사탕수수 주스와는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구운 땅콩을 올린 주스일 뿐인데도, 띠엔장(Tiền Giang)을 떠올릴 때마다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저에게 최고의 사탕수수 주스 한 잔은 반짝이는 노랗고 뿌연 플라스틱 컵에 담겨 있습니다. 맨 위에는 거품 층이 있는데, 이는 ‘느억미아(nước mía, 사탕수수 주스의 베트남어)’ 애호가들이 고품질 주스의 상징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미토(Mỹ Tho) 사탕수수 주스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구운 땅콩 한 줌을 위에 올려 주스에 식감을 더하는 것입니다.

A good glass of sugarcane juice must be as frothy as possible.

저는 이 별미를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다소 낯선 이 조합에 대한 친구들의 의구심을 잠재우기 위해 종종 버블티와 비교합니다. “펄이 들어간 밀크티 대신, 우리 미토(Mỹ Tho) 사람들은 구운 땅콩을 올린 사탕수수 주스를 마시는 거지.” 이 독특한 토핑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정보는 알기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실수로 갓 구운 땅콩 한 묶음을 근처에 있던 주스에 떨어뜨렸기 때문일지, 아니면 음료에 약간의 바삭함을 원했기 때문일지, 혹은 단순히 두 가지를 따로 먹는데 필요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저는 때로 궁금해집니다.

Mỹ Tho sugarcane juice often has roasted peanuts, jackfruit, and jelly as toppings.

어찌 되었든 이 음료는 미토(Mỹ Tho)의 상징이자, 주민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특히 더운 날씨에 지엥느억(Giếng Nước)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빠질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지엥느억(Giếng Nước)은 도시 중심에 위치한 대형 인공 저수지로, 이 땅의 건립부터 함께한 곳입니다. 본래 이는 미망황제(Emperor Minh Mạng)가 딘뜨엉(Định Tường, 당시 미토의 고향) 보호를 위해 명령하여 파낸 약 1km 길이의 해자였습니다. 하노이에 호수 근처의 아이스티가 있다면, 달랏(Đà Lạt)에는 호아빈(Hòa Bình) 극장에서의 뜨거운 두유가 있고, 미토(Mỹ Tho)에는 지엥느억(Giếng Nước)에서 지역 주민들이 더운 저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땅콩 사탕수수 주스가 있습니다.

The best sugarcane juice in Mỹ Tho can be found near Giếng Nước. Photo by Hồng Lê via Ấp Bắc.

제 어린 시절을 정의했던 미토(Mỹ Tho) 사탕수수 주스는 땅콩만 올린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딸기, 오렌지 또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버전도 있습니다. 한 잔의 미토(Mỹ Tho) 사탕수수 주스에는 사탕수수즙의 부드러운 단맛과 더불어 구운 땅콩의 향, 땅콩을 씹을 때의 고소함, 그리고 땅콩 껍질의 약간 떫은 맛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정의했던 미토(Mỹ Tho) 사탕수수 주스는 땅콩만 올린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딸기, 오렌지 또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버전도 있습니다. 한 잔의 미토(Mỹ Tho) 사탕수수 주스에는 사탕수수즙의 부드러운 단맛과 더불어 구운 땅콩의 향, 땅콩을 씹을 때의 고소함, 그리고 땅콩 껍질의 약간 떫은 맛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The only place in Saigon that I could find that features the closest taste to my hometown’s sugarcane juice.

여기 사이공에서 제가 발견한 미토(Mỹ Tho) 사탕수수 주스와 가장 가까운 버전은 7구 떤훙(Tân Hưng)의 레반르엉 388(388 Lê Văn Lương)에 있는 길거리 가판대입니다. 아마도 사이공 사람들의 과한 취향을 맞추기 위함인 듯 두리안, 수생밤 젤리, 잭프루트와 같은 다양한 토핑을 준비해두었는데 여기에 구운 땅콩도 있습니다.

사탕수수 주스의 상쾌한 단맛과 시원함, 그리고 그 독특한 땅콩의 고소함은 저를 띠엔장(Tiền Giang)의 여름날로 되돌려줍니다. 마치 차에 적신 마들렌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주인공을 그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의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것처럼요.

 

[Top image via ZNews]

Nước mía mix Mỹ Tho

388 Lê Văn Lương, Tân Hưng Ward, D7, HC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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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Phương Nghi. Photos by Ben Nguyễn.) 음식 문화 Tue, 31 Dec 2024 14:00:00 +0700
인도로부터 베트남의 가정집까지 팩 포장된 분말카레가 거쳐온 길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86-인도로부터-베트남의-가정집까지-팩-포장된-분말카레가-거쳐온-길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86-인도로부터-베트남의-가정집까지-팩-포장된-분말카레가-거쳐온-길

사이공에 있는 어느 집 주방이든 찬장 안에 다가올 주말 가족식사용으로 사둔 cà ri gà(까리가, 치킨 카레) 팩 포장된 즉석 카레분발이 한두 개씩은 있습니다.

Cà ri gà (까리가)도 길거리 음식 가판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는 있지만, bún bò (분보), cơm tấm(껌땀), bánh cuốn(반꾸온)과는 달리 cà ri gà(까리가)는 집에서 간단하게 먹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요리 재료는 가정마다 다르지만 항상 봉지카레분말이 필요합니다. 보통 절반은 양념된 닭고기가 들어있고, 나머지는 물, 우유 또는 코코넛 우유, 감자, 토란, 고구마, 당근으로 채웁니다. 카레는 종류가 많지만 cà ri gà(까리가)가 제일 흔하고 몇몇 지역에서는 국수나 반미랑 같이 먹기도 합니다.

이런 즉석 봉지카레분말은 전국의 소규모 식료품점이나 슈퍼마켓, 혹은 지역 시장의 향신료 판매업체에서 판매됩니다. 가장 쉽게 구입하는 방법은 판매자 에게 고기나 야채를 얼마나 넣을지 알려주고 나머지는 판매자가 알아서 팔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카레요리 자체가 가진 다양한 특성을 강조합니다.

‘Curry: Eating, Reading and Race’이라는 책을 통해 음식에 대한 기록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진정한 담론을 위트있게 비판한 Naben Ruthnum은 카레의 모호함과 다재다능한 특징을 잘 포착했습니다.

카레는 한가지로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카레가 먹을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카레를 정의하기 위한 범위만으로도 그 안정적인 존재를 빼앗기게 됩니다. 카레는 잎이고, 과정이고, 주연을 맡은 고기나 야채 외의 무엇인지 정확히 다 모르는 재료들을 일컫는 소스입니다. 기존의 밋밋한 음식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만 또 요리사, 인도사람들, 이민자들, 식민지 시대 사람들, 식사하는 사람들, 책 읽는 사람들, 글 쓰는 사람들이 나오는 인도 동화이기도 합니다.  

식민지 시대 카레의 발명

역사가 Lizzie Collingham은 ‘Curry: A Tale of Cooks and Conquerers’에서 인도에 영국 동인도 회사(EIC)가 설립되면서 카레가 발명되었다고 썼습니다. 동인도 회사 직원들 경험한 것들의 중심에는 burra khana라는 큰 잔치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고기 요리 사이에, 인도인들에게는 삶거나 구운 밋밋한 단백질 식사를 보완해주는 인도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영국 요리를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은 사정상 어려웠기 때문에, 현지식 요리를 빌려와야 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제공된 인도 요리는 다양하고 고유한 이름이 있지만 영국인은 모든 것을 "카레"라는 이름으로 묶었는데, 이는 포르투갈어 "carree"와 "caril"에서 영어화되어서 인도식 국물요리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일반화되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칸나다어와 말라얄람어 단어인 karil과 타밀어 단어인 kari에서 파생되었는데, 둘 다 향신료와 볶은(sautéed) 요리를 의미했습니다.

‘Our Burra Khana,’ one of 40 lithographs from Captain George Francklin Atkinson's 1860 satirical book on the lives of British colonists in India. Photo via The Internet Archive.

인도사람들은 동인도 회사 직원들의 취향에 맞게 요리를 변형해야 했습니다. Collingham이 예로든 한 가지는 Lucknavi quarama인데, 전통적인 레시피를 변형하고 고수, 생강, 후추를 첨가하여 Kormas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영국식 카레의 기본 재료 토대가 되었습니다.

Collingham은 영국인들이 어디를 가든 카레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 시기에 카레가 국제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부유한 동인도 회사 직원들은 인도에서 먹던 카레를 그대로 영국에서 먹고 싶었지만, 그들이 런던에서 먹은 카레는 그저 흉내만 낸 음식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요리책은 카레의 존재를 더욱 널리 알렸고, 인도에는 "인도 카레"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편리하게 준비할 수 있는 인도의 주식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더운 나라에서 그렇듯이, 인도 카레는 [식민지에서] 유럽인들의 식탁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요리입니다. 자극적인 양념으로 버무리고, 코코넛 밀크로 식히고, 강황이나 사프란으로 색을 입히고, 닭고기나 새우로 조리한 훌륭한 요리로, 눈부시게 하얀 베트남 찐밥과 함께 제공됩니다.

음식 역사가 Erica J. Peters의 저서 Appetities and Aspirations in Vietnam에 따르면, 카레는 마침내 La Réunion과 Pondicherry 내의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들을 통해서 프랑스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프랑스가 베트남에 식민지배를 시작할 무렵에 카레는 이미 프랑스 사람들에게 익숙했지만, 베트남과 중국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했습니다. 1814년에 발간된 Antoine Beauvilliers의 유명한 요리책 L'art du cuisinier에 보면 카레를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카레와 카레식 소스 레시피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 요리사 Auguste Escoffier 의 1907년 저서 A Guide to Modern Cookery에서는 카레 가루를 사용하는 레시피를 많이 제공합니다.

A Malabar chicken curry from Kerala. Photo via But First, Chai.

베트남에 살던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요리사가 중국인이었던 점을 제외하면, 자국에서 익숙했던 식단을 유지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행정관 Charles Lemire가 Cochinchine Francaise et royaume de Cambodge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안남[베트남]요리사도 있고, 따갈족, 심지어 인도인도 있지만, 중국인들은 요리사를 하려고 태어난 것 같습니다."

Peters 는 그녀의 책에서 실제로 카레를 먹는 것에 관해, 프랑스인들은 일반적으로 베트남식 흰쌀을 먹지 않았지만 카레와는 함께 먹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더운 나라에서 그렇듯이, 인도 카레는 [식민지에서] 유럽인들의 식탁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요리입니다. 자극적인 양념으로 버무리고, 코코넛 밀크로 식히고, 강황이나 사프란으로 색을 입히고, 닭고기나 새우로 조리한 훌륭한 요리로, 눈부시게 하얀 베트남 찐밥과 함께 제공됩니다.”라고 Peters가 번역한 글이 Lemire에 실려 있습니다.

베트남 중산층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의 남부 인도 이주민의 역할

프랑스 사람들이 베트남에 정착했을 때, Pondicherry와 Karikal에 있던 타밀족 인도 남부 사람들(당시 인도는 프랑스 식민지)이 무역업이나 일자리를 찾아서 같이 이주해와서 주로 사이공이나 Chợ Lớn(차이나타운), 메콩강 주변에 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상업 중심지로서 사이공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많은 정착민이 사이공으로 이주해 왔고, 양 대전 사이에는 약 2,000명의 인도인이 사이공에 살고 있었습니다. 

Rue Ohier (modern-day Tôn Thất Thiệp Street) used to be an Indian enclave. Photo via Flickr user manhhai.

베트남인과 인도인 이주자들 사이의 관계는 정치적 특권, 경제적 힘, 사회 질서에 대한 신념의 차이로 인해 적대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적대감이 많은 타밀족 인도인들이 베트남인과 중국인과 결혼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사이공 출신으로 벤탄(Bến Thành) 시장에서 향신료 가게를 운영하는 Lâm은 사이공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카레와 관련된 그의 가족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인도인이었던 그의 외할아버지는 십 대 때 베트남으로 이주하여 요리사로 일했고 나중에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카르다몸, 쿠민, 카레용 향신료 혼합물, bò kho, 라구와 같은 수입 향신료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습니다..

40대인 Lâm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업을 운영하는 3대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에 온 많은 인도인들은 대부분 요리사였습니다."고 Lâm은 베트남어로 말했습니다.

Vietnamese chicken curry is made with coconut milk and can be eaten with rice, bún, or bánh mì. Photo by Alberto Prieto.

바쁜 시장 내부의 소박한 구석에 자리 잡은 Lâm의 향신료 가게인 Cà Ri Anh Hai는 70년 이상 운영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자주 찾는 곳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대화를 시작하려고 할 때 요리사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카레 가루를 주문했습니다. 선반과 카운터에는 박물관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향신료와 혼합물이 담긴 병과 용기가 뷔페처럼 놓여 있습니다.

베트남인과 인도인 이주자들 사이의 관계는 정치적 특권, 경제적 힘, 사회 질서에 대한 신념의 차이로 인해 적대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적대감이 많은 타밀족 인도인들이 베트남인과 중국인과 결혼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Lâm의 친할아버지는 광둥 출신으로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Lâm에 따르면, 그의 가족의 부분적인 중국인 정체성은 Cà Ri Anh Hai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사이공에 온 많은 인도인들처럼, 그의 모계 가족 대부분은 1978년에 사이공을 떠나 프랑스로 갔지만, 그의 모친만은 예외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향신료 가게를 물려받았을 때, 그의 별명인 Anh Hai가 가게 이름의 유래가 되었고, Lâm의 아버지는 중국과 베트남 요리에서 가져온 풍미를 더 많이 실험하고 통합하여 더 많은 향신료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러분은 가게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ngũ vị hương(5가지 향신료)및 phở(퍼), bò kho(보코), bún bò(분보), 케밥이나 태국식 핫팟용 희귀 향식료 등을 판매하지만 카레분말이 여전히 이 가게의 주력 상품입니다. 

오늘날 많은 카레 가루 생산업체는 여전히 인도 이주민의 자녀들이 운영하거나 20세기 초 사이공의 인도 기업에서부터 발전되어 왔습니다. 슈퍼마켓과 지역 식료품점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인 Cà Ri Bà Tám은 또 다른 예입니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브랜드는 1940년대에 베트남의 인도 향신료 판매업체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Vianco가 된 Việt-Ấn은 1950년에 사이공으로 온 Hari라는 인도 이주민과 Châu Vĩnh Cơ라는 중국계 베트남 남성의 합작 사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카레분말은 여러 차례의 현지 향신료와의 통합을 통해 베트남적 풍미를 살렸다고 합니다. 

"원래의 인도 버전과 달리 [우리] 카레는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매콤함을 줄이고 좀 덜 자극적이 되었습니다.”고 웹사이트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Curry powder packets. Photo by Thi Nguyễn.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서 카레와 분말카레에 대한 수요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현대 베트남 중산층의 등장과 일치했습니다. 중산층은 1920년대까지 완전히 발전하지 못했지만, 세기의 전환기에 문학, 공적 담론, 인쇄 자본주의, 패션을 통해 근대화된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Reinvention of Distinction에서 Erica Peters는 외국 요리와 식품을 소비하는 것이 근대화 개념을 수용하는 주요 측면이라고 말합니다.

인도 향신료와 식재도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Natasha Pairaudeau는 당시 Franco-Tamil지에서 "인도인, 또는 구체적으로 타밀족에 대한 문화적 충성심이 공개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이공 최대의 백화점에 방금 들어온 최신 타밀 음악부터 베트남에서 열리는 타밀 공연단, 현지 인도 레스토랑, 카레 가루, 챠트니, 팜 토디 공급업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광고판에 나와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해두었습니다. 1930년대 초반 139 La Grandière (Lý Tự Trọng)에 있는 Au Comptoir Hindou에서는 이미 “Garouda curry powder”와 인도 증류주인 아라크를 팔고 있었습니다.

카레와 분말카레는 베트남의 공적인 일상에 뿐만 아니라 도시에 있는 베트남 가정 안에도 침투했습니다. 그 예로, 1931년에 출판된 Phụ Nữ Tân Văn의 단편 소설 속 한 문단에는 유럽화된 베트남 여성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식탁 가운데에는 cà ri chà(까리차, 인도식 카레)와 같은 음식, 중국식 지느러미 스프, 서양식 로티, 코코넛 밀크로 끓인 태국식 고기 요리가 Phú Quốc(푸꾸옥) 피시소스 종지들 사이로 놓여있습니다. 꽃병 옆으로는 두 종류의 와인이 있는데 하나는 Haut Sauterne이고 다른 하나는 Ngũ Gia Bì 입니다.

베트남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카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를 익명의 저자가 1889년에 쓴 요리책 Bổn Dạy Nấu Ăn Theo Phép Tây (안남 사람들을 위한 서양 요리)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이 요리책에는 kari créole, kari parisien, kari de crevettes, canard au kari의 4개의 카레 요리법이 들어 있습니다..

여성 독자용 인쇄물에 실린 thịt cua đinh xào lăn(양념 게살 볶음), bộ lòng cua đinh chưng(게 내복찜), vịt nướng(오리 구이), lòng vịt chưng(오리 오팔찜)를 포함한 다양한 요리법에도 분말카레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카레와 분말카레의 의미는 프랑스인들만이 즐기는 맛에서 벗어나 베트남 중산층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정에서 나라 전체로, 그리고 나라밖으로

최초의 베트남 요리책으로 여겨지는 Madame Lê Hữu Công's Sách nấu ăn theo phép An Nam (베트남식 요리책)에는 베트남 요리 레시피와 중국 요리 레시피, Chăm 요리 레시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David Marr 는 그의 책인 Vietnamese Tradition On Trial, 1920-1945에서 이 요리책을 "베트남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적 주장"의 예로 인용했습니다.

친숙한 요리법들 외에도, 이 책에는 cà ri lươn(늪장어 카레)와 cà ri ếch(개구리 카레)의 요리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요리법들은 "다양한 종류의 nem(춘권)"부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카레 가루가 한때 다른 문화와 관련된 상품이었지만 베트남어로 흡수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Công’s와 같은 요리책은 후에 프랑스 당국이 그 밑바탕에 깔린 민족주의적 메시지가 식민지 정권을 위협할 것을 두려워하여 금지되었습니다. 유사한 요리책들은 Phan Bội Châu, Đào Duy Anh, Trần Huy Liệu과 같은 혁명가들의 반식민지배에 관한 저술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카레의 이러한 뿌리 깊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인도 카레'(cà ri chà)와 베트남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먹는 카레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Phụ Nữ Tân Văn에서 제안한 인도카레 인도 카레(cà ri chà) 요리법에 따르면 인도 카레는 아예 다른 종류로 표현하면서 "인도 카레의 향신료와 재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풍미를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며 "카레를 먹는 인도인들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즉석] 카레 가루를 절대 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는 베트남 카레가 분말카레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A recipe for “Indian curry” in Phụ Nữ Tân Văn. Photo via National Library of Vietnam.

“베트남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처럼 카레를 먹을 수는 없습니다. 인도 카레는 걸쭉하고, 카레향이 나고, 진하고, 크리미하며 매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을 위해 레몬그라스를 넣고, 고구마나 타로를 추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먹는 카레는 [인도]에서 먹는 카레와는 완전히 다른 변형된 형태입니다.”고 벤탄시장에서 향신료를 취급하는 Lâm은 말합니다.

베트남에서 분말카레의 역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이제는 최대 2년까지 보관이 가능한 깔끔한 팩 형태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Lâm은 이렇게 포장된 분말카레는 편리한데다 수출에도 용이하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는…우리는 이 향신료 혼합물을 국내에서만 유통했거나 인도의 맛을 찾는 관광객이나 외국인들에게만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 앉아서 손님이 오기만 기다릴 수는 없게 됐어요. 우리가 손님을 찾으러 가야하죠."

분말카레는 이제 전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해외 중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으로 특히 많이 갑니다. Lâm은 오렌지 카운티, 텍사스, 애틀란타, 홍콩, 싱가포르의 베트남 사람들 거주지나 캄보디아에 있는 많은 베트남 요리사들에게로 카레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 베트남에서는 분말카레와 베트남식 카레가 계속 진화되고도 있습니다. 사이공이어와의 인터뷰에서 Lâm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분말카레가 더 맞지만, 가정에서 더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요리팁을 종종 전해준다고 했습니다.

“일례로 누군가가 고구마로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저는 [흰]감자를 넣고, 레몬그라스를 생강으로 바꿔서 만들면 카레향을 더 살릴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라고 하면서 레몬그라스의 강한 향이 분말카레의 향을 압도해 버릴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는 베트남에서 카레가 하나의 컨셉으로서, 요리로서, 문화적 범주로서 그들 자신의 땅에서 얼마나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카레는 그 탄생 과정 자체의 복잡성 위에 켜켜이 쌓인 의미에다 새로운 층을 더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흐름이 얽혀서 서로 동화되어 가는 것을 여정을 보여줍니다 .

이 글은 2019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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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Thi Nguyễn. Illustration by Hannah Hoàng.) 음식 문화 Fri, 01 Nov 2024 12:00:00 +0700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본 ‘벤쩨’ 코코넛 사탕의 역사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72-할머니의-이야기를-통해-본-‘벤쩨’-코코넛-사탕의-역사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72-할머니의-이야기를-통해-본-‘벤쩨’-코코넛-사탕의-역사

어렸을때 즐겨 먹었던 고향 간식은 오랫동안 찾지 못한 추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엄마가 보내주신 고향의 코코넛 사탕 병을 열자마자, 그 시절에 부엌에서 풍기던 익숙한 향기가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리움,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고 문득 느꼈습니다. 

저에게, 그리고 베트남의 코코넛이 가득한 도시에서 자라며 코코넛 나뭇잎 그늘 아래에서 성장한 많은 "어린이였던 이들"에게, 코코넛 사탕은 단순한 고향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한 공예 마을의 생명력이자 벤쩨성의 상징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소박한 간식은 여전히 똑같이 달콤하고 향기로우며, 쫀듯쫀듯한 맛에 만들어 한 번 맛보면 영원히 기억에 남습니다. 익숙하게만 느껴졌던 이 전통 공예를 깊이 탐구한 후, 저는 이것이 고향의 자부심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은 벤쩨의 상징입니다. 사진 출처: 단 찌(Dân Trí).

락 미에우 대교를 건너서 농장으로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은 최소 세기 전부터 베트남 역사 기록에 등장합니다. **《시암 왕국의 국로 여정 기록》(Xiêm La Quốc Lộ Trình Tập Lục)**에 따르면, 1810년(서기) 당시, 자롱 황제가 파견한 사절단이 방콕에 도착했으며, 사절단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왕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장례 예물로 광저우 비단 100 필, 통킹산 백색 직물 100 필, 밀랍 5 상자, 설탕 5 상자, 코코넛 사탕 10 상자, 설탕 결정 10 상자를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18~19세기부터 베트남에서 코코넛으로 만든 단맛의 간식이 존재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코코넛 사탕의 기원을 추적하려면, ‘벤쩨’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이곳은 "푸른 코코넛의 세 섬"이라는 별명을 가진 지역입니다. 메콩강의 네 개의 지류인 티엔강, 바라이강, 꼬찌엔강, 함루옹강에서 나오는 비옥한 퇴적물 덕분에 이 지역은 코코넛이 지역 수로를 통해 번성하고 퍼지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자생 나무는 이 지역의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았으며, 우리의 어린 시절을 향기롭게 했던 달콤한 사탕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코코넛은 메콩강 삼각주의 생활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사진 출처: VOV.

전해 내려오는 지역 이야기에 따르면,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은 벤쩨 지방의 별미로, 1930년경 Mỏ Cày 마을에 살던 Nguyễn Thị Ngọc라는 여성이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탕은 처음에 "kẹo Mỏ Cày" (Mỏ Cày 사탕)라고 불렸습니다. 이 끈적끈적한 단맛의 레시피는 지역 전역으로 퍼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민요와 시의 형태로 대중문화에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벤쩨 주민들은 아마 이런 멜로디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Bến Tre nước ngọt sông dài / 벤쩨는 달콤한 물과 긴 강이 흐르는 땅
Nơi chợ Mỏ Cày có kẹo nổi danh / Mỏ Cày 시장엔 유명한 사탕이 있고
Kẹo Mỏ Cày vừa thơm vừa béo / Mỏ Cày 사탕은 향기로우며 고소하고
Gái Mỏ Cày vừa khéo lại vừa ngoan. / Mỏ Cày의 아가씨들은 솜씨 좋고 얌전하네.”

1970년대경, Nguyễn Thị Vinh은 벤쩨 마을에서 최초의 코코넛 사탕 제조 시설인 Thanh Long을 설립했습니다. 처음에는 Thanh Long 회사가 지역에서 재배된 코코넛을 수집해 매우 간단한 방법과 기본적인 장비로 사탕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코코넛 사탕이 점점 더 유명해지고 수익성이 높아지자, Vinh은 증가하는 수요에 맞추어 기계를 도입하며 생산을 확장했습니다.

1989년, Nguyễn Thị Vinh은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호주로 이주하며 코코넛 사탕 생산을 남동생 Sáu Tảo에게 맡겼습니다. 그의 경영 덕분에 가족 브랜드는 벤쩨성에서 가장 유명한 코코넛 사탕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운영한 사업 모델은 메콩 델타 전역의 여러 다른 기업들이 따라 하게 되었고, 오늘날 코코넛 사탕 산업이 이르기까지의 발전에 중요한 청사진이 되었습니다.

벤쩨에서 최초로 설립된 현대식 코코넛 사탕 공장 중 하나를 보여주는 오래된 사진. 사진 출처: 벤쩨 코코넛 협회.

오랜 전통의 맛에서 신선한 새로운 맛으로

코코넛 사탕 공예는 약 100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이 고소한 간식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사탕은 벤쩨 주민들의 세대와 함께 자라온 것이죠. 그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은 서로 코코넛을 따고, 장작을 피고, 설탕을 준비하라고 상기시키곤 했습니다. 장작불로 돌리는 가마솥이 밤낮없이 불타올랐고, 엄마가 코코넛 사탕을 캐러멜화할 때마다 달콤한 코코넛 향이 공기 중에 가득 퍼지며 우리를 군침 돌게 만들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아이들은 코코넛 사탕을 넣어 종이로 포장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가장 빨리, 가장 잘 사탕을 포장하는지 경쟁하곤 했죠. 집에서 만든 코코넛 사탕의 기쁨은 단순한 설날 간식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족 문화이자, 그 당시 벤쩨 여성들의 솜씨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상징이었습니다.

동네 어머니들과 딸들은 모두 전통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YouTube 채널 Hương Vị Đồng Quê.

어머니는 저에게 코코넛 사탕을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코코넛을 고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코코넛이 충분히 마르고, 황금빛을 띠며, 속살이 두꺼워야 한다고 하셨죠. 이런 코코넛이 가장 진한 코코넛 밀크를 만들고, 쉽게 상하지 않는다고요. 엿기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살이 통통하고 고른 알갱이의 최상급 찹쌀을 고르셨습니다. 사탕의 맛을 내는 설탕으로는 갈색 설탕을 사용했는데, 이 색깔이 사탕이 완성될 때 특유의 황금빛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코코넛 사탕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작업은 사탕을 계속 저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설탕이 타지 않고 색이 고르게 나오려면 끊임없이 저어야 하기 때문이죠. 온도 조절 또한 매우 중요했습니다. 예전에는 장작불로 사탕을 만들었기 때문에 불 조절과 시간 에 대한 경험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코코넛 시럽이 걸쭉해지고 색이 변하게 되면, 뜨겁고 끈적거리는 기름을 바른 표면에 펼쳐 식은 후 쉽게 떼어낼 수 있습니다. 사탕이 식고 나면 마지막 작업은 작은 덩어리로 잘라 종이에 포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은 손으로 잘라 모양을 만듭니다. 사진 출처: Instagram 사용자 @va.o.ry.

제가 어릴 적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사탕 만들기의 전 과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큰 공장에서 코코넛 사탕을 만드는 과정을 배울 기회도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코코넛을 갈색으로 만드는 작업이나 저어주는 힘든 단계를 기계가 도와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두리안, 땅콩, 판단잎, 코코아, 딸기, 각(gấc) 등 다양한 버전의 코코넛 사탕도 있습니다. 이러한 맛의 다양성은 간식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벤쩨와 베트남의 음식 발전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맛의 코코넛 사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VnExpress.

코코넛 지역을 풍요롭게 하는 간식

할머니께서는 ‘벤쩨’산 코코넛 사탕(kẹo dừa)만이 오리지널이라고 믿으십니다. 이 사탕은 코코넛 열매의 가장 훌륭한 간식이자, 한 공예 마을의 창의성, 그리고 벤쩨 사람들의 섬세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코코넛 사탕은 천천히 먹어야만 그 진하고 고소한 코코넛 밀크가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메콩강 주민들은 손님이 방문하기 전에 웰컴 쟁반에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을 중요한 자리에 두곤 합니다. 차 주전자, 말린 코코넛, 그리고 작은 코코넛 사탕 접시가 남부 지방의 거실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풍경입니다. 코코넛 사탕을 씹으며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는 것은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전통적인 환영 의식입니다.

코코넛 사탕을 씹으며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은 우아한 여가의 일부입니다. 사진 출처: Instagram 사용자 @duythanhxk.

저는 코코넛 나뭇잎 그늘 아래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방식이 코코넛과 깊이 얽혀 있었습니다. 집의 지붕부터 기둥, 우리가 먹는 음식까지 코코넛이 빠지지 않았죠. 예전 설날에 어머니를 도와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을 만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해가 막 떠오를 때쯤 우리는 일어나 재료를 준비했어요. 어머니는 항상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사탕을 만들었는데, 적어도 거대한 팬 몇 개 분량은 만들었죠. 맛있는 사탕을 많이 만들어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머니와 함께 코코넛 사탕을 만들면서 공동체와의 유대감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전통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을 위한 새로운 포장 디자인 프로젝트, 팝아트를 활용한 디자인. 이미지 출처: Behance 사용자 Lê Hùng.

코코넛 나무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떠나 있다가 돌아올 때마다 고향이 많이 변한 것을 느낍니다. 가격은 떨어지고 해충은 늘어나면서, 많은 농장주들이 지역의 대표적인 작물을 유지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죠. 많은 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수익 작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코넛에 대한 이야기가 항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만이 아니라, 수많은 걱정도 함께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쩨 사람들은 코코넛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음식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코코넛 농장 투어가 성장함에 따라, 이 전통적인 간식은 벤쩨의 대표적인 미식 아이콘이 되었으며, 이곳을 방문하는 누구라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로 가져가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코코넛 사탕은 장인 정신이 담긴 제품이 어떻게 문화적 가치를 심어주면서도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입니다. 이는 이러한 제품을 만든 사람들의 생계를 개선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이 코코넛 농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메콩 델타 전역에서 코코넛 나무에 계속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은 벤쩨의 상징입니다. 사진 출처: Xuân Hương Hồ.

우뚝 솟은 코코넛 나무와 그 풍성한 열매, 메콩 델타의 부지런한 농부들, 그리고 제과 장인들의 기술 — 모든 요소가 코코넛 사탕(kẹo dừa)을 소박한 시골 간식에서 지역의 별미로 끌어올렸습니다. 제게 코코넛 사탕은 이제 단순한 어린 시절 간식이 아닙니다. 이 사탕은 고향의 맛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의 의미를 담은 새로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며, 그 애정은 내 피 속에 흐르고,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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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Thảo Nguyên. Top graphic by Trường Dĩ.) 음식 문화 Thu, 26 Sep 2024 11:00:00 +0700
베트남의 최신 유행, 리치 티 영상으로 신분을 드러내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65-베트남의-최신-유행,-리치-티-영상으로-신분을-드러내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65-베트남의-최신-유행,-리치-티-영상으로-신분을-드러내다

리치 티는 사이공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 노점부터 수제 카페까지 평균 2만~5만 동(VND) 정도로,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타이 꽁(Thái Công) 카페에서는 이 과일 티를 상당히 비싼 메뉴에 올려 약 16만 동(VND)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료는 카페에서 여전히 매우 인기가 많으며, 심지어 틱톡에서 Z세대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습니다. 이 인기를 끈 이유는 다름 아닌 '영상' 때문입니다.

타이 꽁(Thái Công) 카페는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으로, 디자이너 가구들로 꾸며져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베트남 사람들의 평균 연봉보다 더 비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5억 동(VND)에 달하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여행 가방도 있습니다. 창립자인 타이 꽁 본인은 베트남계 독일인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그의 화려한 제품들과 독특한 라이브 방송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브랜드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제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의 소셜 미디어에는 고가의 물품들, 해외 여행,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숙성 육류인 1억 동(VND)에 달하는 이베리코 햄까지 등장합니다.

The ritzy interior of Thái Công Cafe.

타이 꽁(Thái Công) 카페는 창립자의 화려한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메뉴에는 일반적인 카페 음료들이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조금 더 고급화된 클래식 음료, 칵테일, 그리고 물론 사이공 사람들의 월급보다 훨씬 비싼 샴페인 병도 있습니다. 심지어 간단한 코카콜라도 11만 동(VND)에 달합니다.

타이 꽁(Thái Công)이 자신의 음료 가격에 대해 내세우는 이유는 음료를 만드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재료 때문이 아니라, 음료를 담는 그릇 때문입니다. 심지어 고객이 그 그릇을 가져갈 수도 없는데 말이죠. 예를 들어, 타이 꽁 리치 티가 그렇게 비싼 이유는 그 음료를 담는 잔이 약 700만 동(VND), 즉 미화 280달러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타이 꽁(Thái Công) 카페의 리치 티는 핑크 플라밍고 차, 리치, 그리고 시트러스 시럽으로 만들어집니다.

음료 자체는 TWG 핑크 플라밍고 차, 리치, 시트러스 시럽으로 구성된 혼합물입니다. 제 입맛에는 시트러스 시럽이 차와 리치의 향을 압도할 만큼 지나치게 달았습니다. 얼음이 녹아서 단맛이 약해지기를 기다렸더니, 음료는 히비스커스의 아주 희미한 맛만 남고 리치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수백만 동짜리 잔은 다른 용기와 비교해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고, 단지 무게가 좀 더 무거운 정도였습니다.

이 평범한 음료가 이토록 큰 관심을 끈 주된 이유는 바로 틱토커 팜 산(@pham_san1)의 영상 덕분이었습니다. 그녀는 타이 꽁 카페의 리치 티를 리뷰하며 무표정하게 말합니다. “오늘은 타이 꽁 카페를 리뷰하겠습니다. 이건 리치 티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항상 리치 티를 시킵니다. 오늘은 여기서 리치 티를 마셔보겠습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뒤, “저는 여기 리치 티가 마음에 안 드네요.”라고 말합니다. 이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 후 플랫폼에서 삭제되었습니다.

타이 꽁 본인도 패러디 영상에 동참하여, “마음에 안 든다”를 “마음에 든다”로 바꿔 말하며 이 밈을 플랫폼 내에서 더욱 확고히 자리 잡게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패러디로는 틱토커 치 리(Chị Ly)가 장난스럽게 무표정으로 리뷰하는 영상이 있으며, 이 트렌드의 인지도를 더욱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최근 제가 카페를 방문했을 때, 가격이 약간 내려갔고 메뉴에 음식과 음료 옵션도 더 추가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카페는 이제 인플루언서나 항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Z세대들로 붐비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고급 패션으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카페에 들어와 유명한 트라 바이(리치 티)를 주문한 후, 그것과 함께 사진을 여러 장 찍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휴대폰을 응시한 채, 16만 동짜리 음료의 얼음이 녹아가는 동안에도 계속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타이 꽁과 관련된 모든 것이 항상 이런 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리치 티" 영상이 하나의 신분 과시 행위가 된 것 같습니다.

틱톡커 vs. 인테리어 디자이너

카페를 방문했을 때 겪었던 몇 가지 이상한 경험도 꼭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페에는 도어맨이 있는데, 이는 주로 고급 아파트나 호텔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점이 독특했습니다. 화장실을 물어보면, 직원이 바에서 불과 5미터 떨어진 문까지 당신과 함께 걸어가는데, 그 문은 벽처럼 위장되어 있어 찾기 어렵습니다. 화장실 내부는 금빛 수도꼭지, 금빛 손잡이, 그리고 이상하게도 변기 바로 위에 위치한 금빛 거울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화려한 금빛 장식들과 버킨백이나 롤렉스를 두른 손님들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경험은 마치 신흥 부자의 삶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카페를 떠나면서 타이 꽁 카페에서의 경험은 음식이나 음료보다는 부와 신분을 과시하는 기이한 구경거리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영상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카페를 방문하게 했지만, 이제는 진정한 매력은 부를 과시하고 트렌드를 따라가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저렴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과 창의적인 카페들로 가득한 이 도시에서, 타이 꽁 카페는 맛보다는 이미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보다 그걸 담는 그릇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이 카페의 모습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16만 동(VND)을 주고 음료를 사는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길거리 노점에서 스퀴시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리치 티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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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Camille Lay. Top graphic by Mai Khanh.) 음식 문화 Wed, 11 Sep 2024 11:00:00 +0700
사이공에서 가장 유명한 ‘구아랑메(Cua Rang Me)’는 새콤달콤한 타마린드 파티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55-사이공에서-가장-유명한-‘구아랑메-cua-rang-me-’는-새콤달콤한-타마린드-파티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55-사이공에서-가장-유명한-‘구아랑메-cua-rang-me-’는-새콤달콤한-타마린드-파티

이것은 타마린드로 시작해 게로 끝나는 요리입니다.

사이공 중심부의 인도를 걷다 보면, 자그마한 깃털 모양의 잎들이 무성한 두꺼운 나무 그늘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마치 스테고사우루스(초식 공룡)의 꼬리에 난 뾰족한 가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타마린드 나무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이지만,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 계획적으로 도로를 도입하면서 이 도시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햇빛을 피하고 싶어했던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그늘이 필요했으며, 타마린드 나무는 뿌리가 콘크리트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햇빛을 차단하는 데 매우 적합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떨어진 타마린드 열매를 주워가기도 하고, 거리의 노점상들이 가끔 타마린드를 신선한 상태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타마린드는 생으로 먹거나 간단한 요리에 쓰이지만, 땅콩이나 당근처럼 다양한 요리에 널리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마린드는 '타마린드 주스'나 가끔 나오는 디핑 소스 외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타마린드를 중심으로 한 요리를 가능한 많이 찾아보았고, 그 과정에서 '투이 94 꾸(Thúy 94 Cũ )'라는 식당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투이 94 꾸'는 오랜 시간 동안 인기를 끌어왔고, 최근에는 베트남판 미쉐린 가이드에도 소개되었습니다. 사이공이어는 2016년에 이곳을 오랜 기간 연재해온 ‘골목 맛집’ 시리즈에서 리뷰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통한 게살이 듬뿍 들어간 '게 볶음 당면'으로 이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요리도 훌륭하지만, 저희는 이곳에서 타마린드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구아랑메'를 맛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투이 씨는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이 직접 개발한 이 요리의 비법을 설명했습니다. 경쟁 가게들이 소스에 전분이나 조미료를 추가하는 것과 달리, 그녀는 여러 공급처에서 공수한 큰 타마린드의 씨를 제거하고 끓여낸다고 합니다. 그 소스 자체만으로는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타마린드의 강렬한 맛이 응축되어 있지만, 부드러운 갑각류의 살과 함께 먹으면 은은하면서도 깊은 맛이 납니다. 

'구아랑메'와 같은 소스를 사용한 새우 요리 '톰랑메' 역시 이 식당이 왜 이토록 인기가 많은지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요리입니다. 이 타마린드가 듬뿍 들어간 요리는 타마린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여러 요리들 뒤에 숨겨진 역사적 시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Thúy 94 Cũ

02839101062

84 Đinh Tiên Hoàng, Đa Kao Ward, D1, HC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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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Paul Christiansen. Photos by Saigoneer. ) 음식 문화 Wed, 28 Aug 2024 12:00:00 +0700
롱안의 매혹적인 뒷마당에서 쌀로 만든 증류식 술의 여행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33-롱안의-매혹적인-뒷마당에서-쌀로-만든-증류식-술의-여행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33-롱안의-매혹적인-뒷마당에서-쌀로-만든-증류식-술의-여행

고속도로가 모래와 자갈로 바뀌는 모습은 롱안으로 가는 길에서 역사가 신화와 전설로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이공에서 불과 27킬로미터 떨어진 이 지방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집니다. 18년 된 스카치, 잭프루트가 든 럼, 일곱 가지 비터스와 브랜디에 담근 유기농 체리로 만든 칵테일과 집에서 만든 쌀술이 든 플라스틱 물병의 차이와 같습니다. 후자가 우리가 롱안으로 가는 이유였죠. 쌀술의 역사에 대한 사이공이어의 2부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정보, 인터뷰 및 일화를 수집하러 가는 길이였습니다.

구글 지도는 우리 여행에 끔찍한 가이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답변이 없는 이메일, 무시된 페이스북 메시지, 수년 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은 웹사이트들로 인해 우리는 거의 눈을 감고 가는 셈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재도 전통적인 술을 만드는 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명의 사진가와 번역가로 일하는 한 명의 작가로 구성된 우리 팀은 길가에 쌀술을 판매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플라스틱 휘발유 통을 보기 전까지는 긴장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기자라고 주장하는 우리 세 사람에게 흥미를 느꼈을 것입니다. 또는 자신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에 누군가가 관심을 보인 것에 놀랐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단순히 우리의 방문을 반겼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가게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나이가 많이 든 여성들은 우리를 집 안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작업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쌀술 생산의 기본은 간단합니다. 쌀을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은 후, 효모와 다양한 재료가 포함된 발효제를 뿌린 층으로 3일 동안 놓아둡니다. 마지막으로 큰 플라스틱 통에 담아 2주 동안 보관한 후 증류를 합니다. 이 과정은 최종 제품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것은 쌀의 품질에 달려 있습니다. 소규모 쌀술 사업에서는 평판이 성공을 좌우합니다. 따라서 유해한 화학 물질을 섞지 않는 것 외에도 올바른 종류의 쌀을 적절한 효모 시작 물질과 전문가 수준으로 조합해야 합니다. 위 사진 속의 판 티 킴 응우옌은 세대에 걸친 지식이 레시피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좋은 쌀술 제조자는 고객의 요구에 맞게 배치를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구매자가 어떤 과일이나 약초, 향신료 또는 동물에 담글 것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 알코올 도수가 80%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제품은 약 40% 정도입니다.

롱안은 확연히 시골 지역입니다. 진흙이 묻은 농업 및 건설 장비, 불꽃이 튀는 오토바이 수리 작업, 그리고 다목적 건축 상점들이 고속도로 옆 상점가를 따라 작은 도심을 채우고 있으며, 이곳은 습한 시장으로 이어집니다. 상업 지역 뒤에는 주택과 학교가 위치하고 있으며, 곧바로 넓은 들판이 펼쳐집니다. 

맥주를 요청하면 주인이 옆 가게로 뛰어가서 몇 캔을 사오는, 겸손한 분위기의 작은 가게에서 간단한 쌀국수(phở)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그날의 마지막 쌀술 단서를 따라 나섰습니다.

롱안에서 그랩 운전사를 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이공에서 고객을 막 내려준 차를 운 좋게 잡아야 합니다. 결국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광둥어를 할 줄 아는 중국계 베트남인이었고, 덕분에 우리 싱가포르 사진가에게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최근 목재 사업에서 수십억 동을 잃었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승차 공유 제공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한적한 곳으로 데려다 주고 기다린 후 다시 사이공으로 데려가는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소와 물소가 다니는 논 사이에 자리 잡은 꽤 큰 시골풍의 집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아마도 쌀술 돈으로 지어진 집이었습니다. 화려한 웹사이트와는 달리, Rượu Đế Gò Đen은 아주 작은 규모의 작업장이었습니다.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우리를 집 대문에서 맞이하며 장비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안으로 초대했습니다.

작은 나무 연소 스토브에서 쌀술이 발효되어 직접 큰 시멘트 통에 모였습니다. 사이공에서 온 회사들은 가끔 제품을 수집하러 오는데, 갤런 단위가 아니라 사용된 쌀의 무게에 따라 지불되었습니다. 과정을 설명해준 여성은 그것이 남편의 회사라고 했지만, 남편과 싸우고 있어서 지금은 남편이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다시 돌아올 계획인지도 불확실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쌀술을 만들지 않는 시기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설날 이후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컬렉션에서 시음을 하게 했습니다. 여러 브랜드, 스타일 및 원래 액체가 담긴 재활용 병들 중에서 선택해, 우리는 악어 가죽처럼 부드러운 한 잔을 마셨고, 그 맛과 매력에 더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쌀술을 즐겨 마시는지 물었고, 그녀는 곧바로 "도마뱀이 꼬리를 다시 자라게 하는지" 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떠날 때, 우리는 그날의 첫 번째 목적지였던 75세의 민이라는 남자의 집 근처를 지나갔습니다. 구글은 그가 이 지역의 주요 쌀술 제조자 중 한 명이라고 안내했으며, 그는 그 주장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사이공의 멋을 체현하고 아내의 가족 레시피로 집에서 쌀술을 만들던 시절은 오래전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습니다.

경쟁 업체들이 위험한 메탄올을 혼합하여 술을 만드는 것과 값싼 맥주의 보급으로 인해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별다른 후회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집 앞의 눈에 띄는 루우 넵(찹쌀 술) 표지판을 내릴 것인지 불확실했습니다. 우리가 묻기도 전에, 그는 아내의 발 마사지를 하러 떠났습니다. 베트남의 많은 사람들처럼 쌀술은 더 이상 큰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 기사는 2019년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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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Paul Christiansen. Photos by Kevin Lee.) 음식 문화 Fri, 19 Jul 2024 10:00:00 +0700
부모님이 허락하는 간식, 마른 과일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03-부모님이-허락하는-간식,-마른-과일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03-부모님이-허락하는-간식,-마른-과일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허락한 바삭한 간식은 마른 과일이였습니다.

어느 아이들과 같이 저는 어린 시절에 건강하지 않은 간식을 좋아했으며, 특히 감자칩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소금 함량이 매우 높은 가공 간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주로 학교에서 사먹었기 때문에 아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대신, 부모님께서는 제가 과자를 덜 먹도록 유도하기 위해 마른과일을 사 주시는 방법을 생각해 내셨습니다.

 

과일의 수분은 전 세계에서 수천 년 동안 사용된 다양한 방법으로 제거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예 중 하나는 건포도로, 특히 Tết(베트남 설) 간식으로 여기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건조 과일에는 공기 건조와 동결 건조의 두 가지 일반적인 유형이 있습니다. 두 가지 유형 모두 과일의 단맛을 유지하지만, 식감은 다릅니다. 공기 건조 과일은 바삭한 반면, 동결 건조 과일은 부드럽고 쫄깃합니다. 다른 간식들과 비교해보자면, 공기 건조 과일은 감자칩처럼 바삭하면서도 사탕 같은 단맛이 나고, 동결 건조 과일은 천연 재료로 만든 젤리 사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기 건조 잭프루트, 망고, 바나나를 가장 좋아합니다. 원래도 이 과일들을 좋아하지만, 노르스름한 색감이 감자칩을 떠올리게 합니다. 건과일이 감자칩의 극도의 짠맛을 갖고 있지는 않아서 바삭한 과자에 대한 제 욕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건조 과일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건조과일은 여행 중에 그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차에 앉아 흘러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출출해질 수 있습니다. 리무진 버스나 대형 버스와 같은 다른 승객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자신의 일정에 맞춰 식사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되고,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소화에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건조 과일이 훨씬 더 안전한 간식 선택이 됩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우리 가족은 보통 여러 종류의 건조 과일을 가방에 담아 함께 나눠 먹습니다. 여행 중간에 휴게소에 도착하면 가게에서 새로운 현지 건조 과일을 사는 시간을 갖습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가방속에 건조 과일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지루함을 덜어줍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멋진 여행을 즐기고 나면, 종종 그 즐거운 여행을 기억하고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누기 위해 기념품을 가져오곤 합니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과일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지만, 운반이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다랏에서 산 신선한 딸기를 가져왔지만, 사이공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짓눌리고 썩어버린 것을 발견한 실망스러운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

건조과일은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보관이 쉽고 구매하기 편한 여행 기념품이 됩니다. 저희 가족은 주요 베트남 명절 이후에 친척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현지에서 산 건조 과일을 자주 선물로 받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2주 동안의 설날 연휴가 끝나고 수업이 다시 시작되면 현지 건조 과이 담긴 간식통을 몰래 가져와서 수업 시간에 조금씩 먹으며 명절 여행의 여운을 즐기곤 했습니다.

건조 과일은 부모님도 허락해 주시는 간식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행한 장소들의 맛있는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휴가 후에 여행에서의 소중한 순간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건조 과일과 함께 여행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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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Khang Nguyễn. Photos by Cao Nhân.) 음식 문화 Mon, 03 Jun 2024 10:00:00 +0700
원에서 동까지, 디지털 시대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Bánh Đồng Xu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498-원에서-동까지,-디지털-시대에-향수를-불러일으키는-bánh-đồng-xu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498-원에서-동까지,-디지털-시대에-향수를-불러일으키는-bánh-đồng-xu

한때 저는 끼니를 bánh đồng xu(베트남어로 동전빵)로 대신한 적이 있습니다.

Bánh đồng xu, 혹은 치즈동전빵은 밀가루, 우유, 계란, 설탕을 섞어 만든 페이스트리로, 안에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있습니다. 이 빵은 한국 동전을 모방한 디자인으로 동그란 형태로 구워집니다.

2023년 말에 베트남에 소개된 bánh đồng xu는 빠르게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습니다. 이마트에서는 동전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한국 방송사 JTBC의 보도에서 베트남에서의 bánh đồng xu 열풍이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저처럼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bánh đồng xu는 바삭한 버터 페이스트리와 끈적한 치즈가 어우러진 이상적인 디저트입니다. 요리하기 귀찮았던 어느 시기에는 거의 bánh đồng xu만 먹고 지내기도 했는데, 고급 베이커리부터 길거리 노점상까지 어디서든 샀습니다. 품질과 가격은 다양했지만, 디자인은 비슷했습니다.

Bánh đồng xu의 독특한 디자인은 한국의 10원 동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동전의 한 면에는 액면가와 발행 연도가 표시되어 있고, 다른 면에는bánh đồng xu가 처음 생겨난 2019년과 경주의 국보 석가탑이 그려져 있습니다. 경주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명소가 있는 수도였기 때문에, 이 빵은 관광객들의 사진에 등장하면서 한국의 다른 도시와 베트남 같은 이웃 나라로 명성을 퍼뜨렸습니다. 

한국 경주시에서 파는 동전빵. 사진 출처: The Korea Times.

아이러니하게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bánh đồng xu는 "정체성 위기"를 겪었습니다. 10원 디자인의 저작권을 보유한 한국은행은 통화 디자인을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규정에 위배되며, 위조와 통화 평가 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Bánh đồng xu를 판매하는 상점들은 처벌받지 않았지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디자인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은 한국은행의 10원입니다" 대신 "이것은 abc 가게의 xxx 빵입니다"로 변경했습니다. 

일본에 소개되었을 때, bánh đồng xu는 JPY10 동전을 모델로 했습니다. 자판기 문화가 발달한 일본은 여전히 동전을 많이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사진 출처: Sora News.

다른 나라의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좋아하는 간식의 운명에 대해 약간은 쓸쓸한 감정을 느낍니다. 저에게 동전은 필름 카메라나 비닐 레코드와 같습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정교한 장인정신에서 나오는 고유한 가치를 지닙니다. 인플레이션이 오르고 현금 없는 습관이 확산되면서 가장 작은 액면가의 동전들은 일상 생활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원본이 사라지면, bánh đồng xu는 디지털 시대에 물리적이고 장인적인 물건들의 매력을 상기시키는 향수의 상징이 됩니다.

베트남 버전 bánh đồng xu는 2011년 발행이 중단된 500동 동전을 모델로 했습니다. 사진 출처: Tuổi Trẻ.

최근에 한 한국 간식 체인이 베트남 현지화된 bánh đồng xu를 출시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사러 갔습니다.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동전빵보다 두 배 비쌌지만, 품질과 맛은 훨씬 좋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빵에서 500동 동전의 얼굴을 봤을 때 느꼈던 향수였습니다. 어린 시절 주머니에 잔돈을 넣고 다니던 기억, 주머니 속의 동전이 부딪히는 소리, 학교가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에 동전을 넣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언젠가 한국에서 전통적인 동전 모양 빵이 완전히 사라지면, 관광객들이 과거의 더 단순한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베트남을 찾게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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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Uyên Đỗ. Top image by Trương Dĩ.) 음식 문화 Mon, 20 May 2024 11:44:00 +0700
베트남 다낭, 2024년 미슐랭 가이드의 새로운 목적지로 선정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483-베트남-다낭,-2024년-미슐랭-가이드의-새로운-목적지로-선정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483-베트남-다낭,-2024년-미슐랭-가이드의-새로운-목적지로-선정

사이공과 하노이에 이어, 다낭이 미슐랭 가이드의 새로운 목적지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주 초에 발표된 언론 발표에서 프랑스 타이어 제조 회사는 2024년 에디션에 베트남 미슐랭 가이드가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식도락 검사관들이 다낭으로 향해 해산물 풍미를 즐겨볼 것입니다. 지난 해 베트남에 처음으로 등장한 미슐랭 가이드는 현지 음식 팬들로부터 미숙한 비전에 대한 의문을 제기받음에도 불구하고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미슐랭의 베트남 가이드에 대한 사이공이어의 코멘터리를 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에디션에서 하노이와 사이공에 각각의 세 개와 한 개의 레스토랑에 별을 한 개씩 수여했습니다. 매년 업데이트될 때마다, 미슐랭은 과거의 수상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성과를 내는지에 따라 별 등급을 제거하거나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낭이 미슐랭 가이드에 추가된 것은 베트남의 요리 장면의 활기와 품질, 그리고 지역 음식 문화의 풍부함과 진실성을 또 하나의 증거로 보여줍니다" 미슐랭 가이드 국제 디렉터 Gwendal Poullennec이 언론 발표에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검사관들은 현재 현장에서 작업 중이며, 지난 6월에 현지 미식가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음식 애호가와 여행객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자랑스러운 레스토랑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다낭은 Mì Quảng, Bún Chả Cá 또는 유명한 Bánh Xèo와 같은 지역 특산품의 품질과 다양성으로 검사관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지난해, 미슐랭은 베트남 가이드의 초판을 발표했으며, 사이공과 하노이의 103개 식당이 포함되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 대한 선택은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여졌지만, 길거리 음식 팬들은 phở 음식점이 매우 많은 것에 비해 사이공의 상징적인 요리인 bánh mì, hủ tiếu, chè 등의 대표성이 부족한 부분에 실망했습니다. 

2024년 버전은 올해 6월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반쎄오, 분맘넴, 분까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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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Saigoneer. Photos by Alberto Prieto.) 음식 문화 Mon, 15 Apr 2024 13:22:50 +0700
주문하신 음식이 곧 기차로 배송될 예정입니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01-주문하신-음식이-곧-기차로-배송될-예정입니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501-주문하신-음식이-곧-기차로-배송될-예정입니다

♫ 기찻길을 따라 음식이 배달되고 있습니다. ♫

작은 기차가 주문한 여러 가지 음식과 음료를 싣고 테이블을 지나갈 때마다 ‘It's small world’ 노래 가사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이 모형 기차는 19세기 북미에서 실제로 운행했던 증기 기관차를 모티브로 만든 기차로, 실제 기차보다는 짧은 거리를 달릴 수 있습니다.

전체 여정은 전 세계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와 인물로 둘러쌓여 있으며, 15미터 길이의 트랙을 따라 돌아갑니다. 여기에는 다채로운 색감의 성 페테르부르크 스타일 대성당, 일본의 민가와 미국 농가 그리고 이웃으로 이루워져 있습니다.

이 철도 테마의 기차 레스토랑은 7군 푸미흥 중심부에 위치한 비스트로 레스토랑 입니다. 주인 부부 Godin-Murphy와 Nguyễn Thị Thê는 2022년에 절반을 9개국의 유럽 나라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유럽의 광범위한 철도망을 타고 기차로 이동하였습니다.

“우리는 기차여행을 좋아해요.” Maxime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비행기보다 각 나라의 풍경을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여행할때 최고의 방법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희 사이공이어도 전적으로 동의하였습니다.

그들이 프라하에 도착햇을 때 흥미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기차 레스토랑이 있었어요.” 주인은 회상했습니다. “추천된 가족 활동이였기 때문에, 저희는 그곳에 가보고 싶었어요. 정말 즐거운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냈고 이것을 베트남으로 가져와야 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저희 개방형 비스트로 레스토랑은 철도 기념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빈티지한 기사로 덮인 테이블, 해안을 따라 지나가는 남북선의 스냅샷,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을 소소하게 전하는 기차 모양의 메뉴판: "인생은 기차와 같아요, 탑승하세요."

식당의 주요 관심사는 배달 방식이지만, 음식 또한 맛있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의 모티브는 사람들이 여행하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는 설명합니다. 부부는 10개 국가에서 요리를 골라 대표하는 메뉴로 만들었습니다. 한국 떡볶이와 독일 커리웨스트와 같은 길거리 음식을 주로 개발했습니다.

우리는 푸틴(poutine)과 분목(bún mộc) 을 주문했는데, 이는 부부의 고향인 퀘벡(Québec)과 김센(Kim Sơn)에서 온 음식이라서 특별했습니다. 소스가 많고 치즈가 풍부한 푸틴(poutine)과 따뜻하고 진한 분목(bún mộc)은 그들이 세계를 여행하더라도 항상 고향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상기시켜줍니다.

기차 레스토랑은 어린 아이를 둔 가족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사하는 동안 기차가 주변을 도는 것을 계속보면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미니어처 세계에 둘러싸여 감자 튀김을 먹고 컬러북에 색을 칠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계기가 됩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평범함에서 즐거움을 찾아보세요. 그것이 당신이 몰랐던 필요한 여행일지도 모릅니다.

The Train Restaurant

오픈시간: 매일 8:00AM-10:00PM

주소: 41 Nội khu Hưng Phước 1 Street, District 7, HC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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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Uyên Đỗ. Photo: Alberto Prieto.) 음식 문화 Fri, 11 Aug 2023 11:00:00 +0700
현지 디자이너가 졸업 프로젝트를 위해 한 길거리 음식을 모바일 게임으로 바꾸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347-현지-디자이너가-졸업-프로젝트를-위해-한-길거리-음식을-모바일-게임으로-바꾸다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347-현지-디자이너가-졸업-프로젝트를-위해-한-길거리-음식을-모바일-게임으로-바꾸다

맛있는 국수와 월남쌈을 곁들인 이 게임 프로젝트는 언제 다시 cơm tấm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르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Cooking Mama 또는 Diner Dash 같은 모바일 히트작들의 인기로 미루어 요리 모험은 많은 팬의 마음을 한결같이 훔쳐온 캐주얼 게임 장르다. 반면에 베트남 요리는 우리의 다양한 레퍼토리와 복잡한 맛으로 인해 세계 음식계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최근 공개된 높은 평가를 받은 그녀의 졸업 프로젝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Nguyễn Trần Như Hạ는 이 두 가지 관심 분야를 감질나는 가상의 게임 프로젝트로 결합했다.

메인 화면과 출시 포스터.

Hạ는 사이공 Van Lang 대학교 그래픽 디자인학과 학생이다. 그녀는 며칠 전 페이스북에 졸업과제 최종 결과물을 올려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그녀는 베트남 요리와 재료를 사용하지만 요리 대회라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미식가"와 "베트남"의 합성어인 'Gourviet’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개념화했다.

실제 게임 화면.

이 앱은 gỏi cuốn에서 사탕수수, 금귤 so đũa등과 같은 지역 농산물 bánh tráng trộn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의 베트남 요리에 대한 상세한 삽화를 제공한다. Gourviet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아오자이 차림의 주인공인 Bé Gạo의 역할을 맡게 된다. Bé Gạo는 기존의 NPC(Non-Playable Character)와의 전투를 통해 아마추어 요리사에서 요리 마스터로 성장한다. 여기에는 Cô Ba Sài Gòn과 악명 높은 Cô Mía와 같은 건방진 대중문화 인물이 포함된다.

주인공과 NPC.

cơm gà xối mỡ과 cơm tấm 사이의 전투. 누가 이길까?

Gourviet가 가상 게임이라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Như Hạ는 게임 제작을 통해 그녀가 게임 디자인을 목표로 열정을 가진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베트남 음식의 팬은 미래에 젊은 디자이너의 다른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기대할 수 있다. 그동안 그녀가 Gourviet를 위해 만든 시각적 자산을 아래에서 살펴보자.

학습할 수 있는 요리 샘플.

사랑스러운 게임 아이콘.

사이공의 지도.

주인공의 대체 의상.

게임 성적.

피클링과 발효는 더 좋은 성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지 재료 목록.

Như Hạ의 더 많은 프로젝트를 보고 싶다면, 여기 그녀의 Behance를 방문하자.

[사진 출처: Facebook. Như H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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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Saigoneer.) 음식 문화 Wed, 04 Aug 2021 19:40:39 +0700
푹롱(Phuc Long) 커피, 7월 캘리포니아에 첫 미국 지점 오픈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308-푹롱-phuc-long-커피,-7월에-캘리포니아에-첫-미국-지점-오픈 https://kr.saigoneer.com/eat-drink/음식-문화/13308-푹롱-phuc-long-커피,-7월에-캘리포니아에-첫-미국-지점-오픈

사이공 청년들의 필수 브랜드가 미국으로 야심찬 확장을 하게 되었다.

최근 푹롱 커피(Phúc Long Coffee and Tea)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푹롱 브랜드가 올해 7월 미국에 첫 매장을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카페는 캘리포니아 가든 그로브에 위치할 것이며 정확한 개장 날짜나 위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위치 선택은 전략적이었다. 2016년 기준으로 가든 그로브(Garden Grove) 거주 베트남계 미국인은 50,000명 이상으로, 이는 산호세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내 가장 많은 베트남계 미국인 인구 이다. Phúc Long의 메뉴는 베트남의 젊은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의 다양한 인구에 맞게 커피 경험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Phuc Long은 국제적인 도약을 한 최초의 베트남 카페 체인이 아니다. 2018년 하노이에 본사를 둔 빈티지 커피 체인인 Cộng Cà Phê는 서울에 첫 해외 매장을 오픈했으며 이후 한국 전역에 6개 매장과 말레이시아에 2개 매장으로 확장했다.

Phuc Long은 베트남 내에서 Cộng보다 지점이 많으며 2021년 6월 현재 사이공에 82개 지점과 기타 7개 지역 지점이 있다. 회사는 1968년에 Bao Loc에서 커피와 차 도매 공급 업체로 시작되었다. 패키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1980년대 사이공에 세 곳의 소매점을 열었으며 2012년 7군 크레센트 몰에 첫 번째 카페를 오픈하면서 공식적으로 커피숍 사업에 들어섰다.

2019년 1월, 커피 체인은 하노이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하여 Cau Giay 지역에 있는 IPH 빌딩에서 당시 베트남 내 43번째 지점을 열었다.

[상단사진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Phuc Long Coffee and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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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aigoneer.com (Saigoneer.) 음식 문화 Thu, 24 Jun 2021 20:13:15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