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이공이어 베트남어판(Sài·gòn·eer)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
저는 사이공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도시와의 관계가 그만큼 오래갈 수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전히 이 도시와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사이공의 정오는 뜨거운 태양이 가장 맹렬하게 내리쬐는 때임에도 동시에 나무들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는 분명 성가시지만, 적어도 먼지 자욱한 하루 끝에 거리가 깨끗이 씻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랩니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고, 도저히 외면할 수도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으로 미화하거나 옹호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 바로 만조 때마다 사이공 거리를 물에 잠기게 하는 그 짜증스러운 침수입니다.
저는 한때 사이공의 침수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노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기적인 침수가 삶의 일부이고, 한 해가 수위가 높은 계절과 낮은 계절로 나뉘는 메콩 삼각주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이공의 침수를 처음 제대로 겪은 날, 제 자신감은 금세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날 저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평소 다니던 길로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탁하고 검은 물이 거대한 웅덩이를 이루며 도로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보던 비옥한 충적토를 머금은 물과는 달리, 이곳의 물은 쓰레기와 오물이 뒤섞인 묽은 진흙탕이었습니다.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물을 헤치느라 기어가듯 느려졌습니다.
“오늘 만조 높으니까 조심해.” 그 순간, 불과 한 시간 전에 룸메이트가 보낸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지만, 만조란 강이나 바다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해 그 문자를 완전히 무시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물가까지도 약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은 어떻게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이 언제 빠질지 알 수 없었던 저는 무모하게도 속도를 높여 침수된 도로 한가운데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주변의 물에 잠긴 오토바이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매연과 하수도의 역겨운 악취가 뒤섞여 코를 찔렀습니다. 저는 숨을 참고 핸들을 꽉 쥔 채 도로 중앙분리대만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간혹 저를 지나치던 오토바이들이 점점 속도를 늦추다 완전히 멈춰 설 때면 운전자들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가운데, 저는 하늘에 제발 엔진이 이 끝없이 이어지는 물길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오토바이를 주차장에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종아리 아래까지 흠뻑 젖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높은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니, 지친 몸으로 물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작은 점들처럼 보였습니다. 거리 양쪽의 상점과 집들은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차량 호출 서비스 기사들은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가끔 트럭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가면 거대한 물결이 일어 벽과 차량을 덮쳤고, 근처 집에서 떠내려온 잔해와 플라스틱 의자까지 물속으로 휩쓸고 갔습니다.
그날 밤 이후로 침수는 우기에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물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이공의 일상을 단번에 멈춰 세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시동을 다시 걸어보려 해도 물 먹은 오토바이 엔진에서는 가래 끓는 듯한 기침 소리가 났고, 그 사이사이 회색 매연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만조 날에 맞춰 생활하고 대비하는 일은 주민들에게 몸에 밴 요령이었지만, 저는 서툰 초보자였습니다.
진흙탕 물에 가려진 커다란 도로 구덩이에 모르고 바퀴를 빠뜨릴 때마다 느꼈던 짜증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 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오토바이가 깊은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부모님을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다지 속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토바이가 멈춰 선 대학생도 동네 아저씨들이 마른 길까지 밀어준 덕분에 정비사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그리 난처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안의 물을 퍼내던 주민들 역시 양동이와 대야, 각종 통을 늘어놓은 채 온 가족이 웃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침수와 함께 산다는 것이 단순히 조위 예보를 확인하고, 침수를 피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길을 찾아내거나, 물에 잠긴 거리를 헤쳐 나갈 운전 실력을 갈고닦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이공이 물에 잠기는 날들을 싫어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날들 역시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곳 사람들이 제게, 또 서로에게 베풀어 온 친절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것 같습니다.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같은 물속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서로를 보살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