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에 있는 어느 집 주방이든 찬장 안에 다가올 주말 가족식사용으로 사둔 cà ri gà(까리가, 치킨 카레) 팩 포장된 즉석 카레분발이 한두 개씩은 있습니다.
Cà ri gà (까리가)도 길거리 음식 가판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는 있지만, bún bò (분보), cơm tấm(껌땀), bánh cuốn(반꾸온)과는 달리 cà ri gà(까리가)는 집에서 간단하게 먹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요리 재료는 가정마다 다르지만 항상 봉지카레분말이 필요합니다. 보통 절반은 양념된 닭고기가 들어있고, 나머지는 물, 우유 또는 코코넛 우유, 감자, 토란, 고구마, 당근으로 채웁니다. 카레는 종류가 많지만 cà ri gà(까리가)가 제일 흔하고 몇몇 지역에서는 국수나 반미랑 같이 먹기도 합니다.
이런 즉석 봉지카레분말은 전국의 소규모 식료품점이나 슈퍼마켓, 혹은 지역 시장의 향신료 판매업체에서 판매됩니다. 가장 쉽게 구입하는 방법은 판매자 에게 고기나 야채를 얼마나 넣을지 알려주고 나머지는 판매자가 알아서 팔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카레요리 자체가 가진 다양한 특성을 강조합니다.
‘Curry: Eating, Reading and Race’이라는 책을 통해 음식에 대한 기록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진정한 담론을 위트있게 비판한 Naben Ruthnum은 카레의 모호함과 다재다능한 특징을 잘 포착했습니다.
카레는 한가지로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카레가 먹을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카레를 정의하기 위한 범위만으로도 그 안정적인 존재를 빼앗기게 됩니다. 카레는 잎이고, 과정이고, 주연을 맡은 고기나 야채 외의 무엇인지 정확히 다 모르는 재료들을 일컫는 소스입니다. 기존의 밋밋한 음식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만 또 요리사, 인도사람들, 이민자들, 식민지 시대 사람들, 식사하는 사람들, 책 읽는 사람들, 글 쓰는 사람들이 나오는 인도 동화이기도 합니다.
식민지 시대 카레의 발명
역사가 Lizzie Collingham은 ‘Curry: A Tale of Cooks and Conquerers’에서 인도에 영국 동인도 회사(EIC)가 설립되면서 카레가 발명되었다고 썼습니다. 동인도 회사 직원들 경험한 것들의 중심에는 burra khana라는 큰 잔치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고기 요리 사이에, 인도인들에게는 삶거나 구운 밋밋한 단백질 식사를 보완해주는 인도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영국 요리를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은 사정상 어려웠기 때문에, 현지식 요리를 빌려와야 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제공된 인도 요리는 다양하고 고유한 이름이 있지만 영국인은 모든 것을 "카레"라는 이름으로 묶었는데, 이는 포르투갈어 "carree"와 "caril"에서 영어화되어서 인도식 국물요리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일반화되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칸나다어와 말라얄람어 단어인 karil과 타밀어 단어인 kari에서 파생되었는데, 둘 다 향신료와 볶은(sautéed) 요리를 의미했습니다.
인도사람들은 동인도 회사 직원들의 취향에 맞게 요리를 변형해야 했습니다. Collingham이 예로든 한 가지는 Lucknavi quarama인데, 전통적인 레시피를 변형하고 고수, 생강, 후추를 첨가하여 Kormas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영국식 카레의 기본 재료 토대가 되었습니다.
Collingham은 영국인들이 어디를 가든 카레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 시기에 카레가 국제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부유한 동인도 회사 직원들은 인도에서 먹던 카레를 그대로 영국에서 먹고 싶었지만, 그들이 런던에서 먹은 카레는 그저 흉내만 낸 음식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요리책은 카레의 존재를 더욱 널리 알렸고, 인도에는 "인도 카레"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편리하게 준비할 수 있는 인도의 주식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음식 역사가 Erica J. Peters의 저서 Appetities and Aspirations in Vietnam에 따르면, 카레는 마침내 La Réunion과 Pondicherry 내의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들을 통해서 프랑스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프랑스가 베트남에 식민지배를 시작할 무렵에 카레는 이미 프랑스 사람들에게 익숙했지만, 베트남과 중국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했습니다. 1814년에 발간된 Antoine Beauvilliers의 유명한 요리책 L'art du cuisinier에 보면 카레를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카레와 카레식 소스 레시피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 요리사 Auguste Escoffier 의 1907년 저서 A Guide to Modern Cookery에서는 카레 가루를 사용하는 레시피를 많이 제공합니다.
베트남에 살던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요리사가 중국인이었던 점을 제외하면, 자국에서 익숙했던 식단을 유지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행정관 Charles Lemire가 Cochinchine Francaise et royaume de Cambodge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안남[베트남]요리사도 있고, 따갈족, 심지어 인도인도 있지만, 중국인들은 요리사를 하려고 태어난 것 같습니다."
Peters 는 그녀의 책에서 실제로 카레를 먹는 것에 관해, 프랑스인들은 일반적으로 베트남식 흰쌀을 먹지 않았지만 카레와는 함께 먹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더운 나라에서 그렇듯이, 인도 카레는 [식민지에서] 유럽인들의 식탁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요리입니다. 자극적인 양념으로 버무리고, 코코넛 밀크로 식히고, 강황이나 사프란으로 색을 입히고, 닭고기나 새우로 조리한 훌륭한 요리로, 눈부시게 하얀 베트남 찐밥과 함께 제공됩니다.”라고 Peters가 번역한 글이 Lemire에 실려 있습니다.
베트남 중산층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의 남부 인도 이주민의 역할
프랑스 사람들이 베트남에 정착했을 때, Pondicherry와 Karikal에 있던 타밀족 인도 남부 사람들(당시 인도는 프랑스 식민지)이 무역업이나 일자리를 찾아서 같이 이주해와서 주로 사이공이나 Chợ Lớn(차이나타운), 메콩강 주변에 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상업 중심지로서 사이공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많은 정착민이 사이공으로 이주해 왔고, 양 대전 사이에는 약 2,000명의 인도인이 사이공에 살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인과 인도인 이주자들 사이의 관계는 정치적 특권, 경제적 힘, 사회 질서에 대한 신념의 차이로 인해 적대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적대감이 많은 타밀족 인도인들이 베트남인과 중국인과 결혼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사이공 출신으로 벤탄(Bến Thành) 시장에서 향신료 가게를 운영하는 Lâm은 사이공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카레와 관련된 그의 가족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인도인이었던 그의 외할아버지는 십 대 때 베트남으로 이주하여 요리사로 일했고 나중에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카르다몸, 쿠민, 카레용 향신료 혼합물, bò kho, 라구와 같은 수입 향신료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습니다..
40대인 Lâm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업을 운영하는 3대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에 온 많은 인도인들은 대부분 요리사였습니다."고 Lâm은 베트남어로 말했습니다.
바쁜 시장 내부의 소박한 구석에 자리 잡은 Lâm의 향신료 가게인 Cà Ri Anh Hai는 70년 이상 운영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자주 찾는 곳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대화를 시작하려고 할 때 요리사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카레 가루를 주문했습니다. 선반과 카운터에는 박물관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향신료와 혼합물이 담긴 병과 용기가 뷔페처럼 놓여 있습니다.
Lâm의 친할아버지는 광둥 출신으로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Lâm에 따르면, 그의 가족의 부분적인 중국인 정체성은 Cà Ri Anh Hai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사이공에 온 많은 인도인들처럼, 그의 모계 가족 대부분은 1978년에 사이공을 떠나 프랑스로 갔지만, 그의 모친만은 예외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향신료 가게를 물려받았을 때, 그의 별명인 Anh Hai가 가게 이름의 유래가 되었고, Lâm의 아버지는 중국과 베트남 요리에서 가져온 풍미를 더 많이 실험하고 통합하여 더 많은 향신료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러분은 가게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ngũ vị hương(5가지 향신료)및 phở(퍼), bò kho(보코), bún bò(분보), 케밥이나 태국식 핫팟용 희귀 향식료 등을 판매하지만 카레분말이 여전히 이 가게의 주력 상품입니다.
오늘날 많은 카레 가루 생산업체는 여전히 인도 이주민의 자녀들이 운영하거나 20세기 초 사이공의 인도 기업에서부터 발전되어 왔습니다. 슈퍼마켓과 지역 식료품점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인 Cà Ri Bà Tám은 또 다른 예입니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브랜드는 1940년대에 베트남의 인도 향신료 판매업체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Vianco가 된 Việt-Ấn은 1950년에 사이공으로 온 Hari라는 인도 이주민과 Châu Vĩnh Cơ라는 중국계 베트남 남성의 합작 사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카레분말은 여러 차례의 현지 향신료와의 통합을 통해 베트남적 풍미를 살렸다고 합니다.
"원래의 인도 버전과 달리 [우리] 카레는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매콤함을 줄이고 좀 덜 자극적이 되었습니다.”고 웹사이트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서 카레와 분말카레에 대한 수요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현대 베트남 중산층의 등장과 일치했습니다. 중산층은 1920년대까지 완전히 발전하지 못했지만, 세기의 전환기에 문학, 공적 담론, 인쇄 자본주의, 패션을 통해 근대화된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Reinvention of Distinction에서 Erica Peters는 외국 요리와 식품을 소비하는 것이 근대화 개념을 수용하는 주요 측면이라고 말합니다.
인도 향신료와 식재도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Natasha Pairaudeau는 당시 Franco-Tamil지에서 "인도인, 또는 구체적으로 타밀족에 대한 문화적 충성심이 공개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이공 최대의 백화점에 방금 들어온 최신 타밀 음악부터 베트남에서 열리는 타밀 공연단, 현지 인도 레스토랑, 카레 가루, 챠트니, 팜 토디 공급업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광고판에 나와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해두었습니다. 1930년대 초반 139 La Grandière (Lý Tự Trọng)에 있는 Au Comptoir Hindou에서는 이미 “Garouda curry powder”와 인도 증류주인 아라크를 팔고 있었습니다.
카레와 분말카레는 베트남의 공적인 일상에 뿐만 아니라 도시에 있는 베트남 가정 안에도 침투했습니다. 그 예로, 1931년에 출판된 Phụ Nữ Tân Văn의 단편 소설 속 한 문단에는 유럽화된 베트남 여성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식탁 가운데에는 cà ri chà(까리차, 인도식 카레)와 같은 음식, 중국식 지느러미 스프, 서양식 로티, 코코넛 밀크로 끓인 태국식 고기 요리가 Phú Quốc(푸꾸옥) 피시소스 종지들 사이로 놓여있습니다. 꽃병 옆으로는 두 종류의 와인이 있는데 하나는 Haut Sauterne이고 다른 하나는 Ngũ Gia Bì 입니다.
베트남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카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를 익명의 저자가 1889년에 쓴 요리책 Bổn Dạy Nấu Ăn Theo Phép Tây (안남 사람들을 위한 서양 요리)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이 요리책에는 kari créole, kari parisien, kari de crevettes, canard au kari의 4개의 카레 요리법이 들어 있습니다..
여성 독자용 인쇄물에 실린 thịt cua đinh xào lăn(양념 게살 볶음), bộ lòng cua đinh chưng(게 내복찜), vịt nướng(오리 구이), lòng vịt chưng(오리 오팔찜)를 포함한 다양한 요리법에도 분말카레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카레와 분말카레의 의미는 프랑스인들만이 즐기는 맛에서 벗어나 베트남 중산층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정에서 나라 전체로, 그리고 나라밖으로
최초의 베트남 요리책으로 여겨지는 Madame Lê Hữu Công's Sách nấu ăn theo phép An Nam (베트남식 요리책)에는 베트남 요리 레시피와 중국 요리 레시피, Chăm 요리 레시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David Marr 는 그의 책인 Vietnamese Tradition On Trial, 1920-1945에서 이 요리책을 "베트남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적 주장"의 예로 인용했습니다.
친숙한 요리법들 외에도, 이 책에는 cà ri lươn(늪장어 카레)와 cà ri ếch(개구리 카레)의 요리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요리법들은 "다양한 종류의 nem(춘권)"부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카레 가루가 한때 다른 문화와 관련된 상품이었지만 베트남어로 흡수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Công’s와 같은 요리책은 후에 프랑스 당국이 그 밑바탕에 깔린 민족주의적 메시지가 식민지 정권을 위협할 것을 두려워하여 금지되었습니다. 유사한 요리책들은 Phan Bội Châu, Đào Duy Anh, Trần Huy Liệu과 같은 혁명가들의 반식민지배에 관한 저술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카레의 이러한 뿌리 깊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인도 카레'(cà ri chà)와 베트남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먹는 카레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Phụ Nữ Tân Văn에서 제안한 인도카레 인도 카레(cà ri chà) 요리법에 따르면 인도 카레는 아예 다른 종류로 표현하면서 "인도 카레의 향신료와 재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풍미를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며 "카레를 먹는 인도인들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즉석] 카레 가루를 절대 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는 베트남 카레가 분말카레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처럼 카레를 먹을 수는 없습니다. 인도 카레는 걸쭉하고, 카레향이 나고, 진하고, 크리미하며 매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을 위해 레몬그라스를 넣고, 고구마나 타로를 추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먹는 카레는 [인도]에서 먹는 카레와는 완전히 다른 변형된 형태입니다.”고 벤탄시장에서 향신료를 취급하는 Lâm은 말합니다.
베트남에서 분말카레의 역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이제는 최대 2년까지 보관이 가능한 깔끔한 팩 형태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Lâm은 이렇게 포장된 분말카레는 편리한데다 수출에도 용이하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는…우리는 이 향신료 혼합물을 국내에서만 유통했거나 인도의 맛을 찾는 관광객이나 외국인들에게만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 앉아서 손님이 오기만 기다릴 수는 없게 됐어요. 우리가 손님을 찾으러 가야하죠."
분말카레는 이제 전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해외 중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으로 특히 많이 갑니다. Lâm은 오렌지 카운티, 텍사스, 애틀란타, 홍콩, 싱가포르의 베트남 사람들 거주지나 캄보디아에 있는 많은 베트남 요리사들에게로 카레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 베트남에서는 분말카레와 베트남식 카레가 계속 진화되고도 있습니다. 사이공이어와의 인터뷰에서 Lâm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분말카레가 더 맞지만, 가정에서 더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요리팁을 종종 전해준다고 했습니다.
“일례로 누군가가 고구마로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저는 [흰]감자를 넣고, 레몬그라스를 생강으로 바꿔서 만들면 카레향을 더 살릴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라고 하면서 레몬그라스의 강한 향이 분말카레의 향을 압도해 버릴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는 베트남에서 카레가 하나의 컨셉으로서, 요리로서, 문화적 범주로서 그들 자신의 땅에서 얼마나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카레는 그 탄생 과정 자체의 복잡성 위에 켜켜이 쌓인 의미에다 새로운 층을 더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흐름이 얽혀서 서로 동화되어 가는 것을 여정을 보여줍니다 .
이 글은 2019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