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1군의 고층 빌딩에서 강 건너를 보면 트 티엠(Thu Thiem) 신도시 지역이 보인다. 그곳에 있는 늪지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곳은 언젠가는 새로운 금융, 주거 및 상업 중심지가 되어 사이공의 인구 밀집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현재 이 지역은 부분적으로 완공된 고층 건물들과 도로 그리고 공사 후의 잔햇더미와 진흙이 뒤엉켜 있다. 지역에 따라 트 티엠 개발이 균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신도시를 향한 꿈은 아직 멀리 있는 듯하다.
트 티엠의 오랜 역사
사이공을 트 티엠 지역으로까지 확장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예일대의 인류학 및 동남아시아 연구 담당인 에릭 함스(Erik Harms) 부교수는 개발 계획이 10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 본인의 저서 Luxury and Rubble: Civility and Dispossession in the New Saigon에서 밝혔다.
함스는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계획된 지역은 푸미흥이며, 트 티엠은 사이공의 야심작이지만 문제가 많은 디자인이라고 한다.
“프랑스 문서를 보면 헤브라드(Hebrard)의 지휘 아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계획이 이미 1923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함스는 Saigoneer에 피력했다. 어니스트 헤브라드(Ernest Hebrard)는 1920년대 인도차이나 건축 및 도시 계획 책임자였으며, 사이공(호치민) 확장에 대한 그의 비전에는 트 티엠에 대한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으며, 1965년이 되어서야 베트남 정부는 그리스 아테네에 본부를 둔 유명한 도시 계획 회사인 Doxiadis Associates International Co.에게 도시 개발 5개년 계획을 부탁했다. 이 계획에는 트 티엠의 상세한 지도와 트 티엠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할지에 대한 계획이 들어있다.
그러나 트 티엠은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습지대로 남아있다. 1972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건축 회사인 Wuster, Bernardi & Emmons, Inc.에 트 티엠의 개발을 맡겼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구체적인 디자인을 발표했으며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잘 드러나 있다.
시내에서 강 건너를 바라보면 이 계획이 잘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함스에 의하면 트 티엠의 발전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은 지역 주민들이 이주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비록 지역이 다른 곳에 비교해 덜 발전했음에도 많은 주택, 사원, 교회 그리고 시장 공동체가 많이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주민은 집에서 떠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집필을 위해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트 티엠 지역을 방문했던 함스의 말이다. 그는 또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주민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궁극적인 계획에 대해 알고 있으며 무지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주 보상금에 대해 강한 불만족을 표시한다. “많은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는 수입에 비교하면 주민들이 받는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트 티엠을 방문했을 때 주민들이 지역 개발에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이 가까워 3년 전 이주한 뜨룽(Truong)은 30년 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여성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녀는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주 제안을 거절한 상태다.
“이사를 해야 한다면 다른 지역에 살 곳을 찾아야겠죠”, 뜨룽이 Saigoneer 기자에게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 공사장 인부 안쟝(An Giang)이 하던 게임을 멈추고 한마디 한다. “이 건물이 다 지어지고 나면 다음 건물 짓는 일을 할 것입니다”.
같은 복합건물에서 방을 세놓는 땀(Tam)은 더 넓은 공간에서 지내려고 빈탄 거리에서 트 티엠으로 옮겼다. 그녀는 철거된 집들의 목재를 사용해 팝콘을 튀겨 팔고 있다.
“이사를 해야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아봐야겠네요”, Tam 이 말했다. “주민 중에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떠난 후에 다시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기도 해요”.
강 건너에 있는 1군과 빈탄 거리의 고층 고급 건물들이 진흙투성이인 트 티엠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건설현장은 이주 노동자들로 북적인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같은 물웅덩이에서 목욕, 배변 및 세탁까지 해결해야 한다. 또한, 월요일 아침이 되면 새 학기를 시작한 아이들이 분주히 학교 갈 준비를 한다.
퇴거한 주민을 위해 제공되는 아파트는 멀리 있고 대부분 비어 있다.
함스가 지역에서 발견한 것을 보면 놀랍지 않다. “사람들은 퇴거할 경우 이전 장소와 동등하거나 더 나은 곳을 찾을 수 있는 정도의 보상을 해야 한다는 토지법에 있는 규정을 인용하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함스의 지적이다.
새로운 지역 개발의 가치가 현지 신문에 보도되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본인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는지를 확인하기 쉽다. “사람들은 신문에서 읽거나 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땅값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특정 지역의 땅이 1제곱미터당 1억 VND에 판매된 데 비해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몇 천VND 밖에 되지 않는다고 푸념합니다”고 함스는 말한다.
푸미흥: 롤모델
한편 트 티엠에서 10마일정도 남쪽에 위치한 7군의 푸미흥은 디자인과 효율성 측면에서 모범적이다. “현대적이면서 이상적입니다” 함스가 말한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지역을 방문하면 지역의 매력이 눈에 보인다. 특히 사이공 거리의 혼잡함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보일 것이다. 가로수가 늘어선 길에는 빌라, 아파트 그리고 쇼핑센터들이 있다. 거리에는 쓰레기도 적으며 녹지도 충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푸미흥은 1980년대 후반에야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완공되었다. 트 티엠 개발이 수십년에 걸친 계획과 국가 차원의 관심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진행 중인 것과 상반된다.
대만인 토지 탐사가 로렌스 팅(Lawrence S.Ting)은 푸미흥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1989년 늪지대뿐이던 푸미흥을 선택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는 강 건너에 있는 1군에서도 무언가 시도하려고 했지만 도시 계획가들은 자신들이 하려고 막았습니다”라고 함스는 지적한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푸미흥은 베트남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프로젝트가 되었고 트 티엠은 논란에 빠져 있습니다”.
함스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지역 주민을 이주시키는 것과 보상에 관한 문제라고 한다. “푸미흥에서 주민들의 이주는 1993년에 시작해서 1994년에 완료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토지 사용을 허용하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한 직후였다.
“당시 토지법이 생기고 부동산 시장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낮은 수준의 보상을 했고, 주민들은 큰 불만 없이 떠났습니다”라고 함스는 덧붙였다. “트 티엠에서는 제대로 된 보상이 2002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이때에는 이미 사람들이 지역 땅값을 알고 있었으며 쉽게 이주해줄 의사도 적었다. “그들은 1군 바로 강 건너에 살기 때문에 땅의 가치에 대해 잘 압니다. 그 당시 푸미흥은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함스의 말이다.
함스는 앞으로 트 티엠 도시 계획이 결국 실현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수년 동안 개발자들이 제시하였던 청사진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 어스(Google Earth)에서 사이공 지도를 보면 이 지역이 개발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나는 언젠가 이 지역에 많은 건물이 세워지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푸미흥과 같이 능력 있는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담당하지 않으면 통일된 아름다움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프로젝트들이 별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 지역에 투자할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도시의 지도자들도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Trung이나 Tam 같은 주민들은 결정을 망설이지만, 그들은 어느때고 사이공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준비는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