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전(紙錢)과 조상(彫像)의 의미를 깨우치기도 전에, 그 존재는 이미 제 경험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일(giỗ)이 되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작은 앞마당에 커다란 솥을 놓고 종이 돈 모형을 태우곤 했습니다. 그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불길이 종이를 연기와 재로 바꾸었고, 몇 분 만에 그 종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지전을 태우는 것은 죽은 이들에게 돈과 재물을 바치는 의식으로, 주로 기일, 뗏(Tết, 음력설), 그리고 '귀신의 달'행사에서 행해집니다. 이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있고, 현재도 그 인기가 식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이공의 시장을 걷다 보면—작은 지역 시장에서부터 가장 크고 복잡한 빈떠이(Bình Tây) 시장까지—지전과 향을 파는 가게를 반드시 한 곳 이상은 지나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지전을 단독으로 태우기도 하고, 더 큰 행사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행해지는 시기는 중원절(Hungry Ghost Festival, 음력 7월 보름, rằm tháng 7, 혹은 xá tội vong nhân) 입니다. 이 시기는 가족이나 거처 없이 떠돌던 고혼(孤魂)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기간입니다. 이때 종이로 만든 돈과 다양한 모형 외에도 과일, 사탕수수, 간식, 향 등을 원형 양철 쟁반에 올려놓습니다. 제물을 태우기 전, 집주인은 기도를 올립니다. 이 의식은 "꿍꼬혼(cúng cô hồn)"이라고 불리며, 의식이 진행되는 도중 동네 아이들이 집 대문 앞에 모이곤 합니다. 아이들은 의식이 끝난 후 남는 제물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드는 "지얻꼬혼(giật cô hồn)"이라는 전통적인 광경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푸년(Phú Nhuận)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분에게 지전을 올바르게 태우는 방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여성분은 "지전을 끝까지 잘 태워야 해요. 그래야 조상에게 닿지요." 라고 설명합니다.
이 관습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또는 도덕적 설명은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사후 세계가 현실 세계와 닮아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는 불교가 "인생은 일종의 대출이며, 사람이 죽으면 후손들이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개념을 확산시켰다고 설명합니다. Kirsten Endres와 Andrea Lauser는 이 개념이 효(孝, hiếu)와 연결된다고 주장합니다. 유교 사상에서는 후손들이 선조의 도덕적 빚을 갚는 것 - 짜언(trả ơn) - 이 필수적인 도리라고 여겨졌습니다. 권헌익 교수는 부(富)가 사후 세계에서도 유의미하기에 현세에서 사후 세계로 보내줄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이 정확히 언제부터 베트남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연구자들은 이를 중국의 지배 시기와 연관 짓습니다. 종이 돈을 태우는 전통은 베트남의 봉건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어이방마(giấy vàng mã)" 또는 "지어이방박(giấy vàng bạc)"로 이름 지어진 것은 거친 흰 대나무 종이가장자리에 얇은 금박이나 은박을 두르는 방식으로 제작된 전통적인 지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금박을 뜻하는 "방(vàng)", 은박을 뜻하는 "박(bạc)"이 이름에 붙었습니다. 말, 옷 등의 모형도 많이 쓰이는 의식적인 금전 형태입니다. 오늘날에는 전통 지전뿐만 아니라, 현대적이고 외국 영향을 받은 지전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Fred Blake는 『Burning Money』에서 전통 지전과 현대 지전의 차이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달러와 유로 같은 외국 화폐의 등장이고, 둘째, 스마트폰 같은 현대적인 물품을 모방한 지전의 등장입니다.
베트남 전역에서 이러한 지전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떤딘 시장(Tân Định Market) 외곽을 걸으면 종이로 만든 아이패드 모형이 쌓여 있고, 빈떠이 시장(Bình Tây Market)에서는 집이나 명품 브랜드 로고가 붙은 옷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도라엄푸(đô la âm phủ), 즉 명목상 죽은 자의 세계에서 쓰이는 달러 모형이 가장 흔하며, 그 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은 중산층이 소유할 법한 필수품이 포함된 종합 세트입니다. 이 세트에는 옷, 스마트폰, 향수, 신용카드, 손목시계 등이 포함됩니다.



비록 지전 태우기가 봉건 시대부터 내려온 것이긴 하지만, 이 관습이 다시 인기를 얻은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이 관습이 낭비인데다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이념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앙 계획 경제에 기반한 사회주의 체제가 빠르게 폐기되고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가 도입되면서, 도이머이(Đổi Mới, 개혁 개방) 이후, 지전 태우기가 다시 합법화되었으며, 많은 전통 의식과 함께 부활했습니다. 역사가 후에-탐 호 타이(Hue-Tam Ho Tai)는 그의 저서 『기억의 나라(The Country of Memory)』에서 이러한 변화를 "기념 열풍(commemorative fever)"이라고 표현하며, 공적 기억(public memory)이 더 큰 서사 구조(framing narrative)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과거가 서막이 되어 미래를 위한 발전과 비전의 감각이 내포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Gates는 오늘날 넘쳐나는 영적 화폐를 "소규모 상품 자본주의가 종교적 상상력을 빌어 침투한 물질적 상징"이라고 묘사했습니다. Fred Blake 역시 상품 자본주의 개념을 언급하며, 전통적인 방식(손으로 만든 금과 은)의 제례 용품이 돈이나 부의 상징적 재구성이었던 것과 달리, 인쇄되고 대량 생산된 지전은 더 이상 단순한 상징적 재구성이 아니라 실제 화폐를 모방한 시뮬레이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지전이 너무 진짜와 유사하게 제작된 나머지, 2010년 베트남 국영 은행이 모든 형태의 베트남 동(VND) 지전 제작을 금지하여 위조 범죄를 방지해야 했습니다.
현재 지전 태우기와 관련된 담론에서는 이 행위, 혹은 적어도 지나친 형태의 지전 태우기를 미신으로 규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미신(迷信)"이라는 용어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유사한 의미를 갖습니다(베트남어-mê tín, 중국어-mixin, 일본어-meishin). 그러나 이 개념 자체는 원래 20세기 초 유럽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이후 아시아로 유입되었습니다. 베트남어에서 "mê"는 착각하거나 환상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며, "tín"은 믿음이나 종교를 뜻합니다. 따라서 "메띤(mê tín)"은 잘못되거나 비합리적인 종교를 의미하며, 이는 곧 올바르고 정당한 종교가 따로 존재한다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 과학, 세속화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개념은 역설적인 갈등을 초래합니다.
도이머이(Đổi Mới, 개혁 개방) 이후, 베트남의 국가적 담론은 "현대화"와 "전통"라는 두 가지 개념을 동시에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시장 경제로 전환하면서, "현대화"는 발전과 부유함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서구화가 과도하게 유입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러한 영향을 균형 있게 조절하기 위해, 베트남 전통 문화와 민족 정체성의 회복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뗏(Tết, 음력설) 의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제례 용품은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처럼 보입니다. 전통과 현대, 시장 경제와 민족 정체성, 신앙과 합리주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2018년에 처음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