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도서 출판업계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몇 년 전에 출판된 책의 판매량이 갑자기 급증했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가수나 배우 같은 유명인 혹은 인플루언서가 인터뷰에서 특정 작품을 언급하면, 그 팬덤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면서 판매량 증가를 이끌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고, 그건 번역서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베트남의 K팝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책을 구매하게 되고, 한국 번역서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것입니다.

유령의 시간 (Ghost Time / Thời gian của ma).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저 개인적으로는 한국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베트남 독자들에게는 한국 문학이 얼마나 친숙한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지난해 사이공에서 우연히 한국의 김이정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유령의 시간 (Ghost Time / Thời gian của ma)이 베트남어로 번역된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당시의 출판에 대해 조금 더 알고자 해당 출판사인 Nhã Nam과 연락을 취했고, 출판사에서는 당시 편집자이자 번역가였던 Vương Thúy Quỳnh Anh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Quỳnh Anh은 제게 한국 책이 베트남어로 번역되는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 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한국 책이라서 혹은 한국 문화를 더 알고 싶어서 고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책의 내용과 제목을 보고 구입하는 것이죠.” Quỳnh Anh은 이렇게 말하며,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음악, 패션, 영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소설로 이어졌을 거라는 저의 가설을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베트남 독자들은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 한국 소설을 고른다고 합니다.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출판되는 많은 한국 소설이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이 베트남 독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Quỳnh Anh은 베트남 독자들이 "주인공의 여정을 중심으로 한 베스트셀러 소설"에 끌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인공이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과거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거나 뭔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인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각자의 여정이 가진 매력과 가치를 조명합니다. 또한, 그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독자들이 평온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해피엔딩을 가진 이야기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Vương Thúy Quỳnh Anh is currently a freelance Korean-language translator.
베트남 독자들이 한국 고유의 것을 담고 있는 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이 언급된 소설을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Quỳnh Anh은 자신이 작업한 소설들에서 베트남이 등장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년 한국에서 출간되는 수천 권의 책 중에 베트남이 등장하는 책이 없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경험은 나이 든 세대 한국 작가들이 작품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 중 하나입니다. 김이정의 소설도 아버지의 참전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한국의 문학에서 20세기 후반 전쟁을 다룬 작품을 비교하면, 두 문화의 흥미로운 유사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전쟁과 죽음, 그리고 인간이 겪는 고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책 뒤의 사람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문학 번역가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 직업에 뛰어들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Quỳnh Anh도 처음에는 K-팝 아이돌을 더 잘 알고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Quỳnh Anh은 페이스북과 Talk to Me in Korean이라는 웹사이트, 그리고 노래 가사를 통해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혔습니다. 한국어에 능숙해지자, Quỳnh Anh은 번역가로 일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고, 2018년 Nhã Nam이 번역가를 모집하는 공고를 냈을 때 지원했습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을 시작해 이후 정식 편집자가 되었고, 현재는 다시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uỳnh Anh과 같은 번역가들이 전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여전히 업계의 큰 고민거리입니다. 기업 통·번역가로 활동하거나,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높은 보수를 보장하기에 실력 있는 문학 번역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은 한국어 번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수입에 연연하지 않는 재능 있고 열정적인 번역가의 부족은 더 많은 베트남 문학 작품의 영어권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Some titles that Quỳnh Anh worked on.
취미를 직업으로 삼으면 그 본래의 재미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Quỳnh Anh은 주 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무실에서 한국어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개인시간에는 한국어를 덜 접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스타들이 나이를 먹고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한 것도 흥미를 잃은 한 가지 이유가 되었습니다. 문학의 장점 중 하나는 다른 예술 형식에 비해 유행을 덜 탄다는 점이며, 일반적으로 젊음의 발견이나 정체성 구축에서 비롯되는 들뜬 에너지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만합니다. 이는 곧 문학이 세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연결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글에서 베트남어로: 번역 과정
매년 출판되는 수천 권 중에 번역본이 나오는 책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서점을 거닐 때마다 매대에 멈춰서서 "이 책이 어떻게 베트남어로 번역됐지?"라고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Quỳnh Anh에게 번역할 책을 어떻게 고르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In 2015, Vietnamese translator Kim Ngân was among four winners at the Korean Literature Translation Awards for her translation of Jeong Yu-jeong's 7 năm bóng tối (Seven Years of Darkness).
번역할 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사실 그렇게 복잡하거나 신비롭지 않습니다. Quỳnh Anh에 따르면, 해외 혹은 한국 내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여러 언어로 널리 번역된 작품, 해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작품, 그리고 이전에 좋은 반응을 얻었거나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작가의 신작을 대상으로 우선 책을 골라본다고 합니다. 이런 책의 개요와 몇 페이지의 샘플을 읽은 후, 출판사 경영진에게 공식적으로 출간을 제안합니다. 승인을 득하면, 특정 부서에서 한국 출판사나 작가 에이전트와 협력하여 번역 권리를 획득합니다. 베이징 국제 도서전과 연례 서울국제도서전과 같은 국제 문학 행사는 작가, 출판사, 에이전트들과의 인맥을 넓히고, 한국 문학계의 최신 동향과 발전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번역 프로젝트가 사내 번역가 또는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배정되면, 보통 약 3개월이 지나야 내부 검토와 교정을 위한 준비가 됩니다. 신체 묘사나 성적인 장면과 같은 부분은 편집이 필요하고, 이후 책은 사내 디자인팀과 마케팅팀을 거쳐 베트남의 주요 서점 및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보됩니다.
번역가와 편집자의 열의에 더해, 번역서의 성공은 정부, 재단, 출판사 등이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 세미나, 작가 방문 및 문학 콘퍼런스와 같은 제도적 지원에도 크게 좌우됩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사이공에서는 호치민시 베트남-한국 문학 만남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러한 기회들은 번역 문학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하고, 수준 높은 번역물이 채택될 수 있도록 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작은 금액이더라도 배정된 예산이 필요한 곳에 잘 쓰일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Poet Nguyễn Quang Thiều, Chairman of the Vietnam Writers' Association, presents a gift to Bang Jai-suk, Co-Chairman of the Vietnam-Korea Peace Literature Club during a seminar at the Vietnam Writers' Association. Photo via Công An Nhân Dân.
한국문학번역원(LTIK)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학을 홍보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은 출판사와 작가들을 지원하고, 번역가를 위한 보조금과 교육을 제공하며, 한국 문학 번역상(Korean Literature Translation Awards)을 매년 개최합니다. 이 상은 여러 언어로 번역된 작품 중 우수한 번역을 선정하는데, 2015년에는 베트남어 번역가인 Kim Ngân이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7 năm bóng tối, Seven Years of Darkness)을 베트남어로 번역하여 수상하며, 상금으로 미화 1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2021년에는 이강애 작가가 쓴 삼국사기 - 1권(Tam Quốc Sử Ký - Tập 1, Samguk Sagi - Chapter 1)을 번역한 Nguyễn Ngọc Quế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같은 해, 베트남 여성 출판사는 한국문학번역원과 협력하여 온라인 한국 문학 서평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기관은 2001년 이후 베트남어로 번역된 106권의 한국 문학 작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학 작품 106권이 베트남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큰 성공인지 혹은 부족한 성과인지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한국 문학의 성공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재로서는 판매 수치, 온라인에 흩어진 리뷰, 출간 후 수상 가능성 또는 보조금 수령 여부가 유일한 평가 기준이니 개별 도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결국 독자에게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