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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Lan’ 사진전, 베트남계 폴란드 디아스포라의 다양한 정체성을 담다

폴란드는 대체적으로 단일민족 국가로 이주 비율이 마이너스이며 유럽 연합 중 외국인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 이민에 대해 지식이 많은 사람도 폴란드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견고한 커뮤니티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 또는 서유럽의 베트남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특정 민족이 기존 땅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사는 것 -옮긴 이)와 다르게 중부유럽 및 동유럽의 베트남인 커뮤니티는 냉전 시기부터 나타났다. 1950년부터 베트남 이민자는 폴란드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은 교환 학생으로 폴란드 땅을 밟았다. 1950년에서 1960년 공산주의 국가들은 성적이 좋은 베트남 학생에게 소비에트 국가에서 공부할 기회와 호의를 베풀었다. 학업을 끝낸 후에도 폴란드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학생들이 있었다.

중부 유럽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폴란드를 향한 베트남인의 이민 행렬은 멈추지 않았지만 이민의 성질은 변화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로 자본주의 경제로 변화하는 국가의 신흥 시장에 매료되어 경제적인 동기를 가진 새로운 베트남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현재 베트남 커뮤니티는 약 5만 명에서 8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폴란드에서 비유럽인 이민 인구 중 가장 큰 규모다. 베트남 커뮤니티는 여러 세대 동안 폴란드 사회의 일부분으로 자리했고, 지금까지 폴란드는 베트남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국가이다.

폴란드의 베트남 커뮤니티의 존재는 미디어, 예술, 문화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2015년부터 공공장소에서 “오늘의 이민자, 내일의 테러리스트”와 같은 슬로건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사는 폴란드 이민자로서, 올해 여름에 폴란드로 돌아갔을 때 바르샤바에 있는 베트남 커뮤니티와 콜라보하여 폴란드 수도에서 베트남인으로 겪는 다양한 경험과 단일민족인 국가에서 정체성을 어떻게 타협하는지 이해해보고자 했다.

베트남어로 폴란드를 뜻하는 “Ba Lan” (바란)은 폴란드와 베트남 문화의 교점에서 배회하고 민족 주체성, 소속감과 민족 간의 관계를 고민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상점 주인, 네일 아티스트 또는 마피아 갱스터 (넷플릭스 1983의 묘사처럼) 등의 전형적인 베트남 이민자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고자 한다.

Chua Thien Phuc 사원

 

바르샤바에는 Chua Thien Phuc와 Nhan Hoa 이렇게 두 개의 사원이 있다. 두 사원 모두 도심의 교외에 동유럽에서 손에 꼽히게 큰 도매시장이자 다수의 베트남 사람들이 계속해서 일해 온 Wólka Kosowska에 근처에 있다.

란팜, Lan Pham (상단 사진)

란은 프리랜서 디자이너이며 폴란드에서 베트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는 폴란드 출신이라기보다 바르샤바 출신으로 느낀다. 폴란드에서 태어났고 폴란드어가 모국어지만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 폴란드어를 배웠는지” 묻곤 한다.

올라 응우옌 Ola Nguyen

올라는 어렸을 적에 가족이 폴란드로 와서 바르샤바에서 학교를 나왔다. 올라는 전통적인 베트남 가정에서 자라서 엄마를 도우면서 어릴 때 요리를 배웠다. 2018년 마스터셰프 폴란드에서 우승했다. 올라는 폴란드인이자 베트남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폴란드에서는 폴란드 사회에서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해 “올라”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킴 리 Kim Lee

킴은 폴란드에서 유일한 베트남 드랙퀸이다. 킴 리는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폴란드에서 살아왔다. 폴란드에는 겨우 30명의 드렉퀸이 있으며 폴란드 정부는 종종 이들을 악마화한다.

킴은 폴란드의 베트남인에 대해서 두 개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말한다. “마피아로 묘사되거나 90년도에 거래가 활발했던 오래된 축구 경기장의 상점 주인으로 묘사되죠. 예술가나 공연가 같은 이미지는 없어요. 폴란드 사회에서 우리는 부여된 전형적인 이미지 이외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도 않고, 베트남 커뮤니티와 폴란드 커뮤니티 사이에는 접점이 없어요.”

톤 반 안 Ton Van Anh

안이 어렸을 때 안의 부(父)는 불가리아로 이주하였고 그 후 안이 13세에 가족이 폴란드로 이주했다. 그 때가 90년대였고 안은 학교에서 눈에 띄었다. 안은 선생님들이 인종주의자였다고 설명했고 폴란드 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베트남어를 잊지 않기 위해서 안은 폴란드 문학과 시를 베트남어로 번역했다. 안은 활동가이고, 번역가이자 선생님이다. 또한 안은 학교에서 어시스트로 폴란드에서 자란 베트남 학생들이 폴란드어를 배우는 것을 돕거나 폴란드 사람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친다. 안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베트남으로 돌아간 적이 없다.

발테크 Bartek

발테크의 부모는 폴란드에서 만났고, 발테크는 폴란드에서 나고 자랐으며 스스로 베트남인이라기보다 폴란드인이라고 느낀다. 심지어 베트남 가족마저 발테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발테크는 디자이너 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지만 폴란드에 있는 대부분의 베트남인은 창조적인 일을 얻지 않고 상업에 종사한다고 말했다.

발테크가 어린 시절 베트남에 방문했을 때 완전히 이방인처럼 느꼈다. “베트남어를 잘 못 하고, 다른 애들이랑 옷도 다르게 입어서 신경 쓰였어요. 단일민족 국가에서 인종차별은 흔한 거라서 폴란드에서 자라는 것도 항상 쉬운 건 아니었어요. 사람들은 저를 보고 즉각적으로 아시아인으로 “분류”하거나 단지 제 정체성을 ‘그 베트남 남자애’로 축소했어요.” 이제 발테크는 폴란드 사람과 약혼하였고 웨딩은 베트남 전통식이 아닌 폴란드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짬 안 Tram Anh

짬은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12세에 부(父)가 병에 걸려 가족이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짬은 남동생과 바르샤바에 남았다. 짬은 스스로 폴란드인으로 정체화하고 베트남 친구도 거의 없으며 남자친구도 폴란드인이다. 폴란드에서 때때로 불편함을 겪기도 한다. “폴란드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그런데 같은 시선을 베트남으로 돌아 갔을 때 베트남 사람들로부터도 받아요. 제가 베트남인인지 폴란드인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응우옌 탄 손 Nguyen Thanh Son

손은 부(父)가 러시아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1991년 폴란드에 방문을 했지만 장기간 머무르기로 결심을 했다. 모든 가족이 베트남에서 폴란드로 이주했다. 폴란드 아내와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면 집에서 폴란드어를 쓴다. 손은 베트남보다 폴란드에 친밀감을 느끼고 폴란드에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히엔 Hien (Hieniek)

히엔은 스스로를 베트남인이나 폴란드인으로 보지 않고 창조적인 영혼으로 본다. 히엔은 폴란드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베트남 가정에서 자라 어렸을 때는 바르샤바에 있는 베트남 학교에 다녔다. 경제를 공부한 후에 모델과 사진작가 되었다. Converse의 모델로 활동했으며 현재 브레이킹 댄스가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를 여행했으며 지금은 싱가포르로 옮겨 사진작가로 일하고 싶어한다.

하 Ha (Hannah or Jade)

하는 13세이며 2년 전 폴란드에 왔다. 한나는 폴란드에서 스스로 고른 이름이지만 사람들이 제이드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폴란드인과 베트남인에게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폴란드어는 어려운 언어고 우리 반에는 베트남 애들이 없어서 집에서 말고는 연습하기가 힘들어요. 폴란드로 이주한 후에 학교에 가기 시작하는 게 무서웠고 다들 저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애들은 착했어요. 학교에 폴란드 친구들도 있는데 어떤 애들은 너무 못돼서 저랑 제 가족에 대해서 진짜 불쾌한 농담도 해요.”

미 Mi

미는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지만 11살이 됐을 때 가족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정말 너무 끔찍했어요. 계속해서 판단 당하는 느낌이었고 겉도는 것 같았어요. 베트남 사회에 동화될 수 없었고 우리 가족은 제가 겪은 컬쳐 쇼크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 미는 바르샤바에서 다시 돌아왔지만 폴란드에서도 길을 잃은 기분을 느낀다. “폴란드에서 태어났어도 제 폴란드어가 부끄럽기도 하고 불청객 같아요. 그래도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지앙 Giang

지앙은 22세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베트남어를 직접 가르쳤기 때문에 바르샤바에 있는 베트남어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여자형제와는 폴란드어와 말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부모는 집에서 베트남어를 쓸 것을 요구한다. “학교에서는 폴란드 문화만 경험했고, 그렇게 알고 싶지도 않아요. 어렸을 때 애들이 저를 놀렸고 제가 중국인인 것처럼 대하면서 이상한 농담을 했어요.” 지앙은 어렸을 때 베트남에 방문을 했지만 그때 이후로 10년 동안 가지 않았다. 지앙은 베트남 부모로부터 너무 많은 압박과 기대를 느낀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적 규범이 있는데 저는 배워본 적이 없어요. 나중에 어디서 살고 싶은지 모르지만 폴란드가 집처럼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사진작가

줄라 라비코우스카(Zula Rabikowska)는 런던에서 근거지를 둔 폴란드-영국계 비주얼 아티스트이다.

줄라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으며 프랑스, 중국, 남아프리카, 인도 팔레스타인, 카리브해에서 일했다. 줄라의 이민 경험은 줄라의 사진과 작업에 영향을 주었으며 민족 정체성, 소외와 소속을 주제로 작업한다.  

그는 문자 언어 또는 지역 고유언어가 이미지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지역 특색을 담은 사진을 작품에 사용한다.

그의 Ba Lan 프로젝트틑 11월 13일부터 영국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더 많은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그의 웹사이트인스타그램을 방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