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포멜로꽃(hoa bưởi, pomelo blossom) 향이 밴 사탕수수의 맛이 그리워집니다. 포멜로꽃의 섬세한 향기가 흔한 사탕수수의 맛을 확 끌어올려 주니까요.
시처럼 아름다운 향기
Ôi hoa đã rụng vẫn còn ngát hương / 땅 위에서도 향이 멈추질 않네”
어릴 적 처음으로 Trần Đăng Khoa의 시집 『Góc Sân và Khoảng Trời (마당과 하늘)』에서 ‘포멜로꽃(Hoa bưởi)’이라는 시를 읽었을 때, 저는 포멜로꽃의 향이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모르고 지나친 적이 있을까요? 어머니는 한 번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포멜로꽃은 “은은한 향기”를 가지고 있어서 찾으려고 하면 피하고, 무심코 있을 때 불쑥 다가온다고요. 3월이 되면 며칠 안에 다시 포멜로꽃의 향이 찾아올 것입니다.
Hoa bưởi. Photo via Thời báo Văn học Nghệ thuật.
아버지와 함께 Xã Đàn (싸단) 거리나 Láng Hạ (랑하) 거리를 지나던 중, 거리 상인들의 자전거 위에 놓인 새하얀 포멜로꽃 쟁반을 보면 하노이에 포멜로꽃 철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포멜로(학명 Citrus grandis)는 감귤류 중 가장 크며, 열대 지방이 원산지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태국 남부와 말레이시아 북부가 포멜로의 주요 재배지이며, 포멜로의 기원지로 여겨집니다. 이후 동남아 전역은 물론, 지중해, 아메리카, 호주까지 퍼졌습니다. 베트남에는 Đoan Hùng(도안훙), Phúc Trạch(푹짝), Diễn(이엔), Năm Roi(남러이) 등 여러 자생 품종들이 있습니다.
Pomelo cultivars in Vietnam. Image via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사계절 기후를 가진 북부 베트남에서는 음력 3월쯤 포멜로나무가 꽃을 피웁니다. 이 시기 가지에서 흰색의 매끈하고 꽃송이들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납니다. 녹색의 꽃받침과 짧고 하얀 꽃잎(길이 2–3.5cm 정도)이 특징입니다.
포멜로꽃의 개화 기간은 짧아서 따뜻한 해에는 약 한 달, 추운 해에는 고작 20일밖에 지속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기가 하노이 문화에 뚜렷한 흔적을 남깁니다. 이 시기는 하노이 특유의 이슬비와 극도의 습기가 겹치는 계절입니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습기 속에서도, 포멜로꽃을 비롯해 수아꽃(hoa sưa), 반꽃(hoa ban), 목면꽃(hoa gạo) 등이 한꺼번에 피어나 봄의 끝과 여름의 시작을 알립니다.
우아한 도시 장식
하노이의 유명한 묘목 시장인 Minh Khai (민카이), Phú Diễn (푸이엔)에서는 포멜로나무가 하얀 점처럼 꽃을 틔웁니다. 농부들은 정성껏 이를 관리합니다. 탐스럽게 자랄 가능성이 높은 큰 꽃송이들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이른 아침 아직 꽃이 피기 전 향이 날아가기 전에 잘라냅니다. 그렇게 모은 포멜로꽃은 거리 상인의 오래된 자전거에 실려 도시 곳곳을 향기로 채웁니다.


Collecting hoa bưởi. Photo by Văn Tuyến via Đài phát thanh & Truyền hình Hà Nội.
하노이의 Lê Duẩn (레주언) 거리나 Giải Phóng (자이퐁) 거리에서는 대나무 트레이에 정갈하게 올려진 흰 포멜로꽃 다발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봄의 마지막 날들, 시끌벅적한 하노이 거리도 이 꽃들 덕분에 한결 우아해 보입니다. 끔찍한 습기조차도 견딜 만하게 느껴집니다. 포멜로꽃의 향은 익숙한 위안을 주기에, 아무리 바빠도 적지 않은 하노이 사람들이 자그마한 꽃다발(100g에 약 4만 동)을 사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에 걸음을 멈춥니다.
Hoa bưởi vendors of March. Photo by Cam Ly via Báo Lao Động.
저는 포멜로꽃이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보다 주요 도로변에 더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한 나름의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꽃향기를 맡고 잠시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포멜로꽃의 향이 뚜렷하긴 하지만 도시의 다양한 냄새 속에서는 쉽게 묻히기 때문입니다. 향을 맡고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기에, 상인 입장에서는 그저 한자리에 머무르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Graphic by Ngọc Tạ.
포멜로꽃을 볼 때마다 저는 특유의 향수에 젖습니다. 여름철의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살”, 엄마와 아빠가 운영하던 하노이 특유의 음식맛, 아버지의 독한 담배 연기, 그리고 햇살이 드리운 채 창문이 반쯤 열린 옛 빌라들이 떠오릅니다. 포멜로꽃의 향기는 어머니가 긴 머리를 감던 정원의 초록 구석, 포멜로꽃 향이 배인 작은 찻그릇, 포멜로꽃과 사탕수수로 만든 소박한 간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간의 전령을 사랑하는 마음
포멜로꽃은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월을 거치며 하노이 사람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우리가 포멜로꽃을 사랑할수록, 그 짧은 계절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자 꽃을 집 안으로 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멜로꽃의 향을 머무르게 하는 여러 전통적 방법을 고안해 왔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꽃이 막 피기 시작한 봉오리를 화병에 꽂아 실내를 향기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 봉오리는 향기를 가장 잘 머금고 있어서 차 향을 내는 데에도 쓰입니다. 포멜로꽃차를 만들기 위해서 꽃을 조심스럽게 열어 꽃 속을 제거해 쓴맛을 줄이고 찻잎과 함께 볶습니다. 도자기 항아리 안에 차와 꽃을 층층이 넣고 이틀 정도 두면 은은한 포멜로꽃차가 완성됩니다.
Hoa bưởi tea. Nguồn ảnh: An Hải Tea.
포멜로꽃차는 하노이를 찾는 손님에게 주는 귀한 선물로 여겨집니다. 차를 만들면서 제거한 꽃 속은 따뜻한 물에 넣어 머리를 감는 데 쓰는데, 이는 예전 여성들의 미용 비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멜로꽃은 머릿결을 부드럽게 하고 향기롭게 만드는 천연 재료로 여겨졌습니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에서는 포멜로꽃에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해 감기, 숙취, 복통, 불안, 권태에 효능이 있는 약제로 사용해 왔습니다. 요리에서는 이 오일을 몇 방울 넣어 bánh trôi (반쪼이), sắn dây (산여이), tào phớ (타오퍼) 등 계절별 간식에 계절의 향을 더합니다. 작가 Mai Thục는 『하노이의 정수(Tinh hoa Hà Nội)』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추출 시즌이 되면 Hàng Than (항탄) 거리는 포멜로꽃 향으로 가득하다. 지금도 그 향이 그립지만, 스스로 향을 뽑는 일은 하지 못한다.”
Pomelo blossom-scented sugar cane. Photo via VnExpress.
이 계절 간식 이야기에서 포멜로꽃 사탕수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소박하지만 우아한 간식입니다. 만들기는 간단합니다. 사탕수수를 2~3cm 길이로 자르고, 그 위에 신선한 포멜로꽃을 뿌려 냉장고에 3시간 넣어둡니다. 더 특별하게 즐기고 싶다면 중탕으로 찌면 향이 사탕수수 속까지 스며듭니다. 3월의 더운 날, 이 달콤하고 향긋한 간식 한입은 무더위를 잊게 하는 작은 위안입니다.
하노이 사람들은 습도가 너무 높지 않은 계절 중반쯤부터 포멜로꽃으로 장식을 시작합니다. 제단에 올릴 때는 꽃이 풍성하고 예쁜 가지를 고릅니다. 음력 1월의 과일로 포멜로꽃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새해의 희망을 상징하는 역할을 합니다. 향은 제단방의 공기를 정화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믿습니다. 오행(금, 목, 수, 화, 토) 중 포멜로꽃은 ‘흰색’에 해당하는 금을 상징합니다.
베트남 문화에서 포멜로꽃은 때로 순수한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하얀 색과 은은한 향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로맨틱한 선물이 됩니다. 이러한 포멜로꽃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작곡가Vũ Hoàng이 Phan Thị Thanh Nhàn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 ‘Hương Thầm (은은한 향기)’에도 등장합니다.
“Giấu một chùm hoa trong chiếc khăn tay / 손수건에 꽃 한 송이 숨겨
Cô gái ngập ngừng sang nhà hàng xóm / 그녀는 주춤이며 옆집으로
Bên ấy có người ngày mai ra trận / 그곳엔 내일 전쟁터로 떠날 이가
Bên ấy có người ngày mai đi xa / 그곳엔 내일 멀리 떠날 이가 있다네
Nào ai đã một lần dám nói / 누구도 말한 적 없지만
Hương bưởi thơm cho lòng bối rối /포멜로꽃 향기 마음을 설레게 하고
Cô gái như chùm hoa lặng lẽ / 그녀는 마치 조용한 꽃송이
Nhờ hương thơm nói hộ tình yêu / 향기로 사랑을 전하네”
3월의 날들은 포멜로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하노이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에 뚜렷한 인상을 남깁니다. 꽃이 다 지고 나서도 우리는 포멜로꽃을 늘 그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