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로판으로 만든 등불은 추석을 가득 채운 추억의 닻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등불은 사이공의 푸빈(Phú Bình) 등불 “마을” 장인들의 재빠른 손놀림 덕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요즘 11군 5동 락롱꾸언(Lạc Long Quân) 거리의 푸빈 동네를 거닐어 보면, 추석을 맞이하는 기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푸빈(Phú Bình) 등불 마을은 추석 즈음에 가장 활기찹니다. Photo by Cao Nhân.
바닥부터 천장까지 각양각색의 등불로 뒤덮인 집들에서 눈길을 뗄 수 없습니다. 이 작은 장인들의 마을은 옛 풍습이 도시 속 보물처럼 지켜지던 제 어린 시절의 추석을 떠오르게 합니다.
판매중인 등불. Photo by Cao Nhân.
이곳에서 만난 등불 장인들에 따르면, 1950년대 무렵 남딘(Nam Định)성의 박꼬(Bác Cổ) 마을에서 수천 명이 이곳으로 이주해 조상 대대로 내려온 등불 공예 기술을 가지고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 역사 깊은 장인 마을은 전통 등불을 만들어왔습니다.


셀로판 등불은 푸빈의 특산품입니다. Photo by Cao Nhân.
1970-1990년대 전성기 시절에는 수백 가구가 등불을 제작해서 남부 전역에 공급할 정도로 마을에 활기가 넘쳤고, 해외에도 수출할 만큼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인구 변화와 건전지로 작동하는 등불의 등장으로 수백 가구 중 일부만이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들 장인 가구는 예전처럼 소매 판매보다는 도매 주문을 주로 받습니다. 손수 만든 등불은 개당 약 3만 동에서 몇 십만 동까지 하며, 정교한 디자인의 등불 가격은 그 보다 더 높기도 합니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장난감 등불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해 전통 등불 판매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Photo by Cao Nhân.
장인들이 대나무 살을 엮어 뼈대를 만들고, 셀로판을 붙이고, 알록달록한 붓질을 더하는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넋을 잃게 됩니다. 등불 장인들은 이 기술이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등불은 대나무, 색색의 셀로판, 가루 물감으로 만들어집니다. Photos via Tạp chí Du lịch Tp. HCM.
보기 좋고 오래가는 등불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재료를 꼼꼼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나무는 강도를 유지하고 흰개미 피해를 막기 위해 잘 자란 오래된 대나무를 갓 베어 사용해야 합니다. 셀로판은 무늬가 깔끔히 드러나도록 매끄럽게 붙여야 합니다. 모든 과정은 세심한 장인의 손길을 필요로 하며, 그 덕분에 단정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완성품이 나옵니다.


별 모양 등불의 뼈대와 완성품. Photo by Cao Nhân.
이곳에서 만난 등불 제작자 프엉(Phượng)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업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고 할 겁니다. 다만 모든 과정에서 꼼꼼하고 정밀해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예쁜 등불을 만들어내고, 우리 문화의 아름다운 한 면을 지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등불에 가루 물감으로 장식을 더합니다. Photo by Cao Nhân.
붉은 셀로판의 매끄러운 표면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완성된 등불을 바라보다 보니, 학교 대회에 가지고 나갈 별 모양의 큰 등불을 만들 때 할아버지와 함께 셀로판을 자르고 도안을 그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즐겁게 함께했던 그때가 그리우면서, 이 공예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미래의 아이들도 지금처럼 붉고 노란 빛깔의 등불에 감탄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별 모양 등불. Photo by Cao Nhân.
이곳에서 수십 년째 등불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 가진 걱정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푸빈의 장인들은 용, 게, 토끼 모양의 등불 등 시장의 선호와 흐름에 맞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소매 판매뿐만 아니라 이곳 장인 가구들은 이제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더 많은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전통 공예 마을의 이미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장인 응우옌쫑빈(Nguyễn Trọng Bình) Photo via Tạp chí Du lịch TP. HCM.
푸빈의 3세대 장인 응우옌쫑빈(Nguyễn Trọng Bình)은 이렇게 전합니다. “올해 주문량은 지난 몇 해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기뻤습니다. 보통은 5월이나 6월쯤 되어야 첫 주문이 들어오곤 했었는데, 올해는 설 연휴가 끝난 3월부터 벌써 일을 시작했습니다.”

배송 준비가 완료된 등불. Photo by Cao Nhân.
또 다른 등불 제작자인 응우옌티뜨어이(Nguyễn Thị Tươi)는 말합니다. “우리 가족이 이 등불을 만들어온 지는 20년 정도가 됩니다. 많은 이들의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이 일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우리의 브랜드를 더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 추석 등불을 알게 될 겁니다.”
이곳 장인들의 벌이가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참 기뻤습니다. 이 공예가 존재하는 한 이 장인 마을도 존재할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그래왔듯, 이곳 장인들은 매년 수천 개의 등불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모두의 어린 시절이 추석의 다채로운 색으로 빛날 수 있도록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