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줄기 사이에서 귀뚜라미가 튀어나오듯 대나무 피리에서 음들이 활보한다.
이러한 곤충들이 곡예하는 소리와 광경은 동 나이(Dong Nai) 성 호 나이(Ho Nai) 시골에서 자란Pham Vu Thien Bao에게는 친숙했을 것이다. 그에게 덜 친숙한 것은 클래식 음악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그의 아버지가 그 마을에서 클래식 음악을 자주 찾아들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여행하며 우연히 클래식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고, 돈을 모아 바이올린을 샀는데 이것이 Bao의 첫 시작이었다. 스스로, 또 때로는 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몇 년동안 연습한 후 Bao는 사이공으로 이사하여 공부했다. 2003년 사이공을 방문하는 중이었던 Maryvonne Le Dizes 선생님은 Bao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프랑스로 초대하였다.
Bao는 비올라로 바꾸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어느날 리허설에 늦었던 그는 굳게 닫힌 홀 대문 바깥에서 음악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 때 한 멜로디가 그의 귀에 들어왔고 그 음을 연주하는 악기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는 그것을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다음날 그는 비올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프랑스에 있는 13년 동안 그는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연주했다.
우리는 지난 여름에 호치민시 발레 교향 오케스트라와 오페라(HBSO)에서 공연한Vu Viet Anh가 작곡하고 Tran Nhat Minh가 지휘한 ‘귀뚜라미의 일기’(Diary of a Cricket) 공연의 마지막 리허설과 공연 사이에 Bao와 이야기를 나눴다. 40 년 전에 To Hoai가 쓴 고전 동화인 De Men Phieu Luu Ky는 모험을 시작하고 자만심이 강한 불량배에서 자비롭고 관대한 지도자로 변신하는 방랑자 귀뚜라미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공연에는 고향 오케스트라, 록 뮤지션, 합창단은 물론 대나무 피리까지 총동원되는데, Bao는 특히 이 소리가 작은 집들과 광대한 논으로 이루어진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우리가 Bao에게 그가 지내온 삶이 주인공인 귀뚜라미와 비슷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Bao 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이 이웃을 죽이는 행동을 하는 불량배는 절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이야기가 사건과 흥미를 찾아 세상으로 모험하려는 모든 아이들의 욕구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또한 소설의 주인공과는 달리 Bao는 자신이 확고한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매 공연 전에 긴장한다고 말했지만, 또 이것은 자신이 악기를 연주하는 감정없는 로봇이 아니라 감정과 관중을 기쁘게 하려는 욕구에 의존하는 예술가임을 입증하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민감함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 때문에 “더 쉽게 상처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감수성은 그가 1년동안 악기 연주를 멈추고 커피 농부로 일하는 것을 고려하게 만들기도 했다.
베트남의 클래식 음악세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는 Bao로 하여금 2015년에 사이공으로 돌아오도록 하였다. Bao가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을 접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인터넷의 발전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클래식음악을 더욱 잘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Spotify나 Youtube에서 그것을 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그것을 정말 찾아들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Bao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위협적이거나 잘난 체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단순히 편안하게 상상력을 자극하며 음악을 들을 것을 권한다. 클래식 음악이 300년동안 존재해왔으며 계속 진화하고 있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그는 되물었다.
Bao는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를 소개하는 중요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역설했다. 이에 따라 HBSO는 정기적으로 학생들에게 공연 무료 티켓을 제공하며 공연자들이 현지 커피숍에서 조금 더 친밀한 공연과 대담회를 진행하도록 권장한다. “귀뚜라미의 일기”가 전적으로 베트남 음악가들에 의해 작곡, 제작 및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베트남의 클래식 음악계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입증한다.
현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이 차지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모호한 위치를 감안할 때 사이공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적절하다. 매혹적인 역사와 내부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지인들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르거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러 갈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페라 하우스는 1899 년에 지어졌으며 식민지 시대 초반에 프랑스가 가져온 클래식 음악의 인기와 명성을 반영했다. 그러나 건물의 웅장한 크기와 외국 공연자 초빙 비용은 막대한 부채를 초래했으며 1920 년대에는 작은 아마추어 공연들에 임대되었으며 초반의 중요성을 많이 잃게 되었다. 일본군은 점령 기간동안 이 외관을 파괴하였으며 연합군은 폭격을 가했고, 1954년에는 북에서 온 이민자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하는 데 사용되었다. 국회의 하원의회로 잠깐 쓰여진 이후 1998년에 재단장되어 오페라하우스는 원래의 웅장함을 상당 부분 회복하였다. 그러나 그 안을 채우는 청중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귀뚜라미의 일기” 공연을 보고 난 후, 공연장이 더 붐비지 않는다는 사실은 놀랍게 느껴졌다. 공연에는 재능있는 뮤지션들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교향음악단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함께 발휘되어 장관을 제공했다. 합창단의 소리와 더불어 기타와 드럼의 소리가 어우러졌으며 주요인물들의 이야기는 모두 보컬리스트의 솔로 공연을 전달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힙합 스타일로 자신의 대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Bao와 이야기를 나눈 후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바로 대나무 피리였다. 대나무 피리의 소리는 다른 악기 소리의 위아래로 천천히 뛰어다니면서 이야기가 쓰여진, Bao가 클래식 음악과 사랑에 빠진 당시의 단순한 시대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 이후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클래식 음악의 힘만은 변하지 않았다.